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초의에게 주다[與草衣][16]

천하한량 2007. 3. 9. 18:09
초의에게 주다[與草衣][16]

한 차례 왕래하겠다 하면서 실제로는 왕래가 없으니 이것이 성문의 제이과(第二果)인가. 어찌 대아라한(大阿羅漢)이 도리어 이 소승(小乘) 법문을 짓는 건가.
범부(凡夫)로서 관찰한다면 큰 바다가 하늘에 붙었지만 만약 법안(法眼)으로 하여금 관찰하게 한다면 이런 애로는 없을 듯한데, 모르괘라 어떻게 여기는지요?
듣건대 단월(檀越)의 행을 시작했다고 하니 오히려 세체(世諦)의 타니대수(拖泥帶水)가 있어서인가. 나도 몰래 청산이 깔깔대고 흰구름이 웃어대겠군그래.
졸서(拙書)는 두고서 비석(飛錫)을 기다렸으나 영진(影塵)의 접속이 없어서 이에 집 하인의 편을 인하여 부쳐 보내니 시험삼아 선좌(禪坐)의 곳에 걸어주었으면 좋겠네. 이 몸은 관하(觀河)의 주름져도 주름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더함도 덜함도 없네.
허치(許痴)는 혹 산중에 왔는가? 불선.

[주D-001]제이과(第二果) : 소승사과(小乘四果) 중의 제이과로서 일래과(一來果)를 이름.
[주D-002]대아라한(大阿羅漢) : 아라한 중에 연장 덕고(年長德高)한 자를 이름. 《아미타경(阿彌陀經)》에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皆是大阿羅漢"이라 했는데. 《善見律》에 "승(僧) 가운데 공덕이 극히 큰 자를 대아라한이라 한다." 하였음.
[주D-003]단월(檀越) : 범어인데 단나(檀那)와 같은 말로 시주(施主)를 이름.
[주D-004]관하(觀河) : 석가모니불이 파사익왕(波斯匿王)에게 본디 생멸(生滅)이 없음을 보여준 것임. 《능엄경(楞嚴經)》에 "부처가 파사익왕에게 이르기를 '내가 지금 너에게 불멸성(不滅性)을 보여주겠다. 네가 세 살 때 항하(恒河)를 보았는데 지금 13세이니 그 물이 그때와 어떻더냐?' 하자, 파사익왕은 '지금 63세가 되었는데도 다른 것은 없습니다.' 하고, 부처가 '네가 지금 머리가 희고 얼굴이 주름졌으니 반드시 동년(童年)에서부터 주름졌을 것이다. 네가 지금 이 항하를 보는 것과 더불어 동모(童耄)의 구별이 있었는가?' 하니, '그렇지 않습니다.' 하였다. 부처가 '주름진 것은 변한 것이요 주름지지 않는 것은 변한 것이 아니니 변하는 것은 멸(滅)을 받고 저 변하지 않은 것은 원래 생멸(生滅)이 없는 것이니라.' 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