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서변(易筮辨) 하(下) |
대체로 주공(周公)이 효사(爻辭)를 지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실증(實證)을 빙거할 만한 경적(經籍)이 있는 다음에야 가능할 것이다. 만일 후세의 제유(諸儒)들이 자신의 생각으로 추측해서 한 말만을 빙거하고 도리어 한지(漢志)의 진실한 말을 무시해 버리려거든, 반드시 그의 문견이 공자(孔子) 이전으로 올라간 다음에야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唐) 나라 공씨(孔氏)가 이미 말을 해놓음으로부터 시끄러이 서로 다투어 결정이 나지 않았는데, 송(宋) 나라 이후의 제가(諸家)들이 이 말을 서로 인습하여 전함으로써 숙사(塾師)들이 이 말을 익히 외어서 본디 사실이 그러한 것으로 여겨온 지가 어제 오늘이 아니다. 그러니 나 같은 어리석은 사람이 어찌 감히 단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오직 이 경(經)을 말하는 데 있어서는 징신(徵信)을 위주로 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가장 그 유폐(流弊)를 경계해야 할 것은 더더욱 자신의 생각으로 미루어 부연해서 이를 전하여 정설(定說)로 만드는 데에 있는 것이다. 내가 제가들의 설(說)에 대하여 함부로 반박하는 일을 감히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다만 나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진실로 실다운 근거가 아니면 차라리 빼놓을지언정 질정하여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대체로 경을 말하는 이들이 우연히 한 가지 일이나 한 가지 뜻을 인하여 문득 스스로 뜻을 세워 추측해 놓으면, 경사(經師)들이 서로 이어서 마침내 일정한 말로 만들어버리게 되니, 이것이 곧 그 자취는 해로움이 없을 듯하나 실상은 경의(經義)를 크게 해치는 것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주공이 효사를 지었다는 말에 대해서는 설사 사람들이 잘못 그 말을 믿는다 하더라도 아예 사리에 구애될 것은 없다. 그러나 나는 후유(後儒)들이 추측해서 말해놓은 폐단에 대해서 감계(鑑戒)된 것이 깊었다. 그러므로 부득불 여기에 자세히 말하여 재삼 신중을 기하는 바이다.
[주D-001]주공(周公)이……말 : 당(唐) 나라 때 공영달(孔穎達)의《주역정의(周易正義)》의 서문에서 , 괘사(卦辭)는 문왕(文王)이 짓고 효사(爻辭)는 주공(周公)이 지었다는 뜻으로 말하고, 또《주역》의 제작 과정에 대해서 말하기를 "삼성(三聖 : 복희(伏羲)·문왕(文王)·공자(孔子))만 말하고 주공을 세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일을 이은 때문이다."고 한 데서 온 말 인데, 이 때문에 주공이 효사를 지었다는 설이 후세에 파다하게 되었던 것이다.
[주D-002]한지(漢志)의……말 : 한지는《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를 이르는데, 예문지에 "문왕 (文王)은 제후(諸侯)로서 천명(天命)을 순종하여 도를 행하면서 천인(天人)의 점(占)을 징험하여 본받을 수 있으므로, 이에《주역》의 육효(六爻)를 중히 여겨 상하편(上下篇)을 지었다."고 한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3]공씨(孔氏)가……해놓음으로부터 : 공씨는 곧 당 나라 공영달(孔穎達)을 말하고, 그가 말해놓은 것이란 곧 주공(周公)이 효사(爻辭)를 지었다는 말을 가리키는데, 자세한 것은 위의 주 61)에 나타나 있다.
[주D-002]한지(漢志)의……말 : 한지는《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를 이르는데, 예문지에 "문왕 (文王)은 제후(諸侯)로서 천명(天命)을 순종하여 도를 행하면서 천인(天人)의 점(占)을 징험하여 본받을 수 있으므로, 이에《주역》의 육효(六爻)를 중히 여겨 상하편(上下篇)을 지었다."고 한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3]공씨(孔氏)가……해놓음으로부터 : 공씨는 곧 당 나라 공영달(孔穎達)을 말하고, 그가 말해놓은 것이란 곧 주공(周公)이 효사(爻辭)를 지었다는 말을 가리키는데, 자세한 것은 위의 주 61)에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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