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는 낯선 공간에서 수없이 많은 건축물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중에 어떤 건축물들은 바쁜 발길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독특한 외관, 색다른 재료에만 현혹된 것은 아니다. 하나의 건축이 담고 있는 그 나라의 역사, 문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찍었다.'
에디터 박우철 기자
▶세트가 그리울 때 라스베이거스로 가라
유 년기 때 '세트삼촌'이라 부르던 아버지 친구 분을 날마다 기다리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세트삼촌의 손에는 특별한 날에만 겨우 구경할 수 있었던 과자선물세트가 들려 있었다. 세트는 어린 꼬마에게 로망, 그 자체였다. 라스베이거스는 과자세트 같은 도시다. 라스베이거스에는 카이로의 피라미드가 있고, 로마의 트레비 분수가 떡하니 놓여 있고 파리의 에펠탑도 있다. 전세계 여행자들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상징적인 건축물이 집결해 있는 세트선물을 받는 셈이다. 실제 에펠탑의 딱 절반 크기인 라스베이거스 패리스.
양보라 기자
패리스 호텔
패 리스 호텔Paris Las Vegas Hotel & Casino은 공사비만 총 8억달러가 든 라스베이거스의 대표적인 초특급호텔로 1999년 개장했다. 라스베이거스에 기반을 둔 건축사무소, Bergman Walls & Associates가 디자인에 참여하고 건축을 맡았다. 호텔 정문 앞에 위치한 50층 높이의 에펠탑Eiffel Tower이 대표적인 상징물. 파리 오페라하우스, 루브르 박물관의 디자인을 따 호텔 곳곳을 장식했다.
▶스완타워라는 애칭의 스완벨
서 호주의 주도인 퍼스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스완강Swan river변에 가면 하늘로 높게 치솟은 건축물을 볼 수 있다. 2000년에 완공된 타워는 개장한 그 순간부터, 퍼스 하면 떠오르는 건축물이 됐다. 사람들은 그 건축물을 스완타워Swan tower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스완강을 등지고 스완벨을 보면 마치 양 날개를 다소곳이 모은 백조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또 건축물 위 전망대에 오르면 스완강의 모습이 훤히 내려다보이니 그렇게 불릴 만하다. 그러나 진짜 이름은 스완벨Swan Bell이다. 뾰족한 탑 모양의 이 건축물에는 총 18개의 종Bell이 매달려 있다. 특히 매일 정오가 되면 이 타워의 이름이 왜 스완벨인지 여실히 알게 된다. 18개의 종들이 일제히 울리면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박우철 기자
서호주 퍼스의 스완벨
스 완벨은 2000년 12월10일 개장한 종탑이다. 영국 런던의 세인트 마틴인필드성당에서 가지고 온 12개의 종과 세계 최고 수준의 종을 생산하는 화이트채플 벨 공장Whitechapel Bell Foundry의 종 6개가 설치돼 있다. 현지 건축가인 하메스 세어리Hames Sharley는 18개의 종소리가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최적화 해 설계했다. 다만 강한 종소리가 도시 쪽으로 전달되지 않도록 상층부에 비늘형태의 유리 외벽을 차용했다.
▶풍경을 발견하는 건축
유 럽엔 수많은 미술관이 있지만,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기억되는 미술관은 독일의 인젤 홈브로이히Insel Hombroich 미술관이 유일할 것이다. 건물만 떼어놓고 보면 그저 텅 빈 공간에 불과하다. 높은 천장과 하얀 벽 그리고 커다란 창이 하나 있을 뿐 전시품도, 큐레이터도 없다. 그러나 그 창으로 바깥의 풍경을 바라볼 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 '자연과 예술의 결합'. 건축가의 야심이 텅 빈 전시관 안으로 자연을 불러들였다. 작품명은 '풍경을 발견하는 건축'이 어떨까.
전은경 기자
홈브로이히 미술관
홈 브로이히 미술관은 사실 미술관이라기보다는 문화와 자연을 접목한 '체험공간'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린다. 울창한 숲과 잘 가꾸어진 초원을 걸으며 그 길목에 위치한 11개 미술관을 만나게 된다. 독일 북부 시골마을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가이드북에도 소개되어 있지 않아 찾아가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닌데도 매년 전세계인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미술관이라는 중압감을 버리고 가벼운 산책을 즐기듯 거닐어 보길.
▶숨막히는 기억의 공간
박 물관의 본래적 기능이란 '기억'에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 야드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한 민족의 단일한 기억과 경험을 숨막힐 정도로 또렷하게 재현해 놓은 공간이다. 설령 유대인이 아닐지라도 영화나 책을 통해 홀로코스트를 간접 경험한 사람들마저도 이 박물관 안에서는 서슬퍼런 기억에 몸서리가 날 정도다. 아우슈비츠 가스 고문실을 연상케 하는 박물관의 내부를 빠져나가면 예루살렘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고통스런 지난날과 힘써 지켜내야 할 오늘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연결해낸 고도의 설계 방식에서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최승표 기자
야드바셈 홀로코스트박물관Yad Vashem Holocaust History Museum
2 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희생된 600만명의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박물관으로, 이스라엘 예루살렘 야드바셈에 있다. 원래는 1953년 최초로 건립됐으며, 1990년 중반부터 10년간의 확장공사를 통해 2005년 재개관했다. '야드 바셈'은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현대로 통하는 시간의 관문
프 랑스 파리의 신도시 라데팡스, 이곳을 상징하는 건축물은 신개선문이다. 개선문을 현대적 감각으로 본땄는데 하나의 예술작품과도 같아서 오래도록 뇌리에 남기 마련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도 그런 건축물을 만났다. '유럽의 관문Puerta de Europa' 또는 건축을 맡은 기업 이름에서 따와 '키오 타워스KIO Towers'로도 불리는 쌍둥이 빌딩이다. 단순한 쌍둥이가 아니고 서로를 향해 15도 각도로 기울어진 희귀한 쌍둥이 건물이다. 마드리드 최고의 번화가 카스테야나 대로Paseo de la Castellana의 끝 혹은 초입에 우뚝 솟아 있는데 이곳 역시 마드리드의 신시가지다. 마치 서로를 갈구하듯 몸을 기울인 그 모습은 절절한 느낌마저 풍긴다. 여기에 가미된 현대 건축술을 생각하면,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일 뿐만 아니라 마드리드의 현대로 통하는 시간의 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김선주 기자
마드리드 프에르타 데 유로파(유럽의 관문)
뉴 욕의 AT&T타워 설계자이자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으로 유명한 건축가 필립 존슨Phillip c. Johnson과 존 버지John Burgee가 설계했다. 높이 115m, 27층짜리 건물 2동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기울어져 있다. 한 건물에는 REALIA라는 부동산 회사가 입주해 있고, 다른 건물에는 마드리드의 상징인 곰이 그려져 있다.
▶스노헤타를 느끼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보고 그 이름을 떠올렸는지 말이다. '혹시 노르웨의 스…뭐라는 건축회사가 지었냐'고 물었을 때 가이드는 터무니없다는 표정을 지었었다. 그러나 가이드는 틀렸다. 세상의 모든 지혜가 모여 있는 도서관에서 답을 찾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노르웨이의 세계적인 건축회사 스노헤타Snøhetta가 맞았다. 700년 만에 추진된 노르웨이 최대의 건축 프로젝트였다는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를 설계한 회사였다. 몇해 전 그 현장에서 느꼈던 감동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 새겨져 있던 것일까. 이집트의 도서관이라는 전혀 다른 문화, 다른 생김새, 다른 용도의 건축물에서, 건축에 전혀 문외한인 내가 동일한 심상을 느낀 것이다. 재료와 형태가 아니라 고유한 문법과 감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건축. 그것이 스노헤타표 건축이었다.
천소현 기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전 설로만 전해지던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기념하기 위해 떠오르는 태양을 형상화한 초현대식 건축물을 신축했다. 유네스코의 후원과 국제기금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였기에 외벽에 전세계의 모든 활자를 새겨 넣는 것으로 의미를 강조했으며 11층의 건물이지만 지하까지 자연채광이 닿는다. 2002년 10월16일 완공.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
금 방 바다에서 떠오른 듯, 완만한 경사면이 건물의 옥상까지 연결되는 오페라 하우스는 오슬로의 한적한 항구에 자리잡고 있다. 미니멀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언제든 일광욕이나 피크닉,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공원 기능을 만족시켜 오페라하우스가 '사치'라는 비판을 단번에 불식시키고 가장 '인간적인' 오페라하우스로 불리고 있다. 2008년 4월12일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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