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린 부모 집 정리하는 데 5년이 걸렸다
강지원 입력 2021. 04. 25. 18:00 댓글 117개news.v.daum.net/v/20210425180002886
부모의 집을 정리한 15인의 인터뷰 모은 '부모님의 집 정리'
부모의 집을 정리하는 것은 부모가 살아온 날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일이다. 즐거운상상 제공
일본 도쿄에 사는 히라쓰카 요우코(59)씨는 2년 전 나고야의 친정집을 정리했다. 14년 전 어머니가 떠나고 혼자가 된 아버지마저 4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친정집 정리는 그의 몫으로 남았다. “가장 힘들었던 건 옷이었어요. 빈 집 거실에 덩그러니 혼자 부모님 옷을 손에 쥐고 있자니 하염없이 눈물이 북받쳐 올랐어요. 여러 가지 추억도 떠오르고요. 결국 조금만 남기고 과감히 처분했어요.”
식기와 주방용품, 옷은 수거일에 내놓았다. 가구류는 유품 정리업체에 의뢰해 처분했다. “짐을 완전히 정리하고 집을 비우기까지 1년쯤 걸렸어요. 저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자식들에게는 시키고 싶지 않아요. 전에는 불필요한 물건을 처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잘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부모님 집을 정리하고 나서는 제가 건강할 때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했죠.”
히라쓰카씨의 ‘친정집 정리’는 특별하지 않다. 연로한 부모의 집 정리는 시대와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맞닥뜨리는 일이다. 최근 국내 출간된 ‘부모님의 집 정리’(즐거운상상 발행)는 부모의 집을 정리한 일본인 15명을 인터뷰한 것으로,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사회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2013년 일본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15만 부 이상 판매됐다. 김자영 즐거운상상 편집자는 “고령화가 진행되고 독거 노인이 급증하면서 일본에서는 떨어져 사는 부모의 집 정리가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라며 “우리나라에선 공론화할 기회가 적었지만 고령의 부모와 떨어져 사는 장년 세대 대부분이 안고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연로해진 부모들은 집안 정리까지는 할 여력이 없어 바닥에 물건을 널어놓게 된다. 즐거운상상 제공
부모가 살던 집을 정리하는 것은 단순히 청소하는 것과는 별개다. 나이든 부모의 민낯을 목도하는 일이다. 82세 어머니와 합가하면서 어머니의 집을 정리한 사쿠라이 세이코(70)씨는 4톤 트럭 3대 분량의 짐을 버렸다. 그는 “젊은 시절 부지런하고 손재주가 좋아 자랑스러웠던 어머니였는데, 집을 정리하면서 원망하게 됐다”고 했다. 집 정리는 부모가 살아 온 흔적을 곱씹는 일이기도 하다. 치매에 걸린 부모 대신 집을 정리한 고사카 이쿠코(56)씨는 집 정리에만 5년이 걸렸다. “빼곡하게 메모가 적힌 아버지의 수첩과 일기를 발견했을 때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떠올라서 울컥했어요. 부모님은 제가 아끼던 잡지도 전부 그대로 남겨 뒀어요. 정리를 하다가 멈췄어요. 부모님의 추억이 담긴 물건과 결별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김석중 유품정리서비스 ‘키퍼스코리아’ 대표는 "집을 정리하는 것은 그 개인의 삶을 천천히 정리하는 것과 같은데 막상 그 주체가 돼야 할 부모가 없거나, 정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자녀들이 급하게 처리해버림으로써 다양한 갈등이 생겨난다"라며 "생전에 가족구성원이 서로 의논하고 계획해서 천천히 정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멋쟁이였던 부모의 옷장에는 정장 세트와 재킷 등이 가득했다. 즐거운상상 제공
30일 국내 번역, 출간되는 '부모님의 집 정리'.
부모의 집 정리를 마친 이들은 힘들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5년간 부모가 살던 집을 정리한 가와무라 노조미(67)씨는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어머니와의 날들을 떠올리고 어머니가 살아온 날들을 들여다보며 어머니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라고 회고했다. 건강이 악화한 어머니의 집을 정리하고 합가한 미카지리 아키코(56)씨는 “부모의 집 정리를 통해 생활에 필요한 물건과 마음에 여유를 주는 물건은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는 걸 배웠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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