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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준비부터 여행후유증까지 ②

천하한량 2017. 1. 11. 15:18

오마이뉴스 글:정효정, 편집:박혜경]

▲ 남자찾아 산티아고 번외편 2 인생의 여름방학, 산티아고 순례길을 즐기는 법
ⓒ 정효정
2015년 9월과 10월 산티아고 순례를 하고, 2016년 6월부터 12월까지 오마이뉴스에 <남자찾아 산티아고>(☞클릭 연재 페이지 가기)라는 글을 연재했습니다. 연재의 마무리 의미로 많은 분들이 가고 싶어하는 산티아고 순례길 정보를 정리해 봅니다. - 기자 말

이전 기사 : [남자찾아 산티아고 번외편 ①] 2017년엔 나도 산티아고 걸어볼까?

산티아고는 예수의 12제자 중 하나였던 야고보(산티아고, Jacob)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부의 도시다. 이 산티아고에 간다는 것은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뜻하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를 걷는 것을 말한다. 8세기 경 갈리시아의 한 수도사가 야고보의 유해를 발견한 후, 이 길은 가톨릭의 주요 성지순례코스로 자리 잡았다.

그 후 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속죄받기 위해 이 길을 걸었다. 현대에 들어 이 길의 의미는 달라졌다. 오늘날 산티아고로 향하는 800km는 거리의 개념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현대인들은 건강, 자아성찰, 트레킹 등 다양한 이유로 이 길을 걸으며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길 원한다. 한 해 23만 명의 세계인이 산티아고를 향해 걸으며, 이 중 한국인은 12위를 차지할 정도로 국내 순례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번 기사는 준비과정에 이어, 실제 순례자가 길을 걸으면서 필요한 정보와 순례 후 후유증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산티아고를 걸으며

- 크레덴시알 발급
본격적인 순례에 나섰다면 이제 여행자가 아닌 순례자로 불리게 된다. 순례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순례자 오피스에서 크레덴시알(credencial)을 발급받는 것이다. 각 지역의 성당이나 숙소에 도착했을 때 이 크레덴시알에 세요(Sello)라고 불리는 스탬프를 찍는다.

순례자 여권이라고도 불리는 이 크레덴시알은 순례자를 증명하는 서류 같은 개념이다.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에서는 이 크레덴시알을 보여줘야 묵을 수 있고 (일반여행자는 숙박할 수 없다) 박물관 등의 순례자 요금도 이 증명서를 보여줘야 할인 받을 수 있다.

▲ 순례자여권 크레덴시알 이게 있어야 알베르게에서 묵을 수 있고, 박물관 등을 할인받을 수 있으니 늘 지니고 다니자
ⓒ 정효정
▲ 순례자 나초의 스탬프 알베르게, 성당 , 일부 식당 등에서 스탬프를 찍어준다. 자신만의 스탬프를 가지고 다니며 찍어주는 순례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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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길의 언어
순례길을 걸으며 가장 많이 하게 될 말은 "좋은 순례길"이라는 뜻의 "Buen Camino(부엔 카미노)"이다. 그 다음 자주 쓰이는 말로는 "안녕"을 뜻하는 "Hola(올라)", "감사합니다"를 뜻하는 "Gracias(그라시아스)"가 있다.

- 숙소
산티아고의 숙소는 알베르게, 호스텔, 호텔이 있지만, 보통은 알베르게에 묵게 된다. 알베르게도 중세 성당을 개조해 만든 알베르게부터 현대식 알베르게, 개인집처럼 편안한 알베르게 등 다양하다. 매일 바뀌는 숙소를 경험하는 것도 순례길의 매력이다.

공립 알베르게(albergue municipal) :  시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다. 저렴하지만 공동 부엌과 욕실, 한 방에 여러 명이 묵는 것이 기본이다. (5~10유로)

사설 알베르게(albergue privado) : 개인이 운영하는 알베르게다. 가격은 공립보다 비싸지만 좀 더 적은 인원으로 쾌적하게 머물수 있다.

기부제 알베르게(albergue donativo) : 순례자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시설은 가장 열악한 편에 속하지만 뜻깊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 많다.

※ 기부제 알베르게에 대해 
기부제 알베르게는 주로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토산토스 알베르게, 이탈리아 페루자 순례자 연합에서 운영하는 산니콜라스 알베르게처럼 각 교구나 수도회, 순례자 협회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순례자만의 미사가 진행되거나, 함께 식사를 준비하기도 하는 등 그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일단 묵기로 한 이상 제시하는 룰은 가급적 지키는 것이 좋다. (미사참가나 간단한 노동력 제공 등) 또한, 기부제라고 '무료'인 것은 아니다. 다음 순례자를 위해서라도 적정한 수준의 기부금을 반드시 내도록 하자.

▲ 순례자 숙소 (알베르게) 내부  1인실이나 2인실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여러명이 함께 묵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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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부제로 운영되는 토산토스 알베르게 호스티탈레로의 환대와 특별한 미사로 순례길 최고의 알베르게로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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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길의 식사
순례길의 대부분의 식사는 바르(bar)라고 불리는 카페 겸 주점에서 이루어진다. 이곳에는 커피와 크루아상, 토스트, 또르띠야(스페인식 감자오믈렛), 보까디요(스페인식 샌드위치), 와인, 맥주, 핀초스(꼬치에 꽂힌 안주류),  타파스(접시에 담긴 안주류) 등이 있다. 저녁에는 순례자 메뉴가 10~12유로에 3코스로 제공된다. 알베르게에 부엌이 있을 경우 요리를 해서 먹는 경우도 많다. 슈퍼마켓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빵, 하몽(햄), 야채 등을 구해 요리도 하고 다음날 점심식사용 샌드위치를 만들기도 한다.

- 예산 및 금전관리
항공권과 기차를 제외하고 순례에 드는 비용은 보통 하루에 30유로를 기준으로 잡는다. (평균 1km에 1~1.5유로 정도로 계산) 물론 본인이 더 아끼거나 더 쓸 수 있다. 보통 사용되는 금액은 숙박비, 식사비, 세탁기와 건조기 사용료, 현지 약 구입비, 박물관 및 성당 입장료 등이다. 각 마을마다 ATM기가 있기에 해외 인출이 가능한 현금카드나 신용카드라면 어디든 사용가능하다. 동양인은 현금을 많이 지니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 강도나 도둑의 표적이 되기도 하니 인출을 한꺼번에 많이 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 요리하는 이탈리아 친구 공동주방을 쓸 때는 한꺼번에 여러가지를 요리하거나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않도록 서로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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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심은 금물
순례길에서도 방심은 금물이다. 전세계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강도를 당하거나, 귀중품을 도난 맞거나, 성추행을 당하는 일도 있다. 귀중품은 작은 가방에 넣어 늘 몸에 지니고, 여성의 경우 지나치게 친절하게 구는 남성이나 호스피탈레로(봉사자)를 주의한다. 애매한 표현보다는 단호하게 'NO'라는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 건강 문제
순례길에서 생길 수 있는 건강상의 문제는 빈대와 물집 그리고 족저근막염 등이 있다.

빈대(bed bug)
순례길의 악명높은 빈대. 자신이 물린 게 빈대인지 모기인지 헷갈린다면 물린 부위로 판단이 가능하다. 물린 부위가 한곳에 집중되어 있거나 열을 지어있으면 빈대일 가능성이 높다. 항상 침낭을 사용하고 지나치게 낡은 숙소에서는 침대 매트리스를 뒤집어 살펴보고 검은 점이 있으면 다른 침대로 옮기도록 하자. 계피와 에탄올로 만든 계피스프레이를 사용하는 순례자도 있다. 한번 물렸을 경우에는 모든 옷과 침낭과 배낭을 햇빛에 건조하거나 건조기에 넣고 열풍을 가열한다. 빈대에 물렸을 경우에는 바로 약국으로 가서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산다. 스페인어로 빈대는 'chinche(친체)'라고 한다.

▲ 물집으로 엉망이 된 발 물집을 얕보면 이렇게 된다. 소독을 꾸준히 해야한다
ⓒ 정효정
물집(blister)
물집의 처치로 많이 알려진 것이 소독한 바늘과 실로 물집을 터트리는 거다. 하지만 이때 소독을 제대로 안 하거나 후처치를 제대로 못하면 덧나는 수가 있다. 물집이 생겼을 경우 스페인 약국에 가면 꼼삐드(Compeed)라는 붙이는 패드를 살 수 있다. 물집이 잡히는 초기에 사용하면 가장 효과가 좋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방이다. 물집이 생기는 이유는 땀과의 마찰 때문이다. 걸으면서 자주 신발을 벗어 양말을 말려주고, 아침저녁으로 발에 바세린을 발라주는 것이 좋다. 무좀양말이라고 알려진 발가락 양말도 효과가 좋다.

- 순례자 증명서
사하군에서는 반완주 증명서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면 순례자 오피스에서 순례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완주 증명서가 목적은 아니지만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는 증명서를 가지는 건 가슴 벅찬 경험이다.

▲ 완주증명서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완주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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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친 후

- 순례 후의 고통
순례를 마치면 다시 복잡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사실 순례 이후 오히려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다. 걸으면서 한 번 자기 자신을 비워냈지만, 현실로 돌아가는 순간 모든 고민은 다시 채워지기 때문이다.

이럴 때 효과적인 치유방법은 일기나 여행기를 쓰는 거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해두었던 메모를 바탕으로 다시 글을 쓰다보면, 그때는 몰랐던 느낌이 발견되기도 하고, 또 생각이 정리되며 여정을 의미있게 만들어준다. 

두 번째 고통은 주변 사람들이 주는 고통이다. 이들은 800km를 걷는다는 큰 일을 해낸 당신이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오거나, 아니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오길 바란다.

"그래서, 너는 갔다 와서 뭐가 좀 바뀌었어? 800km를 걷고 나니까 뭐가 남았어?"

▲ 순례길에서 만난 친구들  다들 각자의 고민을 안고 이 길을 걸었다
ⓒ 정효정
성과주의의 폐해다. 사람들은 여행에서조차 즐기는 것보다 무언가 성과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한다. 하지만 이런 압박에 굴복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여행을 마치고 귀국할 때 입국심사대에서 공항직원이 "혹시 인생의 진리는 발견하셨나요?"라고 물어보지 않는다. 그가 난처한 표정으로 "그거 없이는 입국이 안 되는데요, 모르셨봐요?"라고 하진 않는 것이다. 그러니 주변사람들이 그런 압박을 줄 때는 800km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해보자.

"별거 없어. 그냥 즐기다가 왔어."

그럼에도 사람들이 800km의 결과를 내놓으라고 닦달을 한다면, 그때는 기자의 이야기를 해도 된다.

"남자 찾으러 갔다가 못 찾고 온 사람도 있던데, 뭘."

▲ 남자를 찾아갔지만 그냥 온 사람도 있다 여행에서 꼭 남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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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여름방학, 산티아고 순례길

사실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공동숙소에서 자고, 옷 몇 벌로 버티면서 매일 20~30km를 걷는 것은 늘 좋은 기억만은 아니다. 어쩌면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은 '51 대 49'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좋은 기억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더 내어준다면, 고통은 시간이 지나며 미화될 것이다.

그 후 순례길은 이렇게만 기억될 것이다. 고즈넉히 홀로 걷던 숲길, 고성을 물들이던 분홍빛 노을, 바람을 거슬러 걸으며 내뱉던 자신의 숨소리, 누군가의 묘비를 지나치다 잠시 목례하던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리던 저녁 미사, 순례자들과 나누어 마시던 와인, 그리고 다정한 미소로 주고받는 인사말 "부엔 카미노(BuenCamino)". 

▲ 고통과 즐거움이 49대 51이라면 어느쪽을 51로 할 것이냐에 따라 여행의 모든 것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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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길의 가장 큰 매력은 마음껏 이기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순례길에서는 800km만큼의 시간동안, 머리 아픈 현실을 내려놓고, 사랑인지 미움인지도 모를 인간관계도 내려놓고, 그저 단순한 삶을 살면서,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마치 아무 근심걱정 없이 보내던 여름방학처럼, 그저 매일을 나만 생각하며 지내기만 해도 된다. 우리가 인생에서 언제 이런 시간을 다시 가져볼 수 있을까.

어릴 적 여름방학의 기억이 평생의 삶 속에 흐르듯이, 순례길에서 보낸 시간들은 우리 인생에 남아 층층이 결을 형성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지금 당신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이 글이 결정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 노란화살표만 따라가면 되는 근심걱정 없는 길 우리가 삶에서 언제 이런 시간을 다시 가질 수 있을까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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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에 괜찮은 남자가 많다'는 말만 듣고 800km를 걸어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