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신씨(申氏)는 이렇게 적었다.
정도전과 이숭인은 함께 목은(牧隱)을 스승으로 섬겼는데, 재명(才名)이 쌍벽을 이루었으나 뜻은 판이하였다. 이 때문에 정도전이 불평을 품어 우리 태조가 천명(天命)을 받기에 이르러 정도전이 권력을 잡은 신하가 되자, 자기 심복인 황거정(黃居正)을 이숭인이 유배된 고을의 원으로 내보내 곤장을 쳐서 숭인을 때려 죽였으니, 심하구나 소인의 용심(用心)이여! 얼마 안 있어 정도전이 방석(芳碩)의 난에 관여되어 죽임을 당하였고, 황거정도 정도전의 문객(門客)이었기 때문에 태종 때에 훈적(勳籍)을 삭탈당하면 지금껏 〈그 자손이〉 서용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정도전의 화가 숭인보다 훨씬 더하고, 이숭인의 이름은 후세에 빛나고 있으니, 천도(天道)가 어긋나지 않음이 뒷날의 소인들을 경계하기에 충분하다.
<동사강목 제17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