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모시 마을을 지정하자
서천 팔경 중에 하나인 한산 모시 마을은 우리 고장을 대표하는 한산 모시와 관련된 역사 자료와 생산품을 전시한 한산 모시관과 주변 마을을 말한다. 예부터 한산 세모시는 섬세할 뿐 아니라 청아한 멋이 있어 모시의 대명사로 잘 알려져 있다. 백제시대로부터 서천군 한산면 건지산 기슭에서 야생 저마가 재배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임금에게 바치는 진상품으로 명성을 떨쳐 1993년 이를 보존하고 홍보하기 위하여 마련한 곳이 한산 모시관이다.
특히 우리 고장에서 생산되는 세모시는 인체에 해가 없는 천연 섬유로서 색깔이 백옥처럼 희고 맑으며 섬세하고 가벼워 여름철 옷감으로 으뜸이다. 올이 가늘고 직조상태가 고르며 질감이 깔끔하고 까칠까칠해 시원함을 주며 내구성이 뛰어나 빨아 입을수록 빛이 바래지 않고 윤기가 항상 돈다. 모시의 용도로는 우아하고 고전미 넘치는 한복과 다양한 디자인의 개량한복, 양장, 방석, 이불, 수의 등으로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제품과 역사 그리고 모시 짜는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한산 모시관이다. 한산 모시관을 팔경으로 선정한 것은 경치보다 서천을 대표하는 모시에 주목하여 지정하였다.
먼저 한산 모시관의 아름다움을 우리는 담백한 모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인위적인 건물보다는 한산 아주머니의 특유의 인내심과 정성이 담긴 모시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야한다. 한산 모시는 여인들의 삶이오 인생이었다. 베틀에 앉아서 사랑도 삭키고, 증오도 삭켜야 한다. 지나온 세월의 여한을 잉아에 걸고 날줄 사이로 씨줄을 던지고 바디를 내려치면 다시금 일어나는 그리움을 밀어내야 한다. 어느 세월 이 한 필이 완성될까 하지만 반짝이는 아들 녀석 눈동자를 생각하면 새벽에 닭이 울어 날이 새어 버린다. 여인의 한을 듬뿍 담고 세모시는 새벽 장에서 팔려 간다. 한산 여인의 근면성을 엿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한산 여인들은 부지런해야한다. 생활은 생활대로 해야하고 모시는 모시대로 짜야한다. 한산 여인의 가사는 모시 짜기가 포함되어 있다. 우물가에서 군소리 할 시간이 없다. 남의 말 할 시간도 들을 시간도 없다. 이렇듯 한산 모시는 한산 여인의 바지런한 삶을 반영하고 있어 더욱 아름답고 가치가 있다.
또한 한산 모시는 만들어지면서부터 부정을 거부하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담백한 모시에 불순물이 묻는다면 오점(汚點)이다. 모시옷을 입은 사람들은 조심스럽고 더러운 것에 가까이 하길 꺼려한다. 사방이 깨끗하게 정리 정돈 된 장소에 있을 때 모시옷을 입은 사람의 마음도 편하고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 모시의 성질과 모시옷을 입은 사람이 닮아 가는 것이다. 한산 이상재 선생의 모습을 보라 대쪽같은 외마디는 일본인의 간담을 써늘하게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자란 모시의 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와 같이 한산 모시관의 아름다움을 모시에서 찾는 다면 가장 단순하고 담백한 멋을 찾게 될 것이다.
한산 모시의 멋을 듬뿍 간직하고 있는 한산 모시관을 둘러보자. 먼저 한산 모시관을 상징하는 모시짜는 여인상이 있는데 이는 전수 교육관에 비해서 너무나 왜소하다. 가까이에서 모시 짜는 여인의 모습을 보면 모시 짜던 한산의 여인이 아니고 바로 옆 양반 집에서 귀염을 받고 자란 여인이다. 모시를 짰던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라. 배고파 베틀에 앉으면 밥 생각이 절로 나지만 먹을 것이 없어 상추를 뜯어 고추장 찍어 먹고 나면 젖 달라는 녀석에게 없는 젖 물리고 베틀에 다시 앉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 어머니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모시 짜는 것 자체가 삶이요. 노동이었던 것이다. 모시 짜는 여인상을 건물과 조화롭게 배치하여 좀더 친근감 있는 상징물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3채의 기와집과 전통 공방인 초가집을 보자. 이는 안채의 주인 양반과 아래채의 하인들이 거주하는 초가집으로 확연히 구분되고 있다. 공방이니까 초가이어야 한다면 할말이 없다. 어디 모시 짜는 사람들이 팔작 지붕의 기와집 움집에서 살았는지 의문이 생긴다. 토속관에는 움집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한산의 전통 가옥 속의 움집이 아니다. 이것은 별채이다. 한산의 가옥에는 반드시 동반하는 것이 마루 밑이나 부엌 안쪽에 설치된 지하 움집이다. 움집은 베틀과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이다. 이런 가옥의 구조를 보여 줘야 한산 모시의 제조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움집에서 모시를 짜야 할 이유는 습도 유지이다. 그래서 오늘날 모시 짜는 곳에 가습기가 있어 습도를 유지해 준다. 모시에 수분이 없으면 모시 올이 풀려 모시를 짤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상태에서라도 한산 지역의 옛 가옥을 옮겨 놓아 한산 모시 짜는 본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으면 한다. 그렇게 할 때 한산 모시 짜기의 특징과 여인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상으로 한산 모시관의 아름다움을 모시의 특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과 모시 짜는 여인상과 움집에 대한 소견을 제시하였다. 아울러 한산의 전통 가옥이 가장 많이 남아 있고, 모시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고 있어 모시의 맥을 이을 가능성이 많은 마을을 한산 모시 마을로 지정 보호하자. 그들의 삶을 돌아보며 한산 모시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자. 사람이 사는 곳에서 한산 모시의 멋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때이다. 그래야 진정 서천 팔경의 하나인 한산 모시 마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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