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다르다" 카탈루냐 독립투표 열흘 앞으로…긴장 최고조 |
스페인의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공언한 분리독립 주민투표(10월 1일)가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카탈루냐와 스페인 간 갈등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6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해묵은 갈등에는 카탈루냐만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라는 지역색 외에 군부독재 시기의 극심한 탄압의 역사, 스페인이 금융위기로 휘청거리는 와중에 더 벌어진 카탈루냐와 나머지 지방의 빈부 격차 등 경제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혀 해법 마련을 어렵게 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의 분리독립 찬반 주민투표가 실제 효력이 없는 비공식 투표에 그쳤던 것과 반대로, 카탈루냐자치정부가 이번에는 찬성이 과반이면 독립을 선포하고 국경통제를 단행할 계획이라는 것이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이 때문에 스페인 정부는 투표 자체를 저지하는 데 막대한 경찰력을 투입하는 등 총력전에 나서고 있고, 독립주의자들은 정치적 명운을 걸고 정부에 맞서면서 갈등은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군부독재 때 자치권 몰수하고 언어·문화 탄압…'역사적 상처' 지금까지 영향 스페인과 카탈루냐 지방 간 분리독립을 둘러싼 갈등을 들여다보려면 600여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5세기까지 이베리아 반도에는 포르투갈, 카스티야, 아라곤 세 나라와 그라나다라는 작은 이슬람국가가 있었다. 당시 카탈루냐는 아라곤 왕국의 일부였지만, 아라곤의 왕자와 카스티야의 공주가 결혼하면서 두 나라가 합병돼 아라곤·카스티야 왕국이 탄생한 이후 지위가 급격히 추락했다. 에스파냐어가 통일왕국의 언어가 되면서 이 지방만의 언어인 카탈루냐어도 곧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카탈루냐는 수차례 반란을 도모했다. 1640∼1659년 대규모 반란에 나섰지만 진압됐고, 1705∼1714년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에 편승해 또다시 반란에 나섰다 실패한 뒤 1714년 국왕 펠리페 5세의 점령으로 스페인에 완전히 병합됐다. 그 전까지 자체적으로 갖고 있던 의회와 정치적 자유까지 이때 모두 상실했다. 스페인은 카탈루냐에 스페인어를 쓰게 하면서 동화 작업에 들어갔고 이후에 이렇다 할만한 큰 갈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겉으로 문제가 없었던 스페인과 카탈루냐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한 것은 20세기 초 스페인에 공화정이 들어선 뒤부터다. 카탈루냐는 공화정에서 자치권을 얻어냈지만 이내 쿠데타를 일으킨 파시즘 세력의 프란시스 프랑코 장군이 바르셀로나를 점령하고 자치권을 몰수해버렸다. 내전과 프랑코의 집권 기간 카탈루냐는 계속 탄압을 받았다. 19세기에 최초로 카탈루냐어 문법서와 사전이 편찬되면서 고유의 언어를 되찾는가 했더니 프랑코는 카탈루냐어를 사용한 모든 문화활동을 금지해버렸다. 카탈루냐 분리독립 운동은 당시 독재에 대한 항거와 결합하면서 폭발적인 힘을 갖게 됐고, 이 시기 탄압을 받은 기억은 역사적 기억은 민주화 이후에도 카탈루냐 독립주의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왜 가난한 다른 지역까지 먹여 살려야 하나"…부유한 카탈루냐 '피해의식' 인구 750만의 카탈루냐는 독자적인 언어·문화·역사 외에도 스페인 경제를 자신들이 견인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와 인구가 엇비슷한 데다 면적과 국내총생산(GDP) 규모로는 벨기에와 맞먹을 정도다. 스페인 전체 면적의 10%도 안 되는 카탈루냐는 이미 스페인 전체 GDP의 20%가량을 차지한다. 스페인 경제의 오랜 침체 속에서도 지중해와 피레네산맥을 거느린 지리적 이점과 바르셀로나라는 세계적 관광지를 바탕으로 관광산업이 번창했고, 생명공학·건설·제약 등 다른 산업의 발전 역시 다른 지역을 크게 넘어선 지 오래다. 이 지역 실업률은 13.2%로, 스페인 전체 평균 17.2%보다 낮아 스페인 경제의 고질인 실업 문제에서도 어느 정도 비켜나 있다. 카탈루냐의 이런 '경제적 자신감'은 분리독립 세력의 가장 큰 기반이다. 독립 열망이 분출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다. 스페인이 실업과 불황에 신음하면서 부유한 카탈루냐 지역에서 세금을 걷어 다른 지역에 투입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자치정부 자료에 따르면, 카탈루냐가 스페인 중앙정부에 납부하는 세금 중 투자와 공공서비스로 돌려받는 것을 제외한 금액만 매년 160억 유로(21조7천억원 상당)에 이른다. 이 때문에 지역 전체 GDP의 8%에 이르는 돈을 고스란히 중앙정부에 '갖다 바친다'는 피해의식이 팽배하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국민당 정부의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카탈루냐에서 중앙정부가 가져가는 돈을 줄여달라는 요구를 경제위기를 이유로 전격 거부하면서 갈등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카탈루냐를 달래기 위해 스페인 의회가 나서 자치권을 확대하는 정치적 타협안을 만들어 봉합되는가 했더니 스페인 헌법재판소가 2010년 확대된 자치권에 무효 판결을 내리면서 타협안은 물거품이 됐다. 자치권 확대방안은 카탈루냐 의회는 물론 스페인 의회에서도 통과된 것이었다. 여기에다 헌재 결정의 배후에 집권당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카탈루냐의 민심은 급속도로 악화했다. 언어와 문화적 차이라는 역사적 배경에 더해 이런 돈 문제라는 현실이 겹쳐지면서 분리독립 운동은 본격화한다. ◇양측, 각자 '정치적 명운' 걸고 전면전…극적인 타협 가능성 매우 낮아 양측의 갈등은 10월 1일로 예정된 주민투표가 다가오면서 갈수록 정면충돌 양상을 띠고 있어 투표 전 극적인 정치적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은 갈수록 줄고 있다.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자치정부 수반 등 분리독립주의자들은 찬반이 어떻게 나오든 반드시 투표는 진행한다는 입장이고, 스페인 정부는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기필코 저지한다는 계획이다. 스페인은 주민투표 주도세력에 대한 기소는 물론, 푸지데몬 수반에 대해 부패수사에 들어가는 등 독립파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반대로, 독립파는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수십만 명이 매일 같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로 맞서고 있다. 바르셀로나가 스페인에 함락된 1714년 9월 11일을 잊지말자는 의미에서 기념일로 제정된 지난 11일에는 바르셀로나에 100만명의 시민이 운집하기도 했다. 아직은 분리독립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스페인 정부가 경찰력을 동원해 압박하면서 갈수록 물리적 폭력사태로 비화할 가능성아 커지고 있다. 이처럼 양측의 갈등이 두 열차가 시시각각 마주 보며 달려오는 '치킨게임' 양상을 띠는 것은 독립파가 주민투표 결과를 실제로 적용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정부와 헌재는 주민투표 자체를 위헌이자 불복종으로 규정해 무산시킨다는 계획이지만, 독립파는 투표에서 찬성이 과반이면 48시간 내로 독립을 선포하고 즉각 국경통제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가장 최근인 2014년 주민투표는 법적 효력이 없는 비공식 투표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스페인과 카탈루냐의 정치지도자들이 각자의 '정치적 명운'을 이번 싸움에 걸고 일대 '도박'을 벌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스페인 정부가 헌법 제155조를 발동해 카탈루냐 자치정부를 물리력으로 진압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1978년 개정 헌법의 이 조항은 중앙정부가 불복종하는 지방 정부에게 "필요한 모든 수단을 쓸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현재까지 이 조항을 발동한 정부는 없었다. 더구나 "필요한 모든 조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합의된 기준도 없는 상황이라 불확실성은 더욱 크다. 법적으로는 단연 스페인 중앙정부가 유리하다. 스페인 헌법에는 분리독립과 관련한 조항이 아예 없으며, 헌법재판소라는 최고 사법기관이 카탈루냐 의회가 통과시킨 주민투표 실시법을 무효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주민투표 자체를 불법화했다고 해도 찬반 의견을 묻는 절차까지 원천봉쇄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여론도 강하다. 실제로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실시한 7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카탈루냐 문제로 인한 갈등을 풀려면 주민투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다만, 이 조사에서는 분리독립 반대가 49.4%로, 찬성(41.1%)보다 높게 나타났다. 스페인 외무장관을 역임한 하비에르 솔라나 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은 최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양측의 갈등이) 통제할 만한 수준을 이미 벗어났다. 정치인들이 싸우면서도 게임의 법칙을 존중하던 정상적인 상황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우려를 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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