▒ 완당김정희 ▒

군자문정첩에 쓰다[題君子文情帖]

천하한량 2007. 3. 9. 18:41
군자문정첩에 쓰다[題君子文情帖]

난초를 그리자면 의당 좌필(左筆)의 한 법식을 난숙히 해야 하며 좌필이 익숙해지면 우필(右筆)은 그대로 따라서 되나니 이는 손괘(損卦)의 어려움을 먼저 하고 쉬움을 뒤에 하는 의이다.
군자는 한번 손을 드는 사이에도 그저 되는 대로 해서는 아니 된다. 이 좌필의 한 획으로써 손상익하(損上益下)의 대의에 끌어들여 펴나가서 곁으로 소식(消息)을 통하면 변화가 무궁하여 어딜 가도 그렇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 때문에 군자는 붓을 내리게 되면 바로 경계를 붙여 나간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군자의 필을 귀하다 하겠는가.
이는 봉안(鳳眼)과 상안(象眼)으로 통행하는 법규이니 그것이 아니면 난이 될 수 없다. 이것이 비록 소도(小道)이지만 법규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데 하물며 나아가서 이보다 큰 것에 있어서랴!
이 때문에 한 잎·한 꽃봉오리라도 자신을 속이면 되지 않으며 또 남을 속일 수도 없는 것이다. 열 눈이 보는 바요 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니 얼마나 무서운가. 이 때문에 난 그리는 데 손을 대자면 마땅히 자신을 속임이 없음으로부터 비롯해야 한다. 조자고가 그린 난은 필마다 왼쪽으로 향했다. 소재(蘇齋) 노인이 자주 일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