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은문집 서 무진 (陶隱文集序 戊辰 )
정도전(鄭道傳)
일월ㆍ성신(日月星辰)은 하늘의 문[天之文]이고 산천ㆍ초목(山川草木)은 땅의 문[地之文]이며, 시서ㆍ예악(詩書禮樂)은 사람의 문[人之文]이다. 그러나 하늘의 문은 기(氣)로써 되고 땅의 문은 형(形)으로써 되지마는 사람의 문은 도(道)로써 이룩되는 까닭에, 문(文)을 ‘도를 싣는 그릇이다[載道之器].’라고 하니, 그는 인문(人文)을 말하는 것이다. 그 도(道)만 얻게 되면 시서ㆍ예악의 가르침이 천하에 밝아서 삼광(일(日)ㆍ월(月)ㆍ성(星)을 말함)이 순조롭게 행하고 만물이 골고루 다스려지므로, 문의 극치는 여기에 이르러야 이룩되는 것이다.
선비가 천지의 사이에 나서 빼어난 기운을 받아 문장으로 그를 나타내는데, 혹은 천자의 뜰에서 드날리고 혹은 제후의 나라에서 벼슬을 한다. 윤길보(尹吉甫) 같은 이는 주나라에서 목여(穆如)의 아(雅)를 짓고, 사극(史克)은 노(魯)나라에서 역시 무사(無邪)의 송(頌)을 지었으며, 춘추(春秋)시대에 이르러서도 열국(列國) 대부들이 조빙(朝聘)하고 왕래하면서 알맞는 시를 지어 물(物)을 감상하고 뜻을 붙였으니, 저 진(晉)의 숙향(叔向)이나 정(鄭)의 자산(子産) 같은 자가 역시 높게 평가될 만하고 한(漢)의 전성기에 이르러서는 동중서(董仲舒)ㆍ가의(賈誼) 같은 무리들이 책(策)과 상소를 올려 하늘과 사람의 온축(蘊畜)을 밝히고 치안(治安)의 요령을 논하였으며, 매승(枚乘)과 사마상여(司馬相如) 같은 이는, 제후의 나라에 노닐며 영풍(英風)을 떨치고 조화(藻華)를 거둬 잡아 성정(性情)을 읊어서 문장의 덕(德)을 아름답게 하였다.
우리 나라는 비록 바다 밖에 있으나 대대로 중국의 풍속을 사모하여 문학하는 선비가 전후로 끊어지지 않았다. 고구려에는 을지문덕(乙支文德), 신라에는 최치원(崔致遠), 본조(本朝)에 들어와서는 시중(侍中) 김부식(金富軾)ㆍ학사(學士) 이규보(李奎報) 같은 이들이 우뚝한 존재이었고, 근세에 와서도 대유(大儒)로서 계림(鷄林)의 익재(益齋) 이공(李公)같은 이는 비로소 고문(古文)의 학을 제창했는데, 한산(韓山) 가정(稼亭) 이공(李公 이곡(李穀))과 경산(京山) 초은(樵隱) 이공(李公 이인복(李仁復))이 그를 따라 화답하였다. 그리고 목은(牧隱) 이 선생은 일찍이 가정의 교훈을 이어받고 북으로 중원에 유학하여 올바른 사우(師友)와 연원(淵源)을 얻어 성명(性命)ㆍ도덕의 학설을 궁구한 뒤에 귀국하여 여러 선비들을 맞아다가 가르쳤다.
그래서 그를 보고 흥기한 이가 많았으니, 오천(烏川) 정공 달가(鄭公達可 정몽주(鄭夢周)ㆍ경산(京山) 이공 자안(李公子安 이숭인(李崇仁))ㆍ반양(潘陽) 박공 상충(朴公尙衷)ㆍ밀양(密陽) 박공 자허(朴公子虛 박의중(朴宜中))ㆍ영가(永嘉) 김공 경지(金公敬之 김구용(金九容))와 권공 가원(權公可遠 권근(權近))ㆍ무송(茂松) 윤공 소종(尹公紹宗)들이며, 비록 나같이 불초한 자로도 또한 그분들의 대열에 끼이게 되었다.
그 중에 자안(子安)씨는 정심(精深)하고 명쾌한 것이 여러분들을 압도하였으니, 그는 선생의 말씀을 들으면 조용히 해득하고 마음으로 통하여 두 번 묻지 아니하였고, 그 홀로 깨달은 것에 있어서는 사람의 의사 밖에 뛰어났으며, 모든 서책을 널리 읽었는데도 한 번 본 것은 문득 기억하였다. 그리고 그가 저술한 몇 책의 시와 문은, 《시경》의 흥비(興比) 와 《서경》의 전모(典謨) 를 근본으로 했고, 그 쌓인 화순(和順)이나 발로되는 영화(英華)는 모두가 예악(禮樂)에서 나왔으니, 도(道)를 깊게 안 자가 아니면 그럴 수 있겠는가?
명나라가 천명(天命)을 받아 황제가 천하를 차지하자 덕을 닦고 무(武)를 지양하여 문궤(文軌)를 같이하여, 예(禮)를 제정하고 악(樂)을 만들어 인문(人文)을 좋게 형성하여 천지를 순서 있고 바르게 다스리게 된 그때를 당하여 우리 나라의 사대(事大) 문자가 대부분 자안씨에게서 나왔는데, 천자는 그를 보고 아름답게 여겨 이르기를, ‘표(表)의 사연이 진실되고 간절하다.’고 하였다.
지금에 그는 세시(歲時)의 인사를 닦기 위하여 요동(遼東)ㆍ심양(瀋陽)을 지나고 제ㆍ노(齊魯)를 거치고 세차게 흐르는 황하(黃河)를 건너서 천자의 조정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그 관감(觀感)하여 얻을 것이 어떻다 하겠느냐? 아아! 계찰(季札)이 노(魯)에 가서 주(周)의 악(樂)을 구경하고 그 덕이 성대한 것을 능히 알았거늘, 자안씨의 이번 길은 마침 제작(制作)의 가장 전성기(명(明)을 지칭함)를 당하였으니, 장차 보고 느낀 바를 나타내서 공덕을 기술하면 명(明)의 아송(雅頌)이 되어, 윤길보(尹吉甫)를 뒤따라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자안씨가 돌아와서 그를 나에게 보여 준다면 마땅히 제목을 ‘관광집(觀光集)’이라고 붙이겠다.
[주C-001]무진 : 고려 우왕(禑王) 14년(1388).
[주D-001]목여(穆如)의 아(雅) : 《시경》 대아 증민편(大雅烝民篇)을 가리킴. 이는 주선왕(周宣王) 때 중산보(仲山甫)가 제(齊)로 성을 쌓으러 가는데 윤길보(尹吉甫)가 그를 전별한 시다. 그 맨 끝구에 ‘길보가 송을 지으니 목(穆)함이 청풍 같도다[吉甫作誦穆如淸風].’라는 글귀가 있다.
[주D-002]무사(無邪)의 송(頌) : 《시경》 노송 경편(魯頌?篇)을 이름. 이 송시는 노희공(魯僖公)의 말[馬]이 성한 것을 읊은 시로, 맨 끝구에 ‘사무사 사마사조(思無邪思馬斯?)’란 글귀가 있다.
[주D-003]고문(古文)의 학 : 당대(唐代)의 고체(古體) 산문(散文)을 고문이라 하는데, 문(文)은 진한(秦漢) 이전을, 시는 성당(盛唐) 이전을 본보기로 해야 한다는 주장.
[주D-004]흥비(興比) : 《시경》 6의(義)에서 둘을 든 것임. 6의는 풍(風)ㆍ부(賦)ㆍ비(比)ㆍ흥(興)ㆍ아(雅)ㆍ송(頌).
[주D-005]전모(典謨) : 《서경》의 요전(堯典)ㆍ순전(舜典)ㆍ대우모(大禹謨)ㆍ고요모(皐陶謨)를 가리킴.
[주D-006]계찰(季札)이 …… 알았거늘 : 계찰은 춘추 시대 오왕(吳王) 수몽(壽夢)의 작은 아들인데 아주 어질었다. 일찍이 노(魯)에 가서 주(周)의 악(樂)을 보고서 열국의 치란 흥쇠를 알았다 한다.
<삼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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