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소식 ▒

'한국식 접대' 국제적 망신‥규모만 한해 8조원

천하한량 2012. 11. 14. 03:31

[뉴스데스크]

◀ANC▶

얼마 전 우리 한국의 대학 측이 일본인 교수들을 초청해 노래방에서 접대를 했다가 큰 망신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접대 사실을 알게 된 일본의 한 학부형이 "여성 도우미로 접대한 건 모독이다"라는 내용의 항의성 메일을 한국 측에 보내 온 겁니다.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뿌리깊이 박혀있는 우리의 비뚤어진 접대 관행, 오늘 뉴스플러스에서는 그 실태와 대안을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그 실태를 허유신 기자가 현장취재했습니다.

◀VCR▶

서울 강남의 한 고급 요정.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중년 남성 일색인 손님들이 몰려듭니다.

이런 업소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독립된 객실마다 한복 차림의 여성 종업원들이 손님 옆에 붙어 앉아 술 시중을 드는 가운데, 전통 국악과 가무 공연, 가요 밴드 연주까지 한 자리에서 이어집니다.

술이 거나하게 오르면 벌어지는 일상적 광경.

드나드는 손님의 면면을 보면, 자기돈으로 비싼 술값을 부담할 것 같진 않습니다.

◀SYN▶ 여성종업원

(정치인도 많이 오나요?)

"가끔 오시고요 유명인도 오시고...건설이랑 무역 회사가 많고..."

술자리에 여성종업원들이 동석하는 업소는 등록업체를 기준으로 해도 전국에 3만여 곳, 치킨집 수보다 많습니다.

접대가 없이는 이 많은 유흥업소가 존재할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SYN▶ 유흥주점 여성종업원

"그냥 다 접대로 보이고요. 무슨 계약 건이나 프로젝트 건 아니면 어디 회사...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조건 접대는 술집에 여자가 있어야 된다..."

술자리에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

업소종업원들과의 골프 여행을 주선하는 등 '은밀한 접대'도 이뤄집니다.

◀SYN▶ 유흥업소 여성종업원

"제주도같은 경우는 1박으로 여행갔을 때 (수고비로) 2백만원...어디 가자, 뭐 하자 해서 다 갔으면 아마 전국 골프장 다 돌았을 거고요. 세계일주 한 3번 했을 거예요."

주중엔 식사와 술 접대, 주말엔 골프로 이어집니다.

◀SYN▶ A기업 홍보관계자

"홍보하는 사람들 같은 경우는 월화수목금금금 이런 얘기를 하는데...주말에 가족하고 지낼 시간은 없는 거죠."

관행을 넘어 강탈수준의 일까지 벌어집니다.

◀SYN▶ B기업 홍보관계자

"골프 치시는데 골프용품점에 들어가셔서 물건을 그냥 가지고 나오셔서 저희가 저쪽에서 결제를 할 거다라고 하시면서 물건을 가져가시는..."

하지만 홍보담당자들은 살아남으려면 왠만한 일은 '봐도 못 본 척'해야한다고 푸념합니다.

◀SYN▶ B기업 홍보관계자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접하고 하면 친분관계가 쌓이니까 얘기하기도 좀 편해지고 부탁 한 번이라도 더 들어줄 수 있고..."

◀ 권순표 기자 ▶

현대자동차가 작년에 전 세계에 차량 400만대를 넘게 팔아서 남긴 영업이익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8조원 남짓됩니다.

그렇다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접대비로 쓰인 돈은 얼마일까요?

자그만치 8조원이 넘습니다.

이 엄청난 돈이 밥 사고, 술 사고, 골프 접대하는데 쓰인 겁니다.

최근 몇 년간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지만 접대비는 5년만에 거의 두배로 뛰었습니다.

음성적인 소비성 접대 문화, 좀 바꿔볼 여지는 없을까요?

양효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VCR▶

한국식 접대문화에 염증을 느껴 변화를 시도하는 기업도 늘고 있습니다.

국내 한 중견 기업은 1년에 두 차례씩 협력업체 임직원들을 공연이나 명사강연에 초대합니다.

◀SYN▶ 허수경 이사/스페이스톡

"술자리 접대에서는 회사에 대한 이미지보다는 개개인과의 관계유지라든지 이런 측면에서만 작용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회사로 봤을 때는 이런 문화행사들이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런 극소수의 기업이 한국의 접대문화를 바꾸기엔 역부족.

20여 년간 한국에서 활동해온 한 글로벌기업 외국인 경영자는 아직도 적응이 힘들다며, 기술과 품질이 아닌 접대로 승부하려는 풍토는 결국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고 단언합니다.

이는 외국기업의 국내진출을 꺼리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SYN▶ 브래드 벅월터/ADT캡스 한국지사장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 사업문화를 이해 못하고 한 2년, 3년 만에 제가 보기에는 90% 이상 사람들이 적응 못해서 나갑니다."

떠나지 않은 외국인들중 일부는 오히려 우리의 음성적 접대문화에 물들게 됩니다.

유흥업소에선 외국인들이 주요고객이 된 지 오래.

◀INT▶ 유흥주점 여성종업원

"(한국 접대문화를) 외국인들이 좋아하고 신기해 할 수 밖에 없어요. 영어하는 아가씨들 많으니까... 중국어도 오래 살다온 애들이 있으니까. 일본은 진짜 많고..."

한 여성 도우미는 유창한 일어실력을 뽑냅니다.

◀INT▶ 여성종업원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000입니다. 모시게 되어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진국에서 우리식의 접대문화가 없는 것이 개개인의 도덕성 때문이 아니란 얘깁니다.

결국 문제는 제도.

하지만 음성적 접대문화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2004년, 건당 50만원 이상 접대비를 지출하면 접대받은 사람의 인적사항 등을 기재하게 하는 '접대비 실명제'를 시행했지만 '기업들의 영업 활동이 위축된다' 이유 등으로 5년 만에 이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 권순표 기자 ▶

하지만 음성적 접대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접대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는 더 큰 틀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사회 접대문화의 근원이 결국 힘센 '갑'이, 힘이 약한 '을'의 생존권을 맘내키는데로 쥐락펴락할 수 있게 방치하는 냉혹한 경제현실에 있기 때문입니다.

MBC뉴스 권순표입니다.

(허유신 기자 yushin@m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