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초의에게 주다[與草衣][15]

천하한량 2007. 3. 9. 18:08
초의에게 주다[與草衣][15]

뱃머리에서 이별을 나눴으니, 모르괘라 해인(海印)이 빛을 발할 적에도 이와 같은 한 경지가 있었는지요. 의당 터럭이 큰 바다를 삼키고 개자가 수미(須彌)를 받아들여 막힘 없는 원융(圓融)으로써 녹여내리라 생각하는데 사는 또한 어떻다 이르는지요?
바다에 들어온 이후로는 이미 백일이 가까운데 풍신(風信)이 좋지 못하여 세체(世諦) 상의 성문(聲聞)과 영향(影響)이 마침내 이렇게 막히고 끊어졌더니 문득 선함(禪椷)을 멀리 보내주어 단포(團蒲)가 정길(淨吉)함을 알게 되었으니 또한 족히 흐뭇하여 가슴이 트이오그려.
누상(累狀)은 입을 벌리면 곧 먹고 눈을 감으면 곧 자니 사의 생활도 또한 이에 벗어나지 않는 건지요? 사의 자비로서 마땅히 마음이 쓰이겠지만 지나친 염려는 말아도 될 거외다.
허치(許痴)는 이제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무척 기다려지는군요. 봄 뒤의 기약은 벌써부터 발돋움하고 바라는 바이며 우선 허치로 하여금 하나의 고인과해도(高人過海圖)를 그리게 해 주오. 곧 법문(法門)의 일중(一重) 공안(公案)이니 그리 아오.
섣달도 다 가게 되니 오직 길상 여의(吉祥如意)를 바라며 불선.
두 가지 장(醬)은 다 받았으니 감사하며 생강꾸러미에 들었다는 웅이(熊耳)오유(烏有)로 되어버렸으니 먼 길이라 어안(魚雁)의 와전됨이 이와 같소그려.

[주D-001]해인(海印) : 부처의 소득(所得)인 삼매(三昧)를 이름. 이를테면 대해(大海)의 가운데 일체의 사물(事物)을 인상(印象)하는 것과 같이 담연(湛然)한 불(佛)의 지해(智海)에 일체의 법이 인연하는 것을 이름.
[주D-002]웅이(熊耳) : 버섯의 일종임.
[주D-003]오유(烏有) : 무유(無有)로서 즉 없다는 뜻임. 《사기(史記)》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에 "烏有先生者 烏有此事也"의 대문이 있으며, 소식의 시에 "豈意靑州六從事 化爲烏有一先生"의 구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