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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의 기원은 목은 선생의 한시”

천하한량 2015. 2. 16. 15:22

 
▲ 중고제판소리학교가 열리고 있는 문헌서원. 경내에 목은 이색선생의 묘가 있다. 왼쪽 끝.

“목은 이색은 음악(아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에 정통한 분이었다.”유성열 전 서천문화원 원장의 말이다. 그는 <목은시고>에 담긴 한시를 정독하며 음악에 관한 시를 추려내어 정리한 후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다음 싯귀는 이를 말해주는 한 예이다.

律呂相生有淸濁(율려가 서로 생함에는 청탁이 있거니와)
韶鈞無譜自高低(소균은 악보 없이도 소리 절로 높낮다오)

한시는 사성법과 압운법 등 음악적 요소가 많은 정형시이다. 목은 선생이 남긴 수많은 한시들은 이러한 음악적 요소를 담고 있다. 따라서 그는 율려(음율)에 정통한 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유성열 전 원장은 지난 해 12월 5일 서천문화원 주최로 열린 ‘서천의 성씨 뿌리찾기 학술세미나’에서 ‘誰知(수지)’라는 어구가 들어간 시들을 일일이 제시했다. 목은 이색의 한시 ‘희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日日吟詩口出聲(날마다 시 읊어 입으로 소리 내지만)
誰知有念在蒼生(내 뜻은 창생구제에 있음을 그 누가 알리오)

문장 구조로 보아 “누가 알리요”라고 의문을 제시하고 목적어를 뒤에 둔 형식이다.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김연갑 씨는 그의 저서 <아리랑 시원설 연구>(2006년 간행)에서 목은 선생의 시에 나오는 ‘誰知(수지)’를 단서로 정선아리랑과의 연관성을 추적하여 ‘아리랑’의 기원을 목은 선생의 한시라고 주장한다.
학계에서는 아리랑의 시원은 고려말 정선에 은거하던 칠현으로 보는 견해가 보편적이다. 정선에 은거하던 고려 말의 칠현이 비통한 심정을 ‘누가 내 마음을 알리오’라고 애소한 말 ‘알리’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알리’가 3음절화해 ‘아라리’로, 다시 ‘아리랑’으로 변형됐다는 주장이다.

강원도 정선은 저항의 땅이다. 고려가 패망하자 충절을 지키려고 이곳에 숨어 살던 일곱 명의 고려 유신들, 칠현의 고사도 그러하지만 동학 교주 최시형이 숨어 들어와 교세를 떨쳤던 동학 혁명의 제2본산이기도 하다.

아리랑의 가사를 보면 “아리랑 아리랑 알아리요”로 시작하여 다음에 작사자가 읊고 있는 내용(사설)을 자유자재로 붙이면 된다.

현재 전해지는 목은의 시는 5천여 수에 달한다. 이를 번역한 문집이 11권 분량으로 나와 있다. 김연갑씨는 이색의 문집에서 정선아리랑의 정서와 유사한 시가 전체의 7% 정도로 집중적으로 나온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색의 한시 일부를 번역한 내용이 정선아리랑 가사에 그대로 등장하는 것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는 또 이색이 정선지역을 네 차례 방문했다는 기록 및 당시 칠현의 한 사람인 전오륜의 어머니가 이색 부인의 언니였음도 알아냈다. 따라서 당시 정선이라는 지역, 또 칠현과도 밀접한 관계였던 이색의 시가 당시 칠현들 사이에서 읊어지다가 정선 지역민들에게 퍼지면서 아리랑으로 전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문헌서원에서는 중고제판소리연구원 박성환 대표가 진행하는 중고제판소리학교가 열리고 있다. 영화 ‘서편제’(원작소설 이청준의 ‘소리의 빛’)에서는 눈이 먼 주인공 소화는 한을 품고 살아간다. 그러나 한을 극복해내고 마침내 ‘득음’의 경지에 이른다.

흔히 한민족을 일러 한이 많은 민족이라고 말하고 ‘아리랑’은 이러한 한이 배어있는 소리라고 말하고 있다.

민족의 한을 담은 소리인 아리랑의 기원이 목은 선생의 한시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가운데 중고제판소리학교가 문헌서원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서원 한 켠에 목은 선생의 묘가 있다. 지하의 목은 선생이 이를 알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뉴스서천(http://www.newss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