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그 누구도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0%”
역대 UEFA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단계에서 1차전을 0-4로 패한 팀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 경우는 단 한차례도 없었다. 3주 전 바르셀로나는 파리에서 네 골을 내주며 완패했고 이어진 리가 스포르팅 히혼 전 직후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시즌 종료 후 감독직을 내려놓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실낱 같은 희망을 얘기했지만 사실상 끝난 상황이였다. 아무리 바르셀로나라도 그리고 MSN이라도 기적을 위해서는 0%의 확률과 싸워야 했다. 전세계 축구팬 99.9%가 PSG의 8강 진출을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지난 3주간 0%의 확률에 승부를 걸었고 변화를 통해 2차전을 준비했다. 경기 전 공식인터뷰에서 엔리케 감독이 말했다.
"우리는 승부의 가운데 지점에 있다. 잃을 것이 없는 상황이다. 상대가 4골을 넣었다면, 우리는 6골을 넣을 수 있다. 현재 우리의 분위기는 좋으며,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엔리케 감독은 이 발언이 단순한 립서비스나 허세가 아님을 증명했다. 오늘 바르셀로나는 누캄프에서 PSG를 6-1로 누르고 통합 스코어 6-5로 8강에 진출했다.
나는 지난 2012년 해설을 시작했다. 국내외 다양한 경기를 해설하다보니 작년 한 해만 200경기 넘게 중계를 했다. 자연스럽게 시즌 마다 기억에 남는 명경기가 있다. 지난 시즌 유로파리그 리버풀과 도르트문트의 대결이 있었고 최근에는 맨시티와 모나코의 챔스 16강 1차전이 인상적이였다. 하지만 해설하는 경기가 계속 누적되다보면 책장 넘기듯이 기억은 점점 희미해진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다르다. UEFA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처음 발생한 대 역전이자 0%의 확률을 극복한 기적이기 때문이다. 이 경기를 해설했다는 것은 일생일대의 영광이자 자랑이 될거라 확신한다. 나는 대단한 행운아이며 이 경기를 생중계로 시청한 사람들은 축구 역사의 증인이 될 것이다.
이거 정말 실화다.
# 바르셀로나, 0%에 대한 준비
지난 1차전 0-4 패배 이후, 바르셀로나에게는 두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째. 백스리 포메이션
둘째. 엔리케 감독 사임 발표에 따른 내부 결속력 강화
PSG와의 1차전 직후 치른 레가네스 전(2-1승) 이후, 아틀레티코 전을 시작으로 바르셀로나는 백스리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경기를 치렀다. 포메이션 변경의 목적은 분명했다. 바르셀로나에게는 골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지난 PSG와의 1차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번 시즌 바르셀로나의 최대 약점인 미드필드 경쟁력을 보완해야 했다.
엔리케의 선택은 백스리 포메이션이였다. ① 중원에서 숫자 싸움의 우위를 통해 액션 존을 최대한 상대 진영으로 끌어올렸다. ② 공격 기본 형태인 스리톱에 메시가 추가되었다. 네이마르는 좌측에 형태를 넓게 잡고. 하피냐가 우측에서 전후로 넓은 지역을 담당했다. 메시는 반 칸 밑에서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자유롭게 움직였다. ③ 중앙에서 부스케츠의 영향력이 살아났다. 백스리를 사용했던 앞선 세 경기에서 조르디 알바와 세르지 로베르토는 새로운 요리에 훌륭한 재료가 되었다. ④ 후방에 위치한 세 명의 수비수로 상대 역습을 대비했다. 바르셀로나는 백스리를 공격적으로 사용했지만 후방에 세 명을 두는 첫 번째 이유는 언제나 상대 역습에 대한 대비다.
아틀레티코(2-1승), 스포르팅 히혼(6-1승), 셀타비고(5-0승). 바르셀로나는 새로운 포메이션으로 치른 최근 세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고 13골을 성공시켰다. 엔리케 감독은 경기마다 선발 명단과 포지션 조합에 조금씩 변화를 주며 최상의 조합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중원 영향력과 득점력이 살아나며 긍정적인 분위기가 감지 되었다.
모든 전략과 전술을 설정할 때, 항상 선수들의 심리 상태를 반영해야 한다. 축구에서 두뇌와 몸과 마음은 결국 하나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스포르팅 히혼 전 이후 발표된 엔리케 감독의 소식이 오히려 바르셀로나 선수단을 강하게 결집시켰다. 엔리케는 이번 시즌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두시즌 전 트레블을 달성한 감독이다. 지난 1차전 패배 이후 팀과 엔리케에 관련된 거친 보도가 많았지만 바르셀로나는 엔리케 감독의 ‘유종의 미’를 위해 결집했다.
사실 중계 할 때나 현장에서 코칭을 할 때도 선수들의 눈을 자주 관찰한다. 선수들의 눈빛에서 간접적으로 에너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3주 전과 비교했을 때, 양 팀 선수들의 에너지는 정반대 상황이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0% 였지만, 한 번 상처받은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그 누구도 자신들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 경기를 주도 한다는 것
주도 (主導), [명사] 주동적인 처지가 되어 이끎.
공 점유율이 높다고 해서 경기를 주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때로는 공 없이 더 플레이를 많이 하는 팀이 경기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오늘 바르셀로나는 축구 경기에서 주도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66%의 공 점유율은 기본, 90분 내내 모든 상황에서 PSG의 전술적 선택을 수동적으로 만들었다. 바르셀로나는 공격 전개 시 3-3-4 형태를 만들어 액션 존을 최대한 PSG 진영 쪽으로 압축시켰다. 특히 전반 30분 이후에는 PSG의 모든 필드 플레이어를 15분 간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 가둬버렸다.
다득점이 필요한 바르셀로나는 공이 최대한 많이 PSG 골문 근처에서 머물게 해야 했다. 과감한 전진과 프레싱으로 PSG를 내려 앉혔고 밀집된 공간에서 세밀한 조합 플레이를 시도했다. 다른 팀들에게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바르셀로나는 익숙한 환경, 오늘 바르셀로나는 자신들이 가장 잘 하는 것을 더욱 많이 하기 위해 노력했다. 패스와 리시빙의 질, 움직임의 타이밍, 영리하고 동시다발적인 침투, 공을 잃었을 때 최대한 빠른 수비 자세 전환 등 많은 부분에서 PSG를 압도했다.
# 우나이 에메리의 PSG는 끝났다
반면 PSG는 1차전과 달리 90분 간 단 한번의 흐름도 주도하지 못했다. 사실 전략적 선택의 폭은 바르셀로나보다 PSG가 더 다양했다. 1차전 4골의 리드, 무엇보다 과감하게 전진하는 바르셀로나의 후방을 공략 할 수 있는 역습 유닛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차전에서 놀라온 영향력을 발휘한 라비오-베라티-마튀이디 중앙 미드필드 조합은 오늘도 그대로 출전했다. 전방 스리톱에는 작은 부상이 있는 디 마리아 대신 루카스 모우라가 카바니, 드락슬러와 함께 출전했다. 오늘 PSG의 스리톱은 빠르고 활동량 많으며 기술도 갖춘 조합이였다.
초반부터 경기는 밀렸다. 물론 중원에서 밀리고 싶지 않았겠지만 역부족으로 밀려났다. 누구나 예상했던 흐름이였다. 하지만 PSG에게는 결코 나쁜 상황이 아니였다. 가드 단단히 올리고 있다가 묵직한 어퍼컷 한 방씩 날리면 되는 경기였다. 그리고 그 정도 능력은 있는 팀이다. 하지만 PSG는 중앙 연결을 고집했다. 자신의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서 수비에 성공하면 중앙에 위치한 라비오나 베라티에게 공을 투입했다. 하지만 숨 돌릴 틈도 없이 그 공을 3~4초 내에 다시 바르셀로나 쪽으로 넘어갔다. PSG는 반복적으로 무리하게 중앙으로 공을 투입했고 중앙에 위치한 PSG 미드필더들은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있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에게 곧바로 차단 당했다.
PSG는 계속해서 중앙 연결 후, 측면 전개를 시도했다. 하지만 오늘은 측면에서 측면으로, 그리고 직선적으로 전개를 시도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였다. 중앙을 거쳐 가는 것이 플랜A 였다면 그것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적용 할 수 있는 플랜B가 준비되어야 한다. 이 레벨에서 플레이 하는 팀들에게는 필수사항이요,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준비 할 수 있는 플랜B가 명확했음에도 불구하고 PSG는 90분 내내 바르셀로나에게 수동적으로 끌려다녔다. 측면에서 전방 공간으로, 때로는 선 굵게, 상대와 적극적으로 경합하는 플레이를 시도했다면 PSG 수비진이 이 정도로 얻어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PSG가 유일하게 기록한 카바니의 골은, 롱킥-헤딩 리턴-슈팅으로 만들어졌다.
PSG는 훌륭한 창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내내 방패만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PSG는 상대에게 점유율을 내주고 지키는 플레이를 하는데 익숙한 팀이 아니다. 경기 내내 밀리는 이 상황이 어색했을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경기 내내 이어지자 PSG 수비들은 스트레스가 누적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누적된 스트레스는 집중력 저하와 뫼니에가 페널티킥을 내 준 상황같이 순간 동작 때 경직된 반응으로 표현되었다.
PSG는 총 6골을 내줬다. 두 번의 페널티킥과 한 번의 프리킥. 하나의 자책골과 실책성 플레이. 바르셀로나가 정말 잘해서 실점한 골은 마지막 세르지 로베르토의 골이 유일했다. (이것 역시 예방은 충분히 가능했다.) 축구에서는 경기 시작 후 5분, 종료 전 5분을 조심해야 한다. 오늘 PSG의 모든 실전은 그 시간대에 포함되어 있다. 아무리 강한 방패도 계속 얻어맞으면 균열이 생기고 아무리 맺집 좋은 놈도 계속 맞다보면 쓰러진다. 이번 시즌 챔스 조별리그 6경기에서 7골을 내준 PSG의 수비가 과연 견고하다는 평가를 받았던가?
에메리 감독이 오늘 경기에 대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확인 할 수 없었다. 패턴에 의해 준비된 역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바르셀로나의 백스리가 예상되었음에도 그에 대비한 전술도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 경기 중 얘기한것처럼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변화를 주면 좋았을 것이다. 수비 라인을 일시적으로 올려서 전방 압박을 시도하거나 백스리로 전환하여 지저분하게 실점하지 않는 백병전 형태로 경기를 운영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는 PSG가 두려워 하는 것을 실행했다. 하지만 PSG는 바르셀로나가 두려워하는 것을 전혀 해내지 못했다.
PSG는 세비야가 아니다.
# 네이마르
3-0 까지 바르셀로나의 기세는 대단했다. 하지만 62분 카바니의 골이 터지면서 경기의 열기가 식기 시작했다. 30분 남은 상황에서 바르셀로나는 또다시 세 골이 필요했다. 경기 템포가 조금 느려졌다. 몇몇 선수들의 적극성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카메라는 체념한 바르셀로나 팬들의 모습을 비춰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 한 명. 네이마르의 에너지는 사그러들지 않았다. 카바니의 골이 터진 후에도 네이마르는 계속해서 PSG 수비들과 경합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플레이에 나타났다. PSG 벤치도 이 부분을 감지했다. 그래서 75분에 드락슬러 대신 수비수 오리에를 투입시키며 우측 풀백에 있던 뫼니에를 윙어로 전진켰다. 오른쪽 풀백 오리에, 윙어 뫼니에로 네이마르의 측면을 완전히 봉쇄하겠다는 계획이였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이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이후 실제로 측면에서 네이마르의 돌파가 여러번 차단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마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88분 네이마르의 프리킥을 차기 직전, 중계 중에 이야기했다.
“마지막까지 의지를 잃지 않는 선수는 네이마르입니다.”
88분 네이마르 프리킥 골, 91분 수아레스의 페널티킥 골. 여전히 한 골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세르지 로베르토의 결승골 역시 네이마르의 발 끝에서 연결되었다. 위대한 선수는 어려운 상황에서 동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염시킨다. 마지막 8분 동안 바르셀로나는 세 골을 뽑아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네이마르가 있었다.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1%의 가능성 있다면 우리에게는 99% 믿음이 있다." - 네이마르의 경기 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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