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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일간의 세계여행] 138. 건물마다 가우디 손길..바로셀로나, 예술이네

천하한량 2016. 12. 21. 15:05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바르셀로나를 빛나게 하는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 투어를 시작한다. 가우디의 평생의 역작들이 거의 미완성인데 비해 가우디의 손으로 완성된 건물이라는 까사밀라(Casa Mila)가 첫 번째다. 관광객들로 흥청거리는 오월의 바르셀로나답게, 이곳 역시 사람이 많다. 한참을 기다려 적지 않은 입장료를 지불하고 내부로 들어온다. 대체 가우디의 무엇이 이렇게 사람들을 끌고 있는 것일까? 말로만 듣던 가우디의 세상 안으로 들어간다.
건물 안으로 들어왔을 뿐인데, 마치 음소거가 된 것만 같다.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중정은 모로코의 전통 가옥에서 본 이슬람식이다. 하늘에 울타리라도 친 듯, 까사밀라의 소유일 것만 같은 파란 공간이 마당을 내려다본다. 네모가 아닌 건물,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이루어진 벽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 이곳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고 어떻게도 상상한 적 없는 신세계다.


건물의 모든 것이 완벽한 예술작품이다. 외벽 자체가 물결모양의 곡선으로 이미 유명한 까사밀라지만, 그 내부는 더할 나위 없는 부드러움의 집합체다. 납작하게 만들어진 철이 구부러져 있는 창틀이나 계단의 난간에도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작은 소품들까지 가우디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것들이 없다.
일부만 공개된 실내를 따라 관람하다 보면 다락방 같은 느낌의 마지막 층에 오르게 된다. 가우디의 면모를 보여주는 아치가 반복되는 이곳은 가우디의 작품을 해설하는 전시실로 사용된다. 옥상의 굴곡을 그대로 떠받치며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천정, 빛이 쏟아지는 창은 이곳이 지구가 아닌 것 같이 느끼게 한다. 이곳이 바르셀로나 신사가지의 거주지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공간에 있는 것 같만 같다. 


여느 건축가들처럼 치밀한 설계를 먼저 하는 법 없이 항상 머릿속의 건축물을 3차원으로 먼저 만들고 설계도는 대충 그렸다는 가우디의 카사밀라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방이나 주방, 계단과 주차장 같은 기본적인 구조는 지금의 아파트와도 다르지 않지만, 그 건물을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가 차이가 있다. 틀에 박힌 사각형이나 직선, 매끄러운 평면이 아니라 유연성, 독특함과 섬세함을 갖추고 있다. 집으로서의 효용성과 건축 작품으로서의 심미성을 둘 다 갖춘 건축물이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서 관리되는 영욕의 죽은 공간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삶의 공간이라는 점이 가우디의 건축물을 더 멋지게 한다. 전시실에 2차원 설계도나 3차원 모형, 그 근간이 되는 자연의 형상들이 전시되어 이런 건축물을 짓는 가우디의 머릿속에 조금이나마 들어가 볼 수 있다.


까사밀라는 라페드레라(La Pedrera : 채석장)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입장할 때 나워 주는 팸플릿에도 이름이 까사밀라가 아니라 라페드레라로 적혀있다. 1910년에 완공했으니 벌써 100주년이 지났다. 까사밀라의 옥상은 가우디의 공간(Gaudi‘s Space)이라 불릴 만큼 가우디 건축의 미학이 드러난 곳이다. 타일의 모자이크가 반짝거리는 탑이나 투구를 쓰고 있는 우주인 모양의 조각들은 사실 예술품은 아니다. 건물의 환기구와 굴뚝들이 이렇게 특이한 모습으로 서 있으니 옥상은 별세계다. 외벽이 중요한 건물이라는데 보수 중인 올해는 외관을 못 보지만, 그 물결치는 외벽만큼 특이한 곳이 바로 이 옥상이다. 옥상은 편평하지도 않아 어느 우주에 불시착한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중정의 섬세한 곡선 실루엣은 찰흙으로 빚어낸 모형을 보는 것 같다. 네모의 각진 세상이 합리적이고 당연하게 보이던 사람들은 옥상에서 다들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 바르셀로나하면 꼭 따라붙던 수식어,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라는 사람이 너무나 궁금해진다.
어느 하나라도 허투루 지은 것이 없는 까사밀라에서 철제 대문을 마지막으로 지나 밖으로 나온다. 가우디의 건축물은 경이롭다. 사진으로 보고 상상하던 이미지는 아주 작은 한 조각에 불과하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은 가우디의 건축물에 어울리는 말이다.


다음 여정은 까사밀라에서 멀지 않은 까사바트요(Casa Batllo)다. 까사바트요의 바로 옆집은 건축가 푸이그가 설계한 까사아마뜨예르(Casa Amatiier)이다. 초콜릿 제조업자인 집주인을 위해 지은 건물이라더니 외벽의 타일이 초콜릿 같기도 하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이 개성을 뽐내는 그라시아 거리, 바르셀로나의 풍경은 상상 그 이상이다. 건축물 박람회에 온 것 같다.
까사바트요는 지중해가 테마인 건물이다. 건물의 어디에도 바다의 이미지가 넘친다. 주인의 공간으로 설계되었다는 2층의 거실의 유리에서는 방금 들어온 거리가 그대로 내려다보인다. 어항 속의 물고기가 세상을 보듯, 방금 전까지 서 있었던 거리가 낯설어 보인다. 다른 차원의 세상 속인 것만 같다.
조명하나, 장식품, 계단마저도 평범하지 않다. 어느 위층에서 보이는 아래층은 물고기 같기도 하고 우주선 같기도 하다. 조화를 이루는 모든 것이 가우디의 작품이다. 수려한 공간에 다른 생각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진다. 건물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까사밀라에서 그렇듯 중정이 있다. 빛이 내려오는 벽 아랫부분은 심해처럼 짙은 파랑이고 위로 갈수록 색이 옅어진다. 동굴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바다 속을 유영하는 기분이기도 하다. 난간을 장식한 유리를 통해 바라보면 여지없이 수중장면이다. 다른 차원의 공간인 것 같다. 마지막 층 다락방의 포물선 구조는 아까 까사밀라에서 보던 그것이다. 까사바트요가 먼저 지어지고 나서 까사밀라에서 더욱 발전한 구조라고 한다.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나름의 단계와 발전으로 만들어진다. 대체 건물 안에 이런 구조를 생각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까사밀라와 마찬가지로 까사바트요에서도 직선을 발견하기 어렵다. 유려한 곡선을 따라 관람하다 보면 옥상에 도착한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타일로 만든 구조물을 둘러싼 철망도 구조물의 곡선을 따라 만들어져 있고 가시철망 자체의 곡선 역시 의도된 아름다움이다.
마지막 층 다락방의 포물선 구조는 아까 까사밀라에서 보던 그것이다, 까사바뜨요가 먼저 지어지고 나서 까사밀라에서 더욱 발전한 구조라고 한다.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나름의 단계와 발전으로 만들어진다. 대체 건물 안에 이런 구조를 생각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미 까사밀라의 옥상을 경험했기에 각오하고 옥상으로 나간다. 이곳의 굴뚝 역시 독특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한다. 용의 등뼈 모양의 담장이 그 귀를 받치고 있고 하얗고 특이한 모습의 십자가가 뒤로 보인다. 고딕 양식이니 르네상스 양식이니 하는 예술의 양식들은 시대가 만든 것이지만 가우디의 작품들은 시대의 영향은 받았을지언정 가우디라는 개인의 산물이다.
아름답고 독특한 외관만큼이나 그 안에 들어있는 바다의 이야기, 용의 신화를 확인했기 때문일까? 가우디의 상상의 샘물 속을 유영하고 나온 기분이어서일까? 내부를 관람하고 나와서 다시 바라보는 까사바트요는 확실히 달라져 있다.


이번에는 구엘 별장으로 간다. 무하데르 양식을 사용했다는 이 건물 역시 가우디의 다른 작품들처럼 타일을 주로 사용했고 그 섬세한 장식들도 여전하다. 지금은 대학의 건축학부 소속의 건물이라서 입장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굳게 닫힌 철문이지만, 그리스 신화를 묘사한 문의 용은 생동감이 넘친다.
고딕지구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에도 사람은 많다. 현지인들이 약속을 하거나 산책을 나오고 거기에 관광객이 섞여 하루가 저물고 있다. 번잡스런 관광지일지라도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기는 늘 바깥세상의 소란스러움과 격리된 경건한 세상이 있어 좋다. 종일 따가웠던 햇살은 부드러워지고 머리카락을 날리는 바람이 반가워진다.
대성당 앞의 카탈루냐 건축가협회 건물에는 어린아이 그림 같은 희한한 그림이 간판처럼 걸려있다. 주말마다 대성당 앞에서 까딸루냐의 민속춤인 사르다나(Sardana)를 춘다고 하는데, 이 간판은 그것을 묘사한 피카소의 그림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중세의 거리를 현대의 사람들이 걷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옛 거리인 고딕지구다. 사람들을 따라 갔다가 되돌아온다. 오후 골목의 아치 아래를 거니는 기분이 괜찮다.
어디선가 은은한 음악소리가 울려 퍼진다. 멜로디를 부르는 트럼펫은 알겠는데, 무릎에 올려놓고 두드리는 솥처럼 생긴 저것은 처음 보는 악기다. 연주자의 손이 현란하게 오가면 그 은은한 울림이 골목에 메아리치는 것이 정말 듣기 좋다. 골목을 걷던 사람들이 그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연주를 듣는다. 연주는 길게 이어진다. 어둑해진 골목에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하루가 이 아름다운 연주와 함께 마무리된다.


바르셀로나의 밤은 향기롭다. 한낮의 북적거림까지는 아니지만, 가우디를 못 잊은 몇몇 여행자들이 밤의 까사바뜨요 근처르르 서성인다. 까사밀라와 까사바트요가 있는 그라시아 거리의 벤치에 앉는다. 상상력, 창의력, 개성, 독창성과 영감, 노력, 그리고 인생이라는 단어들이 머릿속에 나열된다. 바르셀로나를 가우디로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이제야 알겠다.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을 상상하고, 지어질 수 없는 건물들을 건축해 냈던 사람이 살았던 바르셀로나의 어느 과거를 그려본다. 이제 바르셀로나는 어제까지 알던 그 바르셀로나가 아니다. 가우디의 바르셀로나, 그렇게 이 도시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어둠과 조명으로 더욱 선명해진 까사바트요의 해골이 그라시아 거리의 낯선 여행자들에게 속삭인다.
“가우디의 세상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정리=강문규 기자/mkk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