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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왕실이 꼭꼭 숨긴 '쇼소인' 백제·신라 보물을 엿본다

천하한량 2018. 2. 28. 23:24

[경향신문] ㆍ나라 ‘쇼소인’ 소장 유물 관련 심포지엄 7일 열려
ㆍ1년에 단 한 차례 60여점만 공개…전체 소장품은 아직 베일
ㆍ당나라·인도·페르시아 유물도 있는 ‘동아시아의 타임캡슐’

1300여년 전 삼국시대 바둑판과 바둑알, 식기와 수저, 악기, 백제 의자왕과 관련된 가구, 호구조사 문서와 사경, 각종 옻칠공예품….

‘국보’가 되고도 남을 희귀한 문화재들이다. 모두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인 나라(奈良)의 ‘쇼소인’(正倉院·정창원·맨 위 사진)에 소장돼 있다. 백제·신라와 일본 간 무역, 선물로 전해진 것들이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유물들이다. 쇼소인에 소장된 백제, 통일신라 유물을 국내외 전문가들이 종합적으로 조명하는 자리가 마침내 마련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오는 7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여는 ‘정창원 소장 한반도 유물-정창원을 통해 밝혀지는 백제·통일신라의 비밀’이란 주제의 국제학술심포지엄이다.

쇼소인에 소장된 ‘백동 가위’.

쇼소인은 일본 천년고찰 도다이지(東大寺)의 목조 창고다. 쇼무천황의 명복을 빌기 위해 고묘황후가 왕과 자신의 애장품을 도다이지에 756년 헌납하면서 왕실 보물창고가 됐다. 이후 왕실·귀족들이 바친 다양한 종류의 보물과 문서 등 고대 유물 9000여점이 탁월한 보존·관리로 지금까지 전해진다. 쇼소인 보물이 주목받는 것은 고대 동아시아 문화교류와 생활문화상 연구·복원에 획기적인 자료들이어서다. 8세기를 중심으로 7~9세기 일본은 물론 백제·통일신라·당나라·인도·사산조 페르시아의 귀한 유물들이 온전한 상태로 있다.

■ 비밀공간 쇼소인과 국제학술심포지엄

국제적으로 주목받지만 쇼소인 소장품은 아직까지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다. 일본 왕실 재산으로 궁내청에서 엄격하게 폐쇄적으로 관리하면서다. 1년에 단 한 차례 60여점만 골라 인근 나라국립박물관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공개한다. 따라서 소장품들은 특별전과 전시도록, 학술지, 논문 등으로 극히 일부만 제한적으로 알려져 있다. 최응천 동국대 교수는 “일본 연구자들의 종합적인 조사도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폐쇄적 공간인 정창원 유물은 일본을 벗어난 적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신라 먹’. 신라 이두 등이 새겨진 명문도 있다.

소장품에는 한국엔 없는 백제, 통일신라 유물도 있다. 한국 고대사의 비밀을 풀어줄 유물이지만 어떤 유물이 얼마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열리는 학술심포지엄은 학계의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박대남 미술문화재연구실장은 28일 “한국, 일본 전문가들이 6개의 주제 발표와 종합토론을 통해 쇼소인의 한반도 유래 유물을 새롭게 조명한다”며 “백제와 통일신라, 나아가 동아시아 교역과 문화상을 이해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심포지엄에선 최응천 동국대 교수, 박남수 신라사학회장, 이난희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사, 신숙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 나라국립박물관 나이토 사카에 학예부장과 히가사 이쓰토 연구원이 주제발표를 한다.

■ 쇼소인의 한반도 유물들

나이토 학예부장은 ‘정창원 소장 한반도 유물’이란 주제발표문을 통해 한반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 쇼소인 보물들을 개괄한다. 백제 유물로는 의자왕과의 관련 여부가 주목되는 ‘적칠문관목주자’(아름다운 나뭇결의 느티나무로 만든 붉은 옻칠 가구)가 있다. 국내에는 이 같은 7세기대 백제 목칠공예품이 없다.

정교한 무늬가 새겨진 은제 다리가 있는 코발트블루의 유리잔.

은제 다리가 있는 코발트블루의 ‘유리잔’도 있다. 그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유리잔이 백제로 와 은제 다리가 접합된 뒤 백제 멸망 이전 일본으로 온 것으로 본다”며 “당시 동아시아 격동의 시대를 빠져 나와 전해진 기적의 유리그릇”이라고 말했다.

신라시대의 포장상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놋쇠 수저(사하리 수저) 묶음. 경향신문 자료사진

소나무 본체에 상아로 선을 긋고 17곳의 화점을 표시한 바둑판(목화자단기국)과 바둑판을 담기 위해 금박·은박·상아 등으로 장식한 함(금은귀갑기국감)도 있다. 바둑알을 넣는 서랍까지 있는 이 바둑판은 일찍부터 국내 학자들에게 알려진 한반도 유물이다. 나이토 부장은 신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신라의 주요 수출품이던 놋쇠 그릇(사하리 가반)과 수저(사하리 수저)는 당시의 포장상태 그대로다. 그릇과 수저 사이에는 신라 문서들이 끼여 있다.

박남수 신라사학회장은 ‘정창원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를 통해본 신라 물품 교역’이란 주제를 발표한다. ‘매신라물해’는 752년 일본에 파견된 신라 왕자 김태렴 일행에게 일본 관료들이 매입을 원하는 물건과 가격을 기록한 문서다.

각종 보석류와 나전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나전동경’.

이난희 학예사는 ‘정창원의 칠공(漆工)기법-한국 관련 유물을 중심으로’를 통해 옻칠공예품과 기법 등을 고찰하며 한반도 칠공예품과의 관련성을 조명한다. 이 학예사는 “쇼소인의 칠공예품은 종류의 다양성은 물론 최고급 재질, 갖가지 기법이 사용돼 격조 높은 칠공예의 미를 보여주고 있다”며 “일부 유물은 경주 월지에서 출토된 유물이나 백제의 유물 문양과의 관계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쇼소인에 소장된 유물인 1300여년 전 바둑돌.

‘백제와 일본 정창원 소장품’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쇼소인 소장품과 백제의 관계를 집중 조명한 신 교수는 “국내에 비교할 만한 백제 미술품이 적다는 이유로 그동안 백제와의 관계가 부정되거나 판단이 유보된 쇼소인 소장품들이 있다”며 백제 유물들과의 비교연구를 강조했다. 신 교수는 화려하게 장식된 바둑돌의 경우 그 장식기법이 삼국시대 ‘상아제 사리호’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정창원 금속공예의 연구 현황과 과제’를 통해 쇼소인 소장 각종 금속공예품의 연구 상황을 분석한 최응천 교수는 특히 “쇼소인 유물은 동아시아의 타임캡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국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최 교수는 문화재청의 일본 궁내청과의 교류 확대와 창구 일원화, 한반도 관련 유물의 체계적인 목록화 작업과 데이터베이스화, 양국 공동연구의 적극적인 시도와 교류 전시 등을 향후 과제로 꼽았다.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이번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정창원 소장품의 한반도 유물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