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공포" 은퇴하는 순간 소득 60% '뚝' 생계절벽
이승훈,한상헌 입력 2021. 06. 08. 17:27 수정 2021. 06. 08. 21:54 댓글 1756개https://news.v.daum.net/v/20210608172707300
짙어지는 초고령사회 그늘
소득 60% 줄어 생계 막막
자녀 뒷바라지에 병수발 탕진
노인 절반이 잠재적 빈곤층
44%는 月 90만원으로 살아가
◆ 노후빈곤 시대 ① ◆
1955년생 베이비붐 세대인 정현식 씨(가명·68)는 10년 전 직장을 떠난 후 지금은 서울 쪽방촌에서 혼자 살고 있다. 정씨가 노후 준비로 생각했던 작은 아파트와 퇴직금은 불행히도 아들의 사업 실패로 인한 빚 때문에 전부 사라졌다. 아내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나 홀로 된 정씨는 69만원의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20만원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작은 일자리나마 구하기 위해 매일같이 주민센터를 찾는 그는 빈곤한 노후생활로 인한 스트레스와 고독감, 상실감 때문에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진 상황이다.
고령화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노인 인구는 늘어나고 있지만 '행복한 노인'은 갈수록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020년 말 812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15.7%를 차지한다. 고령자가 한 명 이상 있는 가구 비중도 전체(2035만가구)의 22.8%까지 늘었다. 하지만 고령층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국민은 은퇴 후 적정 생활비로 가구당 월 294만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54.8%가 '준비 부족'을 호소했다. 고령층 10명 가운데 5명 이상이 잠재적 빈곤층으로 향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노인 빈곤 문제는 주요국 중에서 한국이 가장 심각하다. 한국 고령층(66세 이상)의 상대적 빈곤율은 4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복지제도가 발달한 프랑스나 노르웨이는 한 자릿수이고 미국 또한 23.1%로 한국의 절반에 불과하다. 상대적 빈곤율은 중위소득 50% 미만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올해 1인 가구 중위소득이 182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고령층 10명 가운데 4명 이상이 월 90만원가량의 돈으로 어렵게 생활한다는 얘기다.
정부가 도움을 주기에도 힘에 부친다. 통계청과 삼성생명 인생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는 2025년이 되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사회(고령 인구 7% 이상)에서 초고령사회 진입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5년이다.
[이승훈 기자 / 한상헌 기자]
그나마 있는 집 한채에 세금폭탄…노인들 "당장 쓸 현금 없어"
빈곤 내몰리는 은퇴자들
노인 자산 77%가 부동산인데
집값 올라 기초연금 못받고
수백만원 건보료까지 '한숨'
생계 위해 일하는 노인 늘어
"일을 하고 싶다"는 응답자
2년 새 9%서 68%로 폭증
8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길게 서 있다. [이충우 기자]
고령화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는 사회가 오고 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삶의 시간은 늘어나고 있지만 삶의 질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수명은 늘고 수입은 충분치 않게 되자 은퇴를 하고도 일하는 고령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69세 노인의 경제활동참여율이 2017년 42.2%에서 지난해 55.1%로 불과 3년 만에 12.9%포인트나 올랐다. 또 같은 기간 일을 하고 싶다는 65세 이상 노인은 9.4%에서 68.4%로 폭증했다. 일을 하고 싶은 이유로는 73.9%가 생계비 마련을 꼽았다. 은퇴 후에도 편안한 노후 생활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힘든 몸을 이끌고 끝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보험개발원이 만든 '2020 은퇴시장 리포트'에서도 은퇴 가구의 평균 자산은 3억6316만원으로, 은퇴 전(4억8185만원)의 75.3%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평균소득도 은퇴 전에는 6255만원에 달했지만 은퇴 후에는 2708만원으로 58%나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KB경영연구소 골든라이프연구센터가 은퇴자·은퇴예정자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설문조사에서는 여유로운 생활을 위해 필요한 월평균 생활비는 289만원인데, 이에 대한 준비는 64%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은퇴 후 예상 현금 수입이 월 185만원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은퇴 상담을 위해 KB골든라이프연구센터를 찾은 이중환 씨(59)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지난해 임대 수입이 크게 줄어 대출 이자를 갚는 데 허리가 휘고 있다"며 "올해 하반기에는 금리가 오른다는 얘기도 있어 재산이 계속 줄어들 것 같은 불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고령층의 전체 자산에서 금융 자산보다 부동산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것도 문제다. KB골든라이프연구센터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전체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6.4%에 달한다고 답했다. 금융 자산 비중은 19.6%에 불과했다. 자산은 있어도 당장 쓸 돈이 없다는 얘기다. 통계청의 '2020 고령자 통계'에서도 60세 이상 고령자 가구의 순자산액은 3억6804만원인데, 여기서 부동산 비중이 77.2%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은퇴 자산의 50% 이상이 금융 자산으로 구성된 것과 상반된 결과다. 황원경 KB골든라이프연구센터 부장은 "우리나라 은퇴자들은 집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노후 준비도 늦어 당장 쓸 수 있는 현금 자산이 크게 부족하다"며 "그나마 쓸 만한 자산은 본인이 살고 있는 집밖에 없어 이를 주택연금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령층 자산의 상당수가 부동산에 몰려 있는데 최근 급격히 오른 공시가격은 이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은 물론 건강보험료 등 각종 준조세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전국적인 집값 상승에다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방침이 겹치면서 올해도 전국 아파트 공시가격이 평균 19.1% 인상됐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이석현 씨(가명·75)는 "30년 전에 입주해 평생 살고 있는 아파트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데 올해 세금만 500만원 정도 된다고 들었다"며 "이번에는 자식에게 부탁해 볼 생각이지만 내년 세금은 더 오른다고 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시가격이 오르면서 공적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마련된 기초연금을 못 받는 사람도 늘게 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공시가격 6억4200만원이 넘는 주택을 소유한 사람은 기초연금을 받을 수 없다. 최근 공시가격 상승으로 6억원이 넘는 공동주택은 서울에만 30%에 육박한다. 서울 주요 지역에서 주택 한 채만 갖고 있다면 기초연금 수급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얘기다.
여기에 건강보험도 문제다. 공시가격 급등으로 서울 시내에 웬만한 아파트 한 채만 보유해도 수백만 원의 건보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자녀에게 의지해 온 고령층의 건강보험료 피부양자 자격이 박탈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재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올해 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하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5만1268명으로 추정됐다. 이들 상당수는 고령층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퇴 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도 컸다. KB골든라이프연구센터 설문조사에서 노후 생활이 현재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33.1%에 불과했고 현재와 비슷하거나 나빠질 수 있다는 응답이 66.9%로 더 많았다. 보험개발원 조사에서도 노후 생활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서 5점 만점에 3.3점 응답에 그쳐 보통 정도의 만족도를 보였다. 황 부장은 "자녀 교육과 결혼 등에 그나마 모아둔 금융 자산을 사용하기 때문에 은퇴자들의 어려움은 더욱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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