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권도자료 ▒

跆拳道 vs 국기태권도’ 휘호

천하한량 2014. 11. 25. 19:08

跆拳道 vs 국기태권도’ 휘호

한자와 한글의 차이이고 한글의 태권도 앞에 ‘국기’라는 수식어가 추가된 것이 다름이다. 이 둘의 휘호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이 내린 휘호(揮毫·붓을 휘둘러 글씨를 쓴 것)로 알려져 있다. 하나는 이승만의 글씨이고 다른 하나는 박정희의 글씨라는 것이다.


이들 휘호가 정말 대통령이 내린 것이냐에 관심이 쏠려있다. 그 중 뒤의 것, 즉 ‘국기태권도’ 휘호에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듯하다. 왜냐면 국기원에서 펴낸 『국기태권도교본』(1987)에 게재돼 있었다. 1987판 33쪽에 < ‘국기태권도’ 1973. 3. 20 대통령 박정희 낙관> 휘호 아래 ‘국기원 전경’ 사진과 함께 수록돼 있다.

한자로 쓴 휘호, 즉 <跆拳道 雩南(우남)>은 최홍희의 주장에 따르면 이승만으로부터 ‘태권도’ 재가 기념으로 받았다고 한다. 그 증거로 그가 최초의 저작인 『跆拳道敎本』(1969. 10) 첫 쪽에 이 휘호를 게재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일어난다.


문제의 그 책이 간행되자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당국에서 모조리 압수, 수거해 갔다는 것이다. 그러니 책의 존재를 말살당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이에 대한 사유는 지금껏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책에는 ‘휘호’와 ‘우남’형(품새)이 게재돼 있었다.


최홍희로서는 너무도 억울한 수모를 당한 셈이다. 그는 다시 만 1년이 지난 1960년 10월 재판을 찍어낸다. 이번에는 첫 쪽에 한자로 쓴 <태권도정신 예의 염치 인내 극기 백절불굴 창헌 최홍희> 저자휘호와 ‘우남’형을 빼고 대신 ‘충장’형을 싣는다.

이승만 휘호가 사실로 내려졌다면, 왜? 휘호가 수록된 그 교본이 당국으로부터 모조리 압수당했을까. 이 사실 하나로써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跆拳道’ 휘호 내림과 명칭 재가는 결코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권도 역사는 ‘허위 vs 사실’ 간의 휘호에서부터 명칭제정에 이르는 에피소드는 하나의 소설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 ‘국기태권도’ 1973. 3. 20 대통령 박정희 낙관> 휘호는 모두 5장을 썼다고 한다. 현재 진품의 소재는 둘 정도가 밝혀져 있다. 하나는 김영작(고단자)이 기증해 태권도진흥재단에 보관 중이고 다른 하나는 김호재(국기원 전 학감)가 이남석 관장(창무관 설립자)으로부터 물려받아 사무실 벽 액자에 있다. 국기원에도 진본이 없다고 한다.


박 대통형의 휘호 복사는 당시 인기리에 팔려나갔다. 너도 나도 태권도 관장들은 복사본을 액자에 넣어 도장 정면 벽에 걸어두고 관원들에게 태권도에 대한 애정을 갖도록 고취했다. 그뿐이 아니라 해외 진출 시 사범들은 몇 장씩 구입해 가지는 성의를 보였다. 태권도가 국기라는 것에 뿌듯한 자긍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승만 ·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은 자연사적 삶을 누리지 못하고 환경적 요인에 의해 수난을 당하게 된다. 이승만은 4·19 혁명에 의해 하야(下野) 후 하와이로 망명길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박정희는 수하(手下) 김재규로부터 총살을 당한다. 두 분은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국기태권도’ 휘호는 1987년 간행된 『국기태권도교본』(국기원)에는 수록돼 있으나, 18년만에 펴낸 야심작인 교본에는 ‘국기’는 정녕 삭제되고 『태권도교본』(2006 재판 1쇄)이름으로 간행된다. 이 교본은 오자, 오류투성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책을 펴낸 오성출판사는 간기면(刊記面)마저 진실을 감추고 있다. 간기면은 책의 호적 등본과 같은 것으로 영어로는 imprint page 또는 copyright page 라고 한다.


跆拳道 휘호의 진실, 태권도교본 간기면에서부터 태권도 명칭제정에 얽힌 왜곡, 태권도역사관 등 석연찮은 진실외적인 현상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제 태권도는 더 이상 국기(國技)가 아니다. 참여정부 때인 2005년 9월 국기원원장 엄운규는 스스로 교본에서 삭제해 버렸다. 이제 태권도는 한국을 대표하는 10가지 문화이미지(Images of Korean Culture) 중 하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