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 원년(1345), 원 지정 5년
○ 봄 정월 갑오일에 지진이 일어나 이틀 동안 계속되었다.
○ 5월에 원 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와서 무늬 놓은 모시[紋苧布]를 요구하였다.
○ 가을 7월 갑신일에 혜성이 나타났으며 정해일에 또 나타났다.
○ 원 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와서, 곰과 염소의 가죽[熊?皮]을 요구하고, 또 왕에게 의복과 술을 주었다.
○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정포(鄭鋪)가 원 나라에서 졸하였다. 정포는 학문을 좋아하고 문장을 잘 지었다. 충혜왕 때에 좌사의가 되어 왕에게 글을 올려 정부의 시책을 많이 논박하였으므로, 집정자들의 미움을 받아 울주(蔚州)의 수령으로 나가 있었다. 비록 벽지 생활을 하는 중에도 시를 읊으면서 태연히 지냈다. 상국에 가서 벼슬할 뜻이 있어 일찍이 개연히 말하기를, “대장부가 어찌 답답하게 일방(一方)에만 있을 수 있겠는가." 하고, 드디어 원 나라에 가서 별가불화 승상(別哥不花丞相)을 보았는데, 그는 정포를 한 번 보고 유별나게 여기어 천자에게 천거하려 하였는데 마침 그때 병으로 죽었다.
○ 12월에 좌정승 김영후를 원 나라에 보내어 방물을 바치게 하였다.
○ 왕후(王煦)를 파면하고, 김영후를 우정승에, 인승단(印承旦)을 좌정승에, 이곡(李穀)을 밀직사(密直使)에 임명하였다. 왕후는 정방을 폐지하고 과전(科田)을 폐지한 까닭에 욕심 많고 나쁜 무리의 미움을 받아서 파면되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실망하였다.
<고려사절요 제25권 김종서(金宗瑞)>
'▒ 가정자료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묘 3년(1351), 원 지정 11년 이곡(李穀)이 졸하였다. 시호를 문효(文孝)라고 하였다-김종서- (0) | 2007.02.28 |
---|---|
편년강목(編年綱目)을 한산군(韓山君) 이곡(李穀)등에게 명하여 편찬..-김종서- (0) | 2007.02.28 |
이곡(李穀)이 원 나라에서 재상에게 글을 보내어 말하기를,,,-김종서- (0) | 2007.02.28 |
이곡(李穀)이 원 나라에 고려에서 처녀를 구하는 것을 중지하여 줄 것을 청하고..-김종서- (0) | 2007.02.28 |
고려국 봉익대부 검교밀직제학 보문각제학 상호군 영록대부 형부상서 정선생 행장-정도전(鄭道傳) - (0) | 2007.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