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인재를 내리는 데 있어서는 애당초 남북(南北)이나 귀천(貴賤)의 차이가 없으나, 누구는 이루고 누구는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이 아이 적에는 흔히 총명한데, 겨우 제 이름을 기록할 줄 알 만하면 아비와 스승이 전주(傳注)와 첩괄(帖括)로 그를 미혹시키어, 종횡무진하고 끝없이 광대한 고인들의 글을 보지 못하고, 한번 혼탁한 먼지를 먹음으로써 다시는 그 머리가 맑아질 수 없게 되는 것이 그 첫째이다. 그리고 다행히 제생(諸生)이 되었더라도 머리가 둔하여 민첩하고 통달하지 못하여 아무런 보람도 없이 어렵사리 시장(試場)을 출몰하다가 오랜 뒤에는 기색(氣色)조차 쇠락해져 버리니, 어느 겨를에 제한된 테두리 밖을 의논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둘째이다. 사람이 비록 재주는 있다 하더라도 또한 그의 생장(生長)한 곳을 보아야 한다. 궁벽하고 적막한 곳에서 생장하여 산천(山川)·인물(人物)과 거실(居室)·유어(遊御) 등에서 크고 드러나고 높고 웅장함과 그윽하고 특이하고 괴상하고 호협한 일들을 직접 목격해 보지 못함으로써, 마음이 세련된 바가 없고 흉금이 풍만해지지 못하여 이목(耳目)이 이미 협소함에 따라 수족(手足) 또한 반드시 굼뜨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그 셋째이다. 이상의 세 가지가 사람으로 하여금 재력(才力)이 꺾여 다해서 비통한 지경에 이르게 하는 것이 왕왕 이와 같다. 그러므로 나이 많은 고루한 유생(儒生)도 문(文)이 꼭 없을 수는 없으나, 귀로는 많은 것을 듣지 못했고 눈으로는 많은 것을 보지 못했음으로 인하여 촌스럽고 고루한 지식만을 내놓게 되니, 천하의 광대한 문(文)에 비유한다면 어찌 다시 문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문의 묘(妙)는 남의 것을 따라 흉내나 내는 그런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연의 영기(靈氣)가 황홀하게 찾아오고 생각하지 않아도 이르러와서 그 괴괴하고 기기함을 어떻게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주D-001]전주(傳注)와 첩괄(帖括) : 전주는 모든 경서(經書)의 주석을 말하고, 첩괄은 과거(科擧)에 응시할 사람이 경서의 난어구(難語句)가 출제(出題)될 때에 대비하여 경서 가운데 난어구들을 모아서 이를 시부(詩賦) 등으로 엮어서 암기(暗記)하기에 용이하도록 하는 것을 이른 말로, 전하여 과거 공부를 의미한다. [주D-002]유어(遊御) : 말을 타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호탕하게 노니는 것을 말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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