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도 우려... 윤석열 정부 황당 장면 10가지 [이게 이슈]
[유현재 기자]
▲ 2019년 7월 16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재단(프레스센터)앞마당에서 열린 언론자유 상징물 '굽히지 않는 펜' 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제막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
ⓒ 공동취재사진 |
언론계에서 매우 상징적인 공간 중 하나인 광화문 프레스센터 입구에는 '굽히지 않는 펜'이란 조형물이 있다. 지난 2019년 한국기자협회 등 현업 단체와 120여 언론시민단체 등이 함께 마련하였으며,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지난 세월 언론자유를 위해 희생한 많은 이들의 뜻에 경의를 표하려는 상징물이다. 조형물 앞에서 즉물적으로 느껴지는 "부러질지언정 꺾이진 않겠다"라는 강력한 명제는, 언론의 자유야말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내줄 수 없다는 언론인들의 호탕한 기개를 느끼게 만들어, 지나치는 이들까지 든든하게 만들어 준다.
윤석열 정부 2년여, 중간선거라 해도 무방할 만큼 의미 있는 4월 총선도 이제 임박해 있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일관되게 언론의 자유가 너무나 소중하다고 주장했음은 물론, 대통령이 임명한 언론계 주요 인사들 또한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취임사 등을 통해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이며 반드시 존중되어야 함을 피력한 바 있다.
이분들의 주장이 온전히 진심이었거나, 최소한 그 주장에 맞게 행동했다면, 어느덧 2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우리의 언론이 누리는 자유는 어떤 잣대로든 이전보다 좋아졌어야 맞다. 아니 최소한 언론의 자유를 비롯한 언론 환경이 후퇴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야 맞다는 뜻이다.
2023년, 국경없는기자회는 우리나라의 언론자유지수를 180개국 중 47위(2022년 43위)에 놓았다.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환경을 평가하는 기관들도 한국의 현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스웨덴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는 지난 7일 연례보고서 '민주주의 리포트 2024'를 통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지수가 2021년 17위에서 지난해 47위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락 이유는 충격적이다. "'독재화(Autocratization)'가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물론 사라지고 있는 언론의 자유도 위 평가의 근거가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한겨레, 3월 15일).
현 정권 이전, 한동안 당연하게 누려왔던 언론의 자유는 조금씩 박살나고 있는 중이다. 굳이 외국 언론과 관련 단체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현 정부 출범 후 언론의 자유가 깨어지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은 계속 등장하고 있다. 불과 2년 만에 발생했던 주요 장면들을 짚어본다.
- 2인 혹은 소수 결정 기구로 전락한 다자 합의체, 방송통신위원회
▲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월 7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YTN의 최대 주주를 유진이엔티(유진그룹)으로 변경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
ⓒ 이정민 |
민주주의의 기본인 감시와 견제, 협의의 출발은 물리적 균형이다. 진보와 보수, 이쪽과 저쪽이 함께 앉아야 하니 껄끄럽고 번거롭지만 그게 민주주의라 믿어왔다. 이 같은 원칙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등 우리나라 언론과 미디어 관련 중대 결정을 담당하는 기구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하지만 5인 합의체인 방통위의 경우 국민들은 이미 매우 오랜 기간 2인 혹은 3인이 앉은 모습을 접하고 있을 뿐이다.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야당 몫으로 추천한 최민희 전 의원에 대해 대통령의 임명이 한없이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후보자는 지난해 11월 7일 자진해서 사퇴했다. 상황과 장소는 다르지만 일종의 거부권 정치는 국회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단 뜻이다. 반면 여당과 대통령이 추천하는 위원들의 임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방통위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었다.
여당 추천 위원들은 위원장의 부재와 맞물리며 위원장 역할을 했고, 또 유일한 위원으로 활동도 하며 방통위 소수 체제를 이끌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소수 체제에서 KBS 수신료 분리 징수와 YTN 매각 관련 결정 등 언론계에 중요한 결과를 초래하는 사안을 처리했다는 점이다.
굵직굵직한 사안을 통과시키며 혁혁한 성과를 올린 김효재 직무대행은 이제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으로 영전한 상태이다. 이후에도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새로 취임한 김홍일 위원장 체제에서도 2인 체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공영방송 YTN에 대한 유진그룹의 대주주 인정이라는 중대한 결정도 '두 분'이 협의하여 처리했다.
법원은 이미 지난해 말 "위원 구성에 정치적 다양성이 반영 안 돼 (서울고등법원, 2023년 12월 20일)"라는 지적과 함께 방통위의 파행적 운영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보수 언론 또한 언론과 미디어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기구의 편향성과 전문성 부재에 대해 우려를 보인 상황이다('방통위 2인 체제는 문제있다는 법원의 지적' <중앙일보> 2023년 12월 25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기형적 체제에는 변화가 없다.
- '여사' 호칭 붙이지 않은 언론에 행정지도(권고) 내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 SBS 편성욱의 뉴스브리핑. |
ⓒ SBS |
사실 더욱 무섭고 허탈한 풍경은 대통령 배우자 이름 앞에 '여사'를 붙이지 않아 제재가 내려진 다음 다수 언론사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에 걸리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는 (2월 26일) 패널이 여사의 호칭을 빼고 발언하자 사회자가 황급히 "김건희 여사 특검법"으로 정정하며 지침이 있음을 확인시키는 일도 있었다.
앞서 선방위는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에서 '김건희 특검법'을 언급하며 '여사'를 붙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행정지도를 결정한 바 있다. 물론 '여사'를 붙이지 않아 불편하다는 민원이 접수되었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매우 놀라운 점은, 해당 방송 중 문제가 된 대목이 특검법이라는 행정수단에 대한 객관적 호칭이었다는 것이다.
특검법안의 명칭은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지상파 방송에서 무례한 톤으로 이름을 수차례 언급했다면 한국적 정서에서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고 지적할 수도 있었겠지만, 객관적 법안을 언급하며 호칭을 붙이지 않았다고 하여 언론사에 제재를 가할 수가 있는 일인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 같은 비상식에 대해서는, 일부 보수지 또한 사설을 통해 신랄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3월 4일).
- 미세먼지 농도 1이라 표시한 방송사에 선거법 위반이라는 선방위
▲ 지난 2월 27일 방송된 MBC뉴스데스크의 날씨코너 |
ⓒ MBC뉴스데스크 갈무리 |
3이나 5, 심할 때는 9까지도 기록되던 서울 미세먼지 농도가 놀랍게도 1까지 떨어졌다. 그것도 서울의 한 지역이 아니라 여러 구에서 측정한 값들이 1로 수렴되는, 제대로 맑은 날이 찾아왔단 뜻이다.
지난 2월 27일 MBC 뉴스데스크는 날씨 코너에서 아라비아 숫자 1을 화면에 돋보이게 배치했다. 물론 그 색깔은 기상청에서도 미세먼지 수치가 낮을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파란색이었다. '하늘이 맑고 가시거리가 좋은 날씨'에 대해 '파란 하늘'이라 표현하는 상식이 반영된 것일 터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MBC가 민주당을 위한 선거운동을 했다며 곧장 방통심의위에 제소를 했다. 이어 방심위 산하 선방위는 MBC 뉴스데스크의 일기예보 방송에 대해 법정 제제를 위한 의견 진술 결정을 내렸다. 언론사의 제작진을 불러 의견을 듣는 과정은 추후 중징계가 내려지는 수순으로 이해된다.
선방위 회의에서 여당 추천 위원들은 "1이란 걸 일기예보에 썼는데, 방송사에 있으면서 일기예보 할 때 1이란 숫자를 쓰는 건 처음 본다. (중략) 뜬금없이 1을 표시하는 건 다분히 시청자들에게 특정 정당 기호를 연상하게끔 하는 걸로 보기 충분하다", "날씨까지 이용하는 MBC의 교묘한 편파에 분노한다. 방심위 민원 넣었던 민원인의 심정을 이해한다"라며 격앙된 모습이었다고 한다. (관련 기사: 선관위도 아니라는데...'미세먼지 1' MBC 법정제재 추진, https://omn.kr/27tj4)
물론 날씨에까지 정치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합리적 판단이 아니란 소수 의견도 제기되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위 사안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당 성향 위원들이 압도적인 위원회의 결정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MBC는 매우 이례적으로, 평일 2시에 방영하는 프로그램에서는 두 시를 나타내는 2라는 숫자가 화면에 상시 노출되는데, 그럼 이 숫자도 정치적 의미냐며 <뉴스데스크>를 통해 항의하기도 했다. 이런 언론사를 보는 것도 안쓰럽지만, 선거 때 상대 당이 부여받을 번호라며 같은 편 아니냐고 따지는 모습을 보는 일도 씁쓸하다. 미세먼지는 낮아졌지만, 언론자유에 대한 위협은 높아지고 있다.
- 가상이라 밝힌 풍자 영상에 심각한 조작이라며 차단으로 응수한 방심위
▲ 윤석열 대통령 가상연설 영상 |
ⓒ sns |
지난해 11월 SNS에 올라온 이 영상의 제목은 <가상으로 꾸며본 윤 대통령 양심고백 연설>이다. 풍자의 사전적 의미와 조건을 충족하고 있었지만, 방심위는 지난달 23일 위 게시물 포함 총 22건의 게시물에 대해 시정요구, 즉 접속차단을 결정했다. 경찰청이 해당 영상물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삭제 요청 공문을 보낸 후, 여당 추천 인사들 일색인 위원회가 '긴급심의'까지 열어 조치를 내린 것이다.
'긴급심의'를 개최할 정도로 서두르며 내세웠던 이유는 본 영상들이 '딥페이크이자 사회질서 혼란을 야기한다'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한 보도에 따르면 (경향신문 2024년 3월 5일) 해당 영상은 AI 등 하이테크를 이용해 진위를 숨기려 고도로 기획한 '딥페이크'가 아닌 짜깁기 수준의 콘텐츠였다.
방심위 구성원 다수가 가입된 방심위 노조는 이 사안에 대해 "류희림 위원장은 대통령의 심기 경호에 몰두해 방송통신 심의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있다""가상으로 꾸몄다고 친절히 적어둔 쇼츠 영상을 두고, 대통령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경찰청에서 방심위에 삭제요청 공문을 보낸 것도 코미디"란 말로, '무려' 2024년에 벌어지고 있는 이 지독한 비정상을 비판했다.
얼마 전 SNL 코리아는 최근 현 정부의 '입틀막' 행태를 비판하는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이를 소개하는 일부 미디어들은 과거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SNL에 출연해 "대통령이 되어도 풍자를 계속할 수 있게 해줄 것인가?"라는 물음에 "그것은 허락할 문제가 아니라 SNL의 권리"라고 말한 부분을 함께 내보냈다. 왠지 "예전에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이 정도 풍자는 제발 넘어가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풍자는 대중의 소중한 숨통이다. 방심위가 막는다고 그것이 막아질까.
- 23년 새해엔 조선일보, 24년 새해엔 KBS만 만날 수 있는 대통령
▲ 지난 2월 7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KBS를 통해 녹화 방송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 대담을 시청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새로 뽑힌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강조하던 '소통'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도어스테핑을 실시한다고 알려왔다. 매우 신선했다.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대통령의 출근 모습도 신기했고, 자연스레 언론과 마주하며 '날 것'의 질문을 받는 대통령도 많이 새로웠다.
하지만 매일은 아니어도 명맥을 이어가던 도어스테핑이 몇 번인가 삐걱대던 모습을 보이더니, '바이든-날리면' 사건과 함께 중단되어 재개되지 않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역대 대통령 모두 신년 기자회견 등으로 언론과 국민을 만나는 것은 전통이었기에 해마다 기대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벌써 두 해째 신년 기자회견 생방송으로는 만날 수가 없다.
2023년엔 조선일보가 사전에 진행된 '독점 인터뷰'를 바탕으로 새해의 지면을 채웠으며, 그외 언론들은 묻고 싶은 바를 직접 물을 수 있는 자유를 빼앗겼다. 올해 벽두에는 더욱 배타적이며 짜여진 모습의 녹화본이 방송되는 초유의 상황도 연출되었다.
새롭게 단장된 공영방송 KBS는 9시 뉴스 앵커가 대통령실을 방문하는 극적인 설정으로 신년 대담을 제작해 방영했다. 사전 각본 없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그 영상은 웰메이드로 편집되어 국민들에게 전달되었다. 일부 보수 언론을 포함한 많은 언론사들은 전체 언론에게서 '질문하고 답을 들을 자유'를 앗아간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비판했다. 물론, 비판은 닿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가족과 지인 동원한 셀프 민원 및 심의 의혹받는 방통위
▲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지난 1월 8일 오후 서울시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2024년 제1차 전체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현재 경찰의 조사가 진행 중이라 결론을 단언할 수야 없지만, 특정 언론보도와 콘텐츠가 부적절하여 심의가 필요하다고 민원을 제기한 주체가 위원장의 가족과 지인이라는 '민원 사주' 의혹의 파장은 컸다. 방심위 내부 회의에서도 이 사안에 대해 위원장이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위원장은 현재 조사 중인 사안이란 이유로 회의 중 언급 자체를 하지 말라는 요구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현재 제기된 의혹 가운데 일부라도 사실일 경우, 즉 민원의 주체가 위원장 혹은 위원의 가족 구성원이었으며, 해당 민원에 의거해 공적 기구인 방심위가 작동되었다면, 이는 단순히 도덕성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물론 의혹에 대한 정확한 확인이 우선임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또한 심의 과정에 있어 '당사자 혹은 이해 관계자의 회피' 등 민주주의 시스템의 근간이 무시되거나 악용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경우도 있다. 방심위 산하 선방위에서 심의하고 의결한 사항들이 일부 현직 위원들이 몸담았던 단체에서 제기한 민원의 내용과 일치한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연합뉴스, 2월 20일). 물론 이들은 해당 안건들에 대한 심의와 의결 과정에서 회피하지 않았다.
셀프 민원과 심의, 그리고 일사천리 의결로 이어지는 양상은 용어가 전하는 그 이상의 심각함을 내포한다. 언론의 자유를 교묘하게 침해하는 악행이 '시스템'으로 작동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바이든-날리면'을 법원으로 가져간 정부... 판독은 불가지만 정정보도 명령
▲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2년 9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윤석열 대통령 '욕설 논란' 관련 화면을 전광판에 띄우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언론사가 취재 중 대통령의 발언에 비속어가 사용되었음을 인지하여 보도했고, 해당 보도에 담긴 정보는 여타 언론사들에 의해 유사한 방식으로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MBC 라는 단일 언론사를 콕 집어 소송을 진행했고, 원하는 결과를 받아들었다. (관련 기사: '바이든-날리면' 소송 MBC 패소... 법원 "정정보도하라", https://omn.kr/271z1)
법원의 이번 결정은 향후 언론사가 스스로 판단해 뉴스 콘텐츠를 만드는 그 당연한 자유에 대해 위축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지 않았을까 우려된다. 법원은 국민의 과반 이상이 MBC가 보도한 대로 들린다고 대답한 '바이든-날리면'에 대해선 '판독불가'라고 판정했지만, 정작 정정보도는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 같은 결과를 근거로 방심위는 지난 11일 MBC에 대해 최고 수위 징계인 과징금 부여를 결정하기도 했다. 상당수의 국민이 '그렇게 들린다'고 대답한 사안에 대해서도, 결론은 결국 정부의 주장과 바람대로 흘러갔다는 뜻이다. 언론사들은 마침내 '들리는 대로 들으면 안되고, 들으라는 대로 들어야 하는' 현실을 똑똑히 경험했다.
- 시사 프로 출연자의 성향을 문제 삼아 경고 날린 선방위
▲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류희림)는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 위촉식을 진행했다. |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
지난해 12월 출범한 이래, 연이은 법정제재 (관계자 징계)를 MBC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 내려 '진행자 하차'라는 결과를 만들어낸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최근에는 CBS의 시사프로그램에도 연달아 제재를 의결했다. 지난 2월 29일 선방위는 CBS <박재홍의 한판승부>와 <김현정의 뉴스쇼 >에 각각 '관계자 징계'와 행정지도인 '권고'를 결정한 것이다. 보도를 통해 밝혀진 선방위 회의 내용을 보면,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하는 보수패널 장성철씨는 "정부여당의 입장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무늬만 보수"라서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위원들은 지적했다.
선방위 최철호 위원은 "장성철씨는 보수라지만 방송에 나와선 민주당을 대변하는데, 왜 그런 사람을 부르냐?"라며 제재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PD 저널, 2월 29일). 또한 선방위는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대해서도 진중권 평론가와 장윤미 변호사의 고정 출연이 정치적으로 편향되었음을 제재의 이유로 들었다고 한다. 의견 진술에 출석한 제작진은 "방송 전체를 통해 균형성을 판단해야 한다"라며 (패널의 발언 등) 일부만 보고 판단해선 안된다며 반박했다고 한다.
일단, 편성과 제작의 독립성과 자율성에 대해 출연자의 개인적 성향과 숫자를 문제 삼아 이렇게 '자유롭게' 침해를 해도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불어 보도를 통해 드러난 위원들의 발언들이 참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특정 패널을 놓고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정부 여당 입장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무늬만 보수" 운운하는 발언이야말로 심의의 대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제재 결정을 받아 든 CBS 언론노조 지부는 "방송패널이 특정 진영을 대변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가히 충격적" "어떤 패널이 여당을 대변하는지 명단이라도 내려주거나, 그것도 부족하다면 차라리 보수패널 자격시험이라도 만들면 어떤가?"라는 말로 현재 우리의 언론이 처한 상황을 전했다.
- 30년 만에 사기업으로 변하는 YTN
▲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본사 앞 모습. |
ⓒ 유성호 |
지난 2월 7일, 방송통신위원회는 독립적 사외이사와 감사의 선임을 포함한 10가지 조건을 달아 유진그룹의 특수목적법인 유진이엔티를 YTN의 최대 주주로 최종 승인하였다. YTN의 지분 30.95%를 인수하는 '최다액 출자자 변경신청안'을 결정한 것이다. 이로써 지난 30년 24시간 뉴스 채널로서 우리나라 공영방송의 주요한 축을 담당했던 YTN은 이제 민영 혹은 사영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위 결정에 대해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와 YTN 우리 사주조합은 취소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저항에 돌입하기도 했다. 결정이 정당하지 않다는 주장의 이유는, 이렇게 중대한 결정을 내린 주체가 단 2인으로 구성된 현 방통위의 비정상적 체제이며, 최대 주주의 변경승인이 방송법에서 규정하는 심사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로 진행되어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본 결정이 공익성 실현이라는 대전제가 불가능한 결정이란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결국 YTN 노조 등이 제기한 집행정지 소송은 법원에 의해 각하되었으며, 유진그룹은 YTN의 새로운 주인이 되고 있다. 공적 지배구조 대신 사적 주체에 의한 지배구조가 시작된다고 해서 해당 언론사가 공적 관심사에 소홀해질 것이라는 예측은 억측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가치가 제1의 원칙으로 준수되며 운영되어 오던 우량 공영방송의 변화가 많은 우려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총선 앞 전국 누비는 민생토론회, 사업을 위한 비용 검증 안하는 언론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강원특별자치도 춘천 강원도청 별관에서 '민생을 행복하게, 강원의 힘!'을 주제로 열린 열아홉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어쩌면 많은 노력이 들거나 다수의 취재원이 필요한 사안이 아닐 수도 있다. 대통령이 전국을 순회하며 진행 중인 민생토론회에서 약속하고 있는 계획의 실행 가능성과 비용을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작업 말이다.
각 지역 현안에 대한 계획을 흡사 공약처럼 발표한 사항들이니, 실행 계획 수준으로 비용을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약속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추가적인 계획 등을 대통령실과 각료에게 질의하고 보도하는 작업은 '할 수도 있고', 어쩌면 다수의 언론이 '반드시 해야 하는' 과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통령이 던지는 모든 약속의 실현은 국민의 세금이 필요하며, 안 그래도 다수 후보들에 의해 온갖 계획들이 남발되는 총선 정국인 만큼 검증 기사는 충분히 가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대통령이 약속하는 계획의 현실성과 구체성에 대해 의심하거나 따져보는 기사를 찾기란 쉽지가 않다. 물론 일부 언론의 지적과 우려는 있다. <민생토론회 남발 주의보>, <안보실장까지 동원한 MZ구애 민생토론회>, <정부와 정치권, 철도 지하화 외치는데 실현 가능성은 물음표>등의 제목을 단 기사들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굳이 관련 키워드를 넣지 않아도 보일 만큼 다양한 언론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 지금까지 대통령이 약속한 계획에 필요한 비용을 종합해 구체적 액수를 전한 보도는 일부러 검색해야 접할 수 있는 언론사의 기사가 유일하다. <시민언론 민들레>의 <관권선거 논란 윤석열, 두 달 새 831조 퍼주기 약속>이라는 기사다. 부산과 창원에선 50조 원 규모를 약속하였으며, R&D 삭감으로 상처받은 이공계 학생들에게 1년 2500만 원의 장학금을 남발했다는 주장도 함께 실었다.
▲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제안 정책화 과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위 장면 모두를 능가할 만큼 언론의 자유를 비웃는 장면이 최근 등장했다. 대통령실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이 했다는"MBC 잘들어"로 시작하는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이다. 황 수석은 지난 14일 출입기자 오찬 자리에서 1988년 노태우 정권 초기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란 제목의 기사를 쓴 중앙경제 오홍근 기자에게 군인 4명이 회칼을 휘두른 사건을 일화로 들며 언론의 자유를 조롱했다고 한다. 해명을 요구하는 기자들에게는 황씨는 "농담이었다"라며 퉁치려 했다고 전해졌다. 그의 발언에서 두 가지 속내를 감히 짚어본다.
하나, 그는 MBC를 포함해서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는 유별난 언론사들은 언제든 회칼 테러에 준하는 비극을 예상해야 할 것이란 경고를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그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가치 판단을 언론이 아닌 자신을 비롯한 권력의 주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시각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의 수십 년 언론인 경력을 생각해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충격적이다. 결국 여당 내에서도 황 수석에 대한 사퇴 압박이 커졌고, 20일 황 수석은 자진 사퇴했다.
다시, 프레스센터 앞 그 조형물로 돌아와 본다. 많은 언론인들이 언론의 자유를 되새기며 십시일반으로 마련했다는 그 소중한 조형물이다. 언론의 자유는 꿈꾸는 데 수십 년, 이만큼 얻는 데 또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는 소중한 가치다. 하지만, 박살나고 사라지는 건 한 순간이다. 입틀막은 카이스트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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