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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영화를 통해 일반인들에게까지 절의의 상징으로 널리 각인된 선현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시이다. 1644년 두 번째로 청(淸)나라 심양(瀋陽)으로 끌려가 질관(質館)에 머물 때 지었다. 봉암(鳳巖)은 함께 끌려가 있던 이경여(李敬輿)의 호이다.
옛날에는 단오절, 중양절 같은 절일에는 가족들이 모여 단란하게 보내던 풍속이 있었다. 그런 절일을 타향에서, 더구나 언제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험악한 곳에서 맞는 심정을 과장되지 않게 그리고 있다.
앵무새가 울지 않는다는 것은 백거이(白居易)의 비파행(琵琶行)에서
송백당은 고향 마을 석실(石室)에 있던 건물로, 시인이 평소에 휴식하던 곳이다.
마지막 두 구절은 당(唐)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구월구일에 산동의 형제들을 생각하며[九月九日憶山東兄弟]>라는 시의 의사를 차용한 것이다.
요상(遙想)은 ‘멀리 떨어진 곳의 상황을 상상한다.’는 뜻이다. 요억(遙憶), 면상(緬想), 면억(緬憶)이 같은 의미로 쓰인다. 원상(遠想)도 같은 의미인데, 시에서는 아주 드물게 쓰고, 편지 같은 산문에서 주로 사용한다. 요지(遙知), 요련(遙憐)도 같은 용법이다.
다른 형식에서도 사용할 수 있지만, 특히 7언 절구에서 가장 빈번하게 볼 수 있다. 이때는 제3구 첫머리에 놓는 것을 정격(正格)으로 친다. 아울러 그 상상의 범위가 제4구 마지막 글자까지 이어지므로,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율시 등에서 쓸 때는 짝이 되는 구의 앞쪽 구에 주로 쓴다. 운문에서는 홀수와 짝수가 한 짝이 되는데, 이럴 경우 거의 홀수 구의 앞에 위치하는 것이다.
이 시어가 포함된 구절은 늘 번역자들을 곤란하게 한다. 이 시어를 번역하려면 적어도 “멀리서 생각건대”라는 글자 수를 고정적으로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아무리 3·4조 시조 리듬을 살려 매끈하게 번역했더라도, 이 시어를 만나면 한 없이 길어지는 번역문 앞에 좌절하기 일쑤다.
그 경우에는 그냥 ‘멀리 ~ 하리라’ 정도로만 처리해도 뜻은 모두 담았다고 할 수 있다. 독자들도 이 시어를 처리하지 않았다고 해서 오역이라고 소리 높여 지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청음은 이 ‘요상(遙想)’ 용법을 즐겨 사용하였다. 아무래도 멀리 타국에 떨어져 있다 보니 상상을 하는 시를 많이 짓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은 청음의 아들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의 경우에도 자주 보인다. <삼가 심양으로 가시는 아버지를 전송하며[奉送家親入瀋之行]>라는 시가 한 예다.
어쩌면 마지막 이별이 될 수도 있다는 슬픔과 가족애가 시어(詩語) 이면에 절절하게 배어 있어 울림을 더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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