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북서쪽 모퉁이에 자리잡은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이하 산티아고)를 20㎞ 남기고 길 위로 뛰어들었다. 눈을 두는 곳마다 싱그러운 초록의 대지가 펼쳐졌다.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다져진 황토색의 대지, 우거진 참나무 숲이 만들어낸 그늘이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을 가려준다. 갈림길이 나오면 어김없이 조개껍질이 새겨진 노란화살표의 표식이 등장해 길을 알려준다. 쇠똥냄새, 풀냄새도 난다. 길가의 농가에선 돼지와 말들이 한가롭게 자고 있다. 이따금씩 성큼성큼 추월해가는 뚜벅이족,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자전거족을 만날 수 있었지만, 길 위에선 온전히 혼자다.
스페인을 종주하며 만나는 길 위의 풍광은 다채롭다. 첫번째 고비 피레네 산맥을 넘어 나바라(Navarra)를 지나는 길에는 푸른 포도밭이 펼쳐진다. 메세타(Meseta)에선 나무 한 그루 없는 금빛 밀밭이 기다린다. 그늘 한 점 없는 단조로운 길을 포기하지 않고 힘겹게 통과하면, 마침내 갈리시아(Galicia)에 다다른다. 태양을 피할 수 있는 숲길을 지나 종착지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머리 아프게 여행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다. 이른 아침에 출발해 걸을 수 있는 만큼만 걷고, 오후엔 숙소에서 쉬며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 된다. 걷다가 지칠 즈음이면 마을마다 있는 '알베르게'라 불리는 순례자 전용 숙소에서 5유로 안팎의 비용으로 값싸게 묵을 수 있다. 유럽의 비싼 물가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길에서 만난 한 순례객은 하루 평균 20유로도 안 되는 돈으로 보름째 순례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이보다 안전한 길도 없다. 길을 잃을 위험도, 소매치기·강도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길 위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녹아 있다. 길목마다 자리잡은 오래된 성당, 십자군 전쟁의 흔적, 로마시대의 돌길까지 상상력을 자극하는 오랜 흔적으로 가득하다. 사도 야고보가 스페인에 복음을 전파한 장소를 찾는 순례의 전통이 7세기 초부터 이어져온 까닭이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이슬람교도와 싸우던 그리스도교인들은 야고보를 수호성인으로 삼았다.
야곱의 시신이 배에 실려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 조개들이 그의 몸을 덮어서 보호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조개 문양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상징이 됐다.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된 이후 이곳은 예루살렘과 로마를 잇는 순례길과 비교될 만한 순례지로 자리 잡았다.
종착지인 아름다운 도시 산티아고에는 장엄한 대성당이 서 있다. 야고보의 유해와 동상에는 성인에게 입을 맞추고 기도를 하려는 순례객의 행렬이 끊어지지 않는다. 위풍당당한 완주자들은 완주 증서를 받고 환호한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얻어갈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은 길 위의 사람들이다. 오가며 만난 그 누구도 아낌없이 물과 음식을 나누고, 아플 때면 약을 나눠 준다. 스쳐가며 마주치면서도 아낌없이 미소를 지으며 '부엔 카미노(Buen Camino!)'를 외친다. '제2의 인생'을 생각하며 떠나왔다는 30대 한국인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아 떠나왔는데, 이곳에선 정작 사람들에게 치유 받았어요."
▷▷산티아고 순례길 Tip
1. 가는 법〓프랑스의 파리 몽파르나스역에서 기차를 타고 '생장피데포르'로 간다. 그곳에서 '크레덴시알'로 불리는 순례자 전용 여권을 만들고 시작한다. 스페인 쪽에서는 론세스바예스, 짧은 여정을 위해서는 산세바스티안에서도 많이 출발한다.
2. 걷기 좋은 시기〓'산티아고 성인의 날'인 7월 25일에 목적지에 닿는 여정을 순례자들은 가장 선호한다. 여름은 이 밖에도 방학을 맞은 유럽의 학생들이 몰려들어 가장 붐비는 시기다. 뜨거운 날씨를 비하려면 4월과 5월, 9월과 10월이 좋고, 숙소도 덜 붐빈다.
3. 짐 꾸리기〓가벼운 배낭과 침낭은 필수다. 최소한의 옷을 꾸려서 매일 숙소에서 세탁을 하는 것이 짐을 줄일 수 있는 팁이다. 가장 중요한 신발로는 등산화를 추천하지만 가벼운 운동화도 좋다. 두 켤레를 번갈아가면서 신는 것도 방법.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스페인) =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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