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반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한국이 지난해 7월8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를 결정한 직후로 말이다. 당시 “사드 배치 결정을 하더라도 중국이 경제 보복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다.
“(중국의 사드 경제 보복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다. 기본적으로 한·중 관계가 고도화돼 있다. 쉽게 경제 보복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 2016.7.19 황교안 국무총리(현 대통령 권한대행)
“(중국 측이) 정치와 경제는 분리하지 않을까 예측한다. 대규모 (사드로 인한 경제) 보복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 2016.7.11 유일호 경제부총리
“시중에 떠도는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은 중국의 한반도 정책과 배치되는 얘기다.”
- 2016.8.5 정진석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
정부와 여당의 예측은 반년 만에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경제 보복은 현실화하고 있다. 중국과 관련된 경제주체 곳곳에서 ‘경고등’이 켜졌다. 중국의 경제 보복은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의 대(對)중국·홍콩 수출 비중은 약 31.8%(2015년 기준)이고,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2만3000여 개(2013년 기준)나 되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경제 보복 실태를 짚었다. 코트라·무역협회·재계 등을 통해 수집한,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의심되는 사례는 유형별로 크게 네 가지다.
① 中 기업, 한국 투자계획 ‘돌연 취소’
중국 정부의 ‘경제 보복’ 기류에 중국 기업이 기민하게 반응했다. 당국의 입장에 따라 한국 투자나 진출 계획을 갑자기 접었다. 중국의 한 대도시에서 ‘주목받는 청년 기업가’로 선정된 적 있는 중국인 황아무개씨(43)도 마찬가지였다. 자산 수천억원대의 중국 중견기업 B사를 경영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한국 콘텐츠 기업과 접촉하고, 대규모로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당국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난징(南京)시 문화콘텐츠 기업 L사도 이제껏 한국 투자를 활발히 진행했지만, 최근 “사드 이슈로 추가 프로젝트 진행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한국 코스닥 상장사 투비소프트가 중국 국영기업으로부터 받기로 한 1000억원 규모의 투자가 무산됐다. ‘사드 배치 결정’이 이유였다. 이외에도 지난해 하반기 ING생명 인수전에 뛰어든 중국 자본이 사드 배치 결정 이후 계획을 취소했다.
② 中 당국, 한국 기업에 각종 규제 강화
중국 내 한국 기업에 대해 중국 당국이 여러 측면의 ‘불이익’을 준다는 의혹이 나온다. 세무조사·통관·검역 강화를 통해서다. 롯데그룹에 대한 세무조사가 대표적 예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11월부터 롯데 중국법인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섰다. 또 영업장의 소방·위생 점검도 강화했다.
이외에도 ‘사드 보복’으로 의심되는 사례는 다수 발견된다. 한국 배터리를 쓰는 전기 승용차와 전기 트럭은 기존에 중국 정부의 보조금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사드 배치가 결정된 이후 대상에서 빠졌다. 관세와 인·허가 불이익도 있다. 중국 상무부는 올해 1월부터 한국산 비분산형 단일모듈 광섬유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5년 연장한다고 밝혔다. 의료기기 업체인 오스템임플란트는 특별한 이유 없이 중국에서 쓸 의료기기 경영허가증을 갱신하지 못해 8개월 동안 영업에 차질이 생기는 일도 벌어졌다.
아울러 올해 1월 중국 당국은 28개 화장품에 대해 수입 불허 판정을 내렸는데, 이 중 19개가 한국산 화장품이어서 ‘사드 보복’ 우려가 커지기도 했다. 이후 이 결과는 한 업체가 13개 화장품 품목의 인허가 등록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가거나, 아니면 추가 보완으로 가능했을 일이었는데, 굳이 서류미비를 핑계로 무역장벽을 높이는 것은 최근 중국의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③ 중국의 ‘한한령’…한류 콘텐츠 ‘빨간불’
“중국 당국이 한국 연예인들의 자국 방송·드라마·영화 출연을 막는다.” 지난해 7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흘러나온 이런 말은 ‘한류 바람’으로 성장한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괴담’처럼 떠돌았다. 하지만 이 괴담은 곧 구체적 정황으로 나타났다. 중국에서 인기몰이를 하는 배우 이민호·전지현이 출연한 《푸른 바다의 전설》은 중국의 심의 규제로 수출되지 못했다. 배우 이영애가 출연한 《사임당, 빛의 일기》도 당국 심의가 길어지는 상황이다. 인기 그룹 엑소의 콘서트 계획이 연기됐고, 김우빈·수지·이준기 등의 중국 팬미팅과 프로모션이 무산됐다.
중국 정부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반년간 ‘한한령(限韓令)’을 인정하지 않다가 최근 우회적으로 공식 시인했다. 중국 외교부 측은 1월4일 민주당 방중 의원단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 측이 국민감정이 안 좋은데,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여주면 오히려 더 안 좋을 수 있으니 중국 국민이 보지 않도록 제재한 것”이라고 말했다.
④ 중국 정부 “한국 관광 가지 마라”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 수를 전년보다 20% 줄여라.” 중국 정부는 지난해 9월 현지 여행사들에 이런 구두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 정부는 이를 “저가 여행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라고 해명했지만, 이 지시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이 내린 보복의 일환으로 해석됐다.
중국 여행사들도 당국 지시에 따르는 모습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52만5000명이었다. 10월 관광객 수가 68만918명인 것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20% 이상 감소한 셈이다. 아울러 최근 중국 정부는 ‘유커 줄이기’에 노골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내 항공사인 제주항공·아시아나항공·진에어는 중국민용항공총국에 “올해 1월 한·중 간 부정기 항공편을 취항하겠다”고 신청했지만 허가받지 못했다. 항공사들의 전세기 취항 요청이 줄줄이 허가받지 못할 경우 한국 관광·유통 업계의 대목인 춘절(중국의 명절로 1월27일~2월2일) 매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 업계가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사정이 어려워졌다. 단체손님이 줄었다”면서 “대규모 면세점보다 중소면세점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네 가지 유형별 피해는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할 가능성도 크다. 이제껏 중국은 외교적 갈등을 경제 보복으로 연결시켰고, 성과를 얻어낼 때까지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반년 전 우리 정부와 여당이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다.
중국 정부의 이런 정책 기조는 2000년 한국이 겪은 ‘마늘 파동’이 대표적 사례다. 한국이 당시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중국산 냉동·절임 마늘의 관세율을 높이자, 중국은 한국의 폴리에틸렌과 휴대폰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한국이 관세율을 낮추고서야 중국은 수입 중단 조치를 해제했다. 일본도 한국과 비슷한 경험이 있다. 2010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순시선이 충돌하자, 일본은 중국 어선의 선장과 선원을 억류했다. 중국은 곧바로 일본에 희토류를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일본은 모터·휴대폰을 만드는 데 필요한 희토류 90%를 중국에서 수입해 쓰던 상황이었다. 결국 일본은 나포한 중국인들을 곧바로 석방했다. 이후 중국의 희토류 수출은 계속됐다.
그렇다면 해법은 있을까. 우선 “대중(對中)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일부 기업은 실제로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이런 대안을 고려하는 모양새다. LG화학과 삼성SDI도 중국 내 한국산 배터리를 쓰는 전기차를 차별하는 분위기 탓에 생산물량을 다른 국가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기업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민간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중국과 관련된 사업 중 국내나 제3국으로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모든 산업에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이 세계 경제 성장의 40%를 담당한다. 대중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경제 보복’이 지속되면 한국이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까지 고려해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한국이 중국을 WTO에 제소한다고 해도 결론이 날 때까지 수년이 걸린다. 그때가 되면 이미 경제 피해를 받고 상황이 끝날 것”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드 경제 보복을 풀 가장 빠른 해답은 외교적 해법을 찾는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김 소장은 “이 문제는 외교·안보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정부가 사드 배치와 관련된 정책 집행을 고집하게 되면, 한국 기업들이 경제적 피해를 보는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트라 관계자도 “정치적 상황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경제주체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라면서 “경제적으로는 중국을 굳이 자극하지 않고 차분하게 나가면서 외교적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드 보류로 일단 협상력부터 늘려야”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인터뷰
긴 ‘터널’일지도 모른다. 한국이 겪고 있는 중국발 사드 경제 보복 얘기다. 그렇다면 사드 경제 보복의 ‘출구’는 있는 것일까. 기자는 1월10일 오후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에게 사드 경제 보복의 ‘출구’에 대해 물었다. 최 교수는 “중국의 사드 보복이 국내 금융시장에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한 뒤 “사드 보류로 협상력을 늘린 뒤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얼마나 ‘사드 보복’에 적극적이라고 보는가.
중국의 천하이(陳海)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이 한국 기업 관계자에게 “사드가 배치되면 중국에서 사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설령 이 얘기가 사적 의견이라 할지라도 중국 정부 입장이 내포된 거다. 중국의 민·관영 언론이 말하는 ‘보복 경고’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 생각하면 민감한 건 당연하다. 사드는 미국 입장에선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꽃놀이패다.
중국이 ‘비공식적 무역 보복’ 형태를 취하는 이유는 뭔가.
중국 정부에서는 외교적 카드를 남겨 놓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인들의 ‘반중(反中) 감정’을 고려해서 공식적으로 무역 보복을 선언하면 사드 배치 결정을 번복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한국 상황이 어려워졌을 때 상황을 봐서 집중적으로 이 외교적 카드를 사용할 것이다. 한국의 올해 대선 일정이 당겨지는 혼란 속에서 중국 정부의 경제 보복 강도가 일부러 더 빨라진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의 경제 피해는 얼마나 커질 것으로 보는가.
다른 부문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제까지 간과한 것이 금융부문이다. 중국이 2009년부터 우리나라 상장채권 매입을 크게 늘리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 동맹 강화를 추진할 때 중국이 향후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 개념으로 상장채권 매입을 크게 늘린 것이다. 지난해 3월부터 미국을 제치고 한국 상장채권 보유국 1위가 됐다. 중국이 채권을 매도하면 정책금리가 오르지 않았는데도 시장금리가 오르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통화정책에 혼란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사드 보복’으로 인한 금융시장의 또 다른 피해는 없나.
한·중 통화스와프가 올해 10월 만료된다. 한·일 통화스와프가 100억 달러(약 12조원) 규모였는데, 중국하고는 500억 달러(약 60조원) 규모였다. 그간 한국의 외환보유액 절대규모가 증가해서 사람들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도 한국은 국제결제은행(BIS)이 정한 외환보유액보다 외환 보유량이 적다. 한·중 통화스와프가 중단되면 실물경제가 나빠질 뿐 아니라 투기자본이 한국을 공략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다.
큰 피해를 막고, 사드 경제 보복의 ‘출구’를 찾을 해법은 없나.
한국은 중국으로 인해 많은 경제성장이 있었고, 그것을 그동안 즐겼다. 게다가 중국이 전 세계 경제성장에 40%를 기여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힘이고, 시장이다. 무조건 중국 의존도를 낮추자고만 하는 것은 비현실적 접근일 수 있다. 대안은 사드 배치를 시간을 두고 지연시켜 놓는 것이다. 이 경우 중국과의 협상력이 증가한다. 사드 경제 보복 중지, 우리에게 유리한 한·중 FTA 서비스협상 논의 등을 중국에서 얻을 수 있다. 더불어 미국과도 한·미 통화스와프 등 여러 협상에서 주도권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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