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생지
○ 서천 한산 출생
■ 주요 약력
○ 1492년(성종 23년)~1549년(명종4년)
○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별좌(別座) 김수천(金壽千)의 딸
○ 신사임당, 허난설헌과 더불어 조선조 중기의 3대 여류시인
■ 인물 탐구
○ 조부 김축으로부터 시,문,서(詩,文,書)를 익혔고 이후에는 수예(繡藝)에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함
○ 서기 1683년에 애산 김두명이 중국사행을 다녀오면서 명나라의 목재 전겸익이 편집한 열조시집이란 책자를 가져오면서 임벽당 김씨의 명성이 더해감
○ 열조시집에는 임벽당 김씨의 시 3수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를 본 조야(朝野)에서는 그제야 명나라에까지 유명해진 임벽당 김씨의 뛰어난 시재에 경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명인 재상들이 다투어 서문과 발문을 찬하며 임벽당 유고가 높이 평해짐
○ 그의 시는 《열조시집(列朝詩集)》 · 《국조시산(國朝詩刪)》 · 《난설헌집(蘭雪軒集)》에 모두 9수가 실려 있음
○ 시집으로 《임벽당집(林碧堂集)》이 규장각과 일본인 고교형(高橋亨)에게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음
○ 묘는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에 있다고 《기계유씨족보(杞溪兪氏族譜)》에 전함
-신사임당,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중기 3대 여성시인으로 명성 높아-
-시·문·서와 수예에 탁월한 재능-
서천라이온스클럽 20주년 봉사사업으로 세우게 된 시비의 주인공 임벽당 의성 김씨(義城金氏)는 1492년(성종 23년)에 태어나 1549년(명종 4년) 58세의 일기로 신사임당(1512∼1559), 허난설헌과 더불어 조선 중기 3대 여성시인으로 살다 간 자랑스런 이 고장의 인물이다.
-비인 남당리 유씨문중으로 출가-
그는 부여 중정리에서 김수천(金壽千·漢城庶尹贈 兵曹參判)과 어머니 한양 조씨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나 할아버지 김축(金軸·司諫院 司諫)으로부터 시·문·서(詩文書)를 익혔고, 이후에 수예(繡藝)에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고 한다.
서기 1509년(중종 4년) 18세에 비인면 남당리의 유여주(兪汝舟·進士)와 혼인하여 아들 유위(兪緯)를 얻었다.
당시 시아버지 유기창(兪起昌·忠淸水軍節度使 定平 甲山府使 僉知 中樞府使)은 중종반정 때 유배지 거제도에서 풀려나 병조참의 및 동지중추부사 등의 제수도 사양하고 비인면 남당리에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킴으로써 숙종조에 비인 청절사에 배향되었다.
남편 유여주 또한 기묘사화(중종 14년)가 터지자 남당리 도화동(桃花洞)에서 우거하면서 임벽당을 짓고 기묘의 의리를 지키면서 학인(學人), 현인(賢人), 처사(處士), 의인(義人) 등으로 추앙받았으며, 의성 김씨 또한 시·문·서·수에 정진하여 명원 임벽당 의성 김씨로 명성을 더해갔다.
-임벽당은 명나라 황제가 지어준 호-
임벽당은 김씨의 호이며, 이는 당시 중국의 황제가 내려준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생존시에도 명원으로 이름이 높았지만 사후(死後)에는 그 명성이 더욱 세상에 알려졌으니 1683년 (숙종 9년)에 애산 김두명(艾山 金斗明·書狀官)이 중국사행을 다녀오면서 명나라의 목재 전겸익(牧齋 錢謙益)이 편집한 열조시집이란 책자를 가져오면서 더욱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 열조시집에는 임벽당 김씨의 시 3수가 수록되어 있었으며 이를 본 조야(朝野)에서는 그제야 명나라에 까지 유명해진 임벽당 김씨의 뛰어난 시재에 경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명인 재상들이 다투어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을 써 칭찬 하며 임벽당 유고가 높이 평해졌다. 따라서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요 영의정이었던 남구만(南九萬)의 서문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명나라 열조시집에 수록되어
지금 전하는 시문은 임벽당 의성 김씨의 유품인 베개에서 전래되고 있는 것이라 하는데, 그 베개 양각에는 임벽당이란 글씨를 수놓고 베개 천에는 임벽당 시 두 수를 수놓았다 한다.
비인면 남당리에는 임벽당 내외분이 심었다는 은행나무 세 그루 중 두 그루가 보호수로 남아 있었으나 한 그루는 불에 탔고, 나머지 한 그루는 어른 여섯명이 둘러서야 잴 수 있는 크기로 그 위용과 함께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고 있으며, 연당배미라 부르는 논이 있는 곳에는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임벽당이라 부르던 정자와 다리에 쓰던 돌기둥은 그 일부가 청절사로 옮겨져 지금도 염립문(廉立門)을 떠받쳐주고 있다.
임벽당 김씨는 이율곡 선생의 어머니인 신사임당과 유명한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의 누님인 허난설헌의 유명세에 비해 그분들과 옥석을 가리기 어려울 만한 작풍(作風)과 좋은 작품을 남겼으면서도 5백여년을 그늘에 가려진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비 건립, 주변 정비사업 추진
따라서 후세사람들이 이를 안타깝게 여기 던 중 서천라이온스클럽에서 20주년 기념 봉사사업으로 시비를 세워 그 뜻을 기리게 되었다.
서천군에서는 후손(대표:兪忠根)들과 연계하여 임벽당 유적주변 정비사업을 추진중에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은행나무 보호수 관리, 임벽당 유고 간행, 임벽당 시훈당 복원, 임벽당정자복원(연차사업), 유허지, 유허비 건립, 의성 김씨 사적비 건립, 임벽당화, 임벽당 교실 건축 등의 사업을 추진키 위해 1억8천만원의 소요 경비중 일부 사업비를 도에 신청중이다.
<참고문헌/충남향토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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