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금고문변(尙書今古文辨) 하 |
금문과 고문이 서로 같지 않으나, 금문 또한 고문이요 고문 또한 금문이다. 고문 중에는 진본이면서 같은 것이 있고, 진본이면서 다른 것이 있고, 위작이면서 다르고 또 다른 것이 있고, 위작이면서 다르고 또 위작인 것이 있으며, 금문 중에는 한위(漢魏) 시대 이후로 일컬어진 금문과 당(唐) 나라 때에 개정(改定)한 금문이 있으니, 반드시 먼저 이것을 분명히 분변한 다음에야 금문과 고문의 동이(同異)와 득실(得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복생서(伏生書)를 금문이라 일컫는 것은 과두문자(科斗文字)로 된 공벽서(孔壁書)와 구별하여 금문이라고 한 것이니, 문자가 금체(今體)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생서도 진(秦) 나라 분서 이전에 숨겨두었다가 한(漢) 나라가 일어난 다음에 내놓은 것이므로 이 또한 고문이 아닐 수 없으니, 이것이 곧 금문 또한 고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공벽서에 대해서는 《사기》 유림전(儒林傳)에는 이르기를,
"공안국이 금문(今文)으로 읽었다."
하였고, 《한서》 유림전에는 이르기를,"공안국이 금문자(今文字)로 읽었다."
하였는데, 이는 지금의 문자를 이른 말이니, 이것이 곧 고문 또한 금문이라는 것이다.그리고 구양고(歐陽高)와 하후승(夏侯勝)의 금문서(今文書)로서 《상서대전(尙書大傳)》과 한(漢) 나라의 석경(石經)과 《사기》·《한서》·《삼국지주(三國志注)》·삼도부주(三都賦注)·《상서위(尙書緯)》·《상서정의(尙書正義)》 등에 서로 갈음하여 나타난 것은 고문과 다르니, 이것이 곧 금문과 고문이 서로 같지 않은 것이다.
공안국이 《고문상서》를 얻어 29편을 고증하고 거기에 16편을 더 얻어서 이를 나라에 바침으로써 비부(祕府)에 소장되었다가 뒤에 유향(劉向)이 이를 교록(校錄)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하나의 고문이다. 그리고 공안국이 도위조(都尉朝)에게 전하여 아래로 마융·정현의 전주(傳注)에까지 이른 것이 또 하나의 고문이다. 또 두림(杜林)이 서주(西州)에서 《칠서고문상서(漆書古文尙書)》를 얻어 이를 위굉(衛宏)·서순(徐巡)에게 전하였으니, 이것이 하나의 고문이다. 그러나 공안국이 비부에 바친 것과 도위조에게 전한 것과 두림이 서주에서 얻은 것은 비록 각각 하나의 고문이기는 하지만 결국 동일한 고문이니, 이것이 곧 고문의 진본이면서 같은 것이다.
공안국은 금문자(今文字)로 읽었는데, 이를테면 고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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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를 지금의 글자로는 준(蠢) 자로 읽고, 고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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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를 글자로는 단(斷) 자로 읽었으며, 붕(朋) 자의 음을 가차(假借)하여 붕(堋)으로 쓰고, 호(好) 자의 음을 가차하여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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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썼다는 사실 등은 모두 공안국이 처음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각편(各篇)의 대의(大義)를 모두 입으로 설명하여 이를 체전(遞傳)해서 도위조(都尉朝) 이하에 이르렀는데, 그 기문(奇文)·이자(異字)가 이따금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나타나고 있으니, 그래서 허숙중(許叔重)이 이른바,
"그 《역맹씨전(易孟氏傳)》·《서공씨전(書孔氏傳)》·《시모씨전(詩毛氏傳)》·《예기(禮記)》·《주관(周官)》·《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논어(論語)》·《효경(孝經)》이라 칭한 것들은 모두가 고문이다."
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설문해자》에 기재한 벽중 고서(壁中古書)는 바로 그 구문(舊文)을 보존한 것이고, 마융본(馬融本)과 정현본(鄭玄本)은 곧 공안국이 지금의 글자로 바꾸어 읽었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고문의 진본이면서 서로 다른 것이다.그리고 매색이 올린 《공전고문(孔傳古文)》이라는 것은 마융본·정현본과 같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고문의 위작이면서 서로 다른 것이다.
그리고 당(唐) 나라 이전부터 천작하는 무리들이 힘써 이론(異論)을 세우고자 하여 자부(字部)를 의거해서 경문(經文)을 변개시켰으니, 대체로 《설문해자》·《자림(字林)》과 위(魏) 나라 때의 석경(石經) 및 일체 괴기한 글자들을 모아서 만들었다. 송(宋) 나라 곽충서(郭忠恕)에 이르러서는 《고금상서석문(古今尙書釋文)》을 지었으니, 이는 당 나라 때 육덕명(陸德明)이 지은 《경전석문(經典釋文)》이 아니다. 그런데 서초금(徐楚金 초금은 서개(徐鍇)의 자)·가창조(賈昌朝)·하송(夏竦)·정도(丁度)·송차도(宋次道 차도는 송민구(宋敏求)의 자)·왕중지(王仲至 중지는 왕흠신(王欽臣)의 자)·조공무(晁公武)·왕백후(王伯厚)의 무리가 모두 이것을 보았고, 채중묵(蔡仲黙 중묵은 채침(蔡沈)의 자) 또한 이것을 보았기에, 그의 《서경집전》에서 가리키는 고문은 바로 이것이고 진고문이 아니다. 그런데 조공무는 이를 촉(蜀)에다 석각(石刻)하였고, 설계선(薛季宣)은 이것을 취하여 《서고문훈(書古文訓)》을 만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위작이면서 다르고 또 다른 것이다.
그리고 위포(衛包)는 《위공전(僞孔傳)》을 가지고 또 지금의 문자로 개정(改定)을 해놓으니, 위공본(僞孔本)은 오히려 마융(馬融)·정현(鄭玄)·왕숙(王肅)의 본(本)을 따랐던 것인데, 이것이 또 위포의 변란(變亂)을 겪음으로써 새로 배우는 후생(後生)들은 또한 위공본까지도 어디서 볼 수가 없게 되었으니, 이는 또 위작이면서 다르고 또 위작된 것이다.
한위(漢魏) 때 사람들은 구양고(歐陽高)·하후승(夏侯勝)의 《상서》만이 있었고 《고문상서》의 명목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구양고와 하후승은 《금문상서》를 다스린 사람들이었으므로, 한위 때 사람들이 《한서(漢書)》의 주석을 낼 적에 흔히 고문을 가지고 구양고·하후승의 《상서》와 구별하였으니, 이를테면,
"'容'은 고문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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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되었다. '台'은 고문에는 '嗣'로 되었다. '祖'는 고문에는 '阻'로 되었다. '隔'은 고문에는 '擊'으로 되었다."
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다가 진(晉) 이후로 《고문상서》가 성행(盛行)하여 비로소 《금문상서》를 말해서 구별한 사람들이 있었다. 진 나라 말기에 서광(徐廣)은 그의 《사기음의(史記音義)》에서 이르기를,![](http://www.minchu.or.kr/images/kc_img/illustration/mk_h011_av001_080_001.jpg)
'으로 되었다. '台'은 고문에는 '嗣'로 되었다. '祖'는 고문에는 '阻'로 되었다. '隔'은 고문에는 '擊'으로 되었다."
하였고, 배송지(裵松之)가 낸 《삼국지(三國志)》의 주에는 이르기를,
하여, 이 《금문상서》라는 네 글자가 비로소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당(唐) 나라 육덕명(陸德明)이 지은 《경전석문(經典釋文)》에는 이르기를,
"복생(伏生)이 송독(誦讀)하던 것을 《금문(今文)》이라 한다."
하였고, 공영달(孔穎達)이 지은 《오경정의(五經正義)》 가운데 《상서정의》에서는 이르기를,"복생이 전(傳)한 34편을 '금문'이라고 한다."
하였으니, 이것이 한위 시대 이후로 맨 처음 복생서(伏生書)를 '금문'이라고 일컬은 말이다.그후 당 나라 천보(天寶 당 현종(唐玄宗)의 연호 742~756) 3년에는 집현학사(集賢學士) 위포(衛包)에게 명하여 《상서》를 개정하게 하고 이를 《금문상서》라고 명명하였으니, 이것이 당 나라의 《금문》인 것이다. 그런데 채침(蔡沈)의 《서경집전》에서는 위포의 개정본(改定本)을 따랐으니, 이것을 고문이라 하자고 보면 공안국본(孔安國本)이 아니고 아울러 매씨본(梅氏本)도 아니며, 이것을 금문이라 하자고 보면 또한 구양본(歐陽本)·하후본(夏侯本)도 아니고 바로 일개 위포의 개정본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 채침의 《서경집전》 한 가지만 의거하여 고문·금문의 동이와 득실을 고구(考究)하고자 한다면, 이는 주자(朱子)가 이른바, 성인(聖人)에게 영서(郢書)가 있어 후세에 연설(燕說)이 많다는 격이 될 것이다. 경(經)은 《상서》보다 더 오래된 것이 없고, 경의 액화(厄禍)도 《상서》보다 더 심한 것이 없었으니, 지금에 고증이 될 만한 진고문(眞古文)을 의거하여 매색이 만든 《고문상서》의 거짓됨을 바로잡고, 채침이 낸 《서경집전》의 잘못된 것을 고증하여야만 금문과 고문이 비로소 진(眞)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주D-001]허숙중(許叔重) : 후한(後漢) 때의 경학자(經學者)로서 일찍이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저술한 허신(許愼)을 이름. 숙중은 그의 자이다.
[주D-002]《금문상서》에는……되었다 : 《사기(史記)》오제본기(五帝本紀)의 '순양어덕불역(舜讓於德不懌)'이란 말에 대하여 그 〈집해(集解)〉에 나오는 서광(徐廣)의 말에 '불역(不懌)이 《금문상서》에는 불이(不怡)로 되었다.'고 한 것을 이르는데, 지금《서경》의 순전(舜典)에는 '순양우덕불사(舜讓于德不嗣)'라고 되어있다.
[주D-003]《금문》에는……되었다 : 《사기》오제본기의 '유형지정재(惟刑之靜哉)‘란 말에 대하여 그 〈집해〉에 나오는 서광의 말에 '《금문》에는 유형지밀재(惟刑之謐哉)로 되었다.'고 한 것을 이르는데, 지금의 《서경》순전에는 '유형지휼재(惟刑之恤哉)'라고 되어있다.
[주D-004]《금문상서》에는……되었다 : 《사기》 주본기(周本紀)의 '여민시기(黎民始飢)'란 말에 대하여 그 〈집해〉에 나오는 서광의 말에 시기(始飢)가 '《금문상서》에는 조기(祖飢)로 되었다.'고 한 것을 이르는데, 지금의 《서경》순전에는 '여민조기(黎民阻飢)'라고 되어있다.
[주D-005]《금문상서》에는……했다 : 이 말은 《삼국지(三國志)》관녕전(管寧傳) 주석에 나온다.
[주D-006]주자(朱子)가……많다 : 영서 연설(郢書燕說)은 도리에 맞지 않게 견강부회하는 것을 비유한 말. 옛날 영(郢) 땅 사람이 연(燕) 나라 재상에게 보낸 편지를 쓸적에, 촛불 잡은 사람에게 '촛불을 들라.[擧燭]'고 명하자, 글씨를 쓰는 사람이 실수로 거촉(擧燭) 두 자를 편지에 써버렸는데, 연 나라 재상은 이 편지를 받고서 "거촉(擧燭)은 곧 밝음을 숭상하는 뜻이다."고 나름대로 해석을 했던 데서 온 말인데, 주자는 호대원(胡大原)에게 답한 편지에서 이런 비유를 들어 그를 충고했었다. 《韓非子 外儲說》《朱子大全 卷四十六 答胡伯逢》
[주D-002]《금문상서》에는……되었다 : 《사기(史記)》오제본기(五帝本紀)의 '순양어덕불역(舜讓於德不懌)'이란 말에 대하여 그 〈집해(集解)〉에 나오는 서광(徐廣)의 말에 '불역(不懌)이 《금문상서》에는 불이(不怡)로 되었다.'고 한 것을 이르는데, 지금《서경》의 순전(舜典)에는 '순양우덕불사(舜讓于德不嗣)'라고 되어있다.
[주D-003]《금문》에는……되었다 : 《사기》오제본기의 '유형지정재(惟刑之靜哉)‘란 말에 대하여 그 〈집해〉에 나오는 서광의 말에 '《금문》에는 유형지밀재(惟刑之謐哉)로 되었다.'고 한 것을 이르는데, 지금의 《서경》순전에는 '유형지휼재(惟刑之恤哉)'라고 되어있다.
[주D-004]《금문상서》에는……되었다 : 《사기》 주본기(周本紀)의 '여민시기(黎民始飢)'란 말에 대하여 그 〈집해〉에 나오는 서광의 말에 시기(始飢)가 '《금문상서》에는 조기(祖飢)로 되었다.'고 한 것을 이르는데, 지금의 《서경》순전에는 '여민조기(黎民阻飢)'라고 되어있다.
[주D-005]《금문상서》에는……했다 : 이 말은 《삼국지(三國志)》관녕전(管寧傳) 주석에 나온다.
[주D-006]주자(朱子)가……많다 : 영서 연설(郢書燕說)은 도리에 맞지 않게 견강부회하는 것을 비유한 말. 옛날 영(郢) 땅 사람이 연(燕) 나라 재상에게 보낸 편지를 쓸적에, 촛불 잡은 사람에게 '촛불을 들라.[擧燭]'고 명하자, 글씨를 쓰는 사람이 실수로 거촉(擧燭) 두 자를 편지에 써버렸는데, 연 나라 재상은 이 편지를 받고서 "거촉(擧燭)은 곧 밝음을 숭상하는 뜻이다."고 나름대로 해석을 했던 데서 온 말인데, 주자는 호대원(胡大原)에게 답한 편지에서 이런 비유를 들어 그를 충고했었다. 《韓非子 外儲說》《朱子大全 卷四十六 答胡伯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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