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자료 ▒

스페인 젊은이 80%, 부모 집 못 떠난다..취업난·집값 탓

천하한량 2016. 1. 2. 18:24

독립하는 나이 평균 28.9세, 유럽 26.1세보다 늦어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 요즘 스페인 젊은이들이 가장 불편함을 느끼는 일 중 하나가 외출할 때마다 부모가 "어딜 가니?"라고 묻는 것이다.

자유를 속박당하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스페인의 30세 이하 청년은 10명 중 8명꼴(78.5%)로 부모 집에서 산다. 부모 슬하에서 벗어나 따로 생활하는 30세 이하 청년은 21.5%에 불과하다.

24세 전에 부모 집을 떠나는 비중은 6.8%에 불과하며, 25~29세에도 급증하기는 하지만 44.3%다.

유럽연합(EU)이 2013년 기준으로 집계한 부모집에 사는 25~34세 청년 회원국별 비율.
유럽연합(EU)이 2013년 기준으로 집계한 부모집에 사는 25~34세 청년 회원국별 비율.
유럽연합(EU) 회원국별 2013년 부모와 함께사는 20대 청년(20~29).  세로축은 %. 푸른색은 여성, 붉은색은 남성을 나타나며, 굵은 점은 20~24세, 가는 선은 25~29세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별 2013년 부모와 함께사는 20대 청년(20~29). 세로축은 %. 푸른색은 여성, 붉은색은 남성을 나타나며, 굵은 점은 20~24세, 가는 선은 25~29세이다.
미국 2000년부터 2011년 사이 25~24세 청년 중 부모집에 사는 비율 추이. 파란색은 여성, 연두색은 남성.
미국 2000년부터 2011년 사이 25~24세 청년 중 부모집에 사는 비율 추이. 파란색은 여성, 연두색은 남성.

집을 떠났더라도 '진짜 독립한' 젊은이는 더욱 적다. 자녀가 집 밖에서 살더라도 일부 부모는 대학을 다니는 동안 재정 보조를 해주거나 주택 구입이나 임차 시 보증해주는 등 경제적 지원을 이어간다.

스페인 청년 생활 실태 조사와 권리 증진을 위한 민간단체 '해방연구소'(EO) 조사에 따르면 2015년 1분기 말 현재 스페인 청년이 부모 슬하를 벗어나 독립하는 나이는 평균 28.9세다.

이는 이탈리아, 그리스, 크로아티아 등보다는 이른 것이지만 유럽 평균(26.1세)이나 19.6세에 독립하는 스웨덴보다는 한참 늦은 것이다.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는 최근 온라인 영문판에서 이 같은 EO의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스페인 청년들이 이토록 나이를 먹도록 독립하지 못하는 이유와 상황을 전했다.

비싼 주택 가격과 안정적 일자리 부족이 주 요인이다.

근년엔 집값이 조금 내려가긴 했으나 지금 사거나 임차하려면 청년들이 평균 받는 봉급의 60%를 주택융자금 상환이나 임차료로 치러야 한다.

전문가들은 임차료나 상환금이 수입의 30% 이하여야 정상생활과 상환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스페인 청년 38.7%가 실업자인데다 질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청년들이 부모를 떠나 독립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엘 파이스가 기사에서 사례로 소개한 28세의 여성 바네사 마르틴의 경우 지난 7년 동안 병원에서 임시직 간호사로 일하며 1천 유로가 조금 넘는 월급을 받았다.

남자친구와 함께 독립하려 했으나 이 수입으론 어려워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경제적 이유 외에 문화적으로도 스페인이 다른 유럽 나라들과 다른 배경이 있다고 사회학자 알문데나 모레노는 지적한다.

그는 "유럽 가치관 조사(EVS)에 따르면 스페인의 경우 부모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가치 평가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늘 높다"고 설명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일찍 독립하지만 부모 슬하를 떠나는 연령대는 마찬가지로 높아지고 있다.

스페인 여성이 엄마가 되는 평균 나이는 2014년 기준 31.8세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스페인 내전 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사망자가 출생아보다 많아지는 등 인구구조는 변하고 있다.

◇ 경제난으로 '독립 지연'은 각국 공통 =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부모 집에 함께 사는 청년이 늘어나고, 부모 슬하를 벗어나는 연령이 늦어지고 것은 구미 국가에서도 공통적인 현상이다.

전통적으로 대학 입학과 동시 또는 대학을 졸업하면 독립했던 미국의 경우 2014년 기준 18~34세 청년 중 약 3분의 1이 부모 집에 살고 있다. 25~34세도 약 20%에 달한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들에게 닥친 심각한 경기침체의 여파, 높은 주택 가격, 경기침체, 학자금 융자, 전반적인 취업능력 저하 등을 그 원인으로 분석했다.

영국의 경우 20~34세 젊은이 중 부모 집에 함께 사는 경우가 1996년 268만명이었으나 2013년엔 335만명으로 증가했다.

BBC는 이 비중은 특히 금융위기로 경기침체가 본격화한 2008년 이후 급증세를 보였다면서 '주택 사다리'를 타기 어렵고 부모 집을 떠나기 어려운 젊은이들의 상황과 출산율 저하가 관련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유럽 전체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이를 '호텔 엄마' 현상으로 부르면서 경제난이 유럽 젊은이들을 부모 집에 붙잡아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몰타 등 소위 남유럽과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 부모와 같이 사는 청년 비율이 70~80% 안팎을 넘나든다.

이 나라들은 경제난이 더 심한데다 대가족주의 전통이 강하다.

choib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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