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남이상재 ▒

월남시민문화연구소가 월남의 전기 발간을 결정

천하한량 2007. 2. 17. 00:20

월남 이상재 탄생 150주년/꼿꼿한 기개 굽히지 않는 '민족의 등불'



11월 21일(음 10월 26일)은 한국 근대 선각자 중 한 분인 월남(월남) 이상재(이상재:1850~1927) 선생의 탄생 150주년이 되는 날.
시민운동가(독립협회 주역, 서울YMCA 초대 한국인 총무)와 언론인(조선일보 4대 사장)으로서 근대사에 두드러진 발자취를 남긴 그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한 평전이 후배인 전택부(전택부·85) 서울 YMCA 명예총무에 의해 출간돼, 21일 오후 4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추모식을 겸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월남 이상재의 삶과 한마음 정신’이란 제목의 평전은 기개와 슬기, 청빈으로 일관하며 어려운 시기 민족의 등불이 됐던 월남 선생의 일생을 각종 새로운 자료들을 통해 재구성하고 있다.
일화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월남 선생이 평생 서울에서 자기 집을 갖지 못할 정도로 어렵게 생활했다는 사실.
그는 한말 고위 관료와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근무했지만 일년에 몇 번씩 이사를 다닐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
추운 겨울철 냉방에서 떨고 있는 것을 본 지인(지인)이 나무 살 돈을 주었지만 잠시 뒤 인사차 찾아 온 유학생에게 그 돈을 바로 건네 줄 정도로 월남은 금전에 초연했다.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3.1운동에서 월남 선생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주역이었고 당시 기독교계의 대표적 지도자였던 월남 선생이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당시부터 말이 많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월남 선생이 3.1운동의 수령(수령)이 될 것을 권유 받았지만 천도교 교주인 손병희(손병희)에게 양보했으며, 또 사태를 수습하고 새로운 운동을 이끌어가기 위해 월남 선생은 뒤에 남아 있기로 민족지도자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월남 이상재의 삶과 한마음 정신’의 중요한 특징은 월남 선생의 민족운동 뿐 아니라 사상도 함께 조명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월남 선생은 소크라테스처럼 민중과의 대화를 즐겼고 저술을 많이 남기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월남의 사상은 처음과 끝이 한결같고, 근원을 추구하는 ‘한마음 정신’으로 요약된다.
이는 그가 50대 초반 3년간 감옥 생활을 하면서 기독교 신자가 된 후 더욱 깊어졌으며 그 내용에 있어 원효의 ‘일심(일심)’ 사상과 통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1977년 고(고) 안병무(안병무) 교수로부터 월남 선생이 사상적으로도 뛰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전기를 쓰겠다는 생각을 처음 가졌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서울YMCA 부설로 문을 연 ‘월남시민문화연구소’가 월남의 전기 발간을 결정하자 올 초부터 본격적으로 집필에 들어갔다.
이번 전기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례적으로 460여장의 사진과 20여장의 삽화를 과감하게 실었다.
서울YMCA와 조선일보사 등 월남 선생이 몸담았던 두 기관의 공동 출간이며 비매품이다.
추모식 및 출판기념회에는 표용은(표용은) 서울YMCA이사장, 방상훈(방상훈) 조선일보사장, 서영훈(서영훈) 새천년민주당대표, 이부영(이부영) 한나라당부총재, 고건(고건) 서울시장, 이일규(이일규) 한산이씨대종회회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조선일보 2000-11-21 21면 (문화) 45판 기획.연재 2271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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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민기자 sm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