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 200주년을 맞은 1989년, 미테랑 대통령은 자신의 이름을 딴 '미테랑 그랑 프로제'를 진행했다.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라 데팡스의 신개선문, 바스티유 오페라하우스 건립과 기차역을 개조한 오르세미술관까지, 현대 파리의 랜드마크가 모두 이때 완성됐다. 이는 프랑스 파리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대표 문화도시로 거듭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이라크 출신 건축가 자하 하디드 설계로 2013년 7월 완공되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외관만근사할 뿐 콘텐츠가 없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혈세 70억원을 들여 조성한 광화문광장 돌길은 지은 지 2년만인 지난해 여름 장맛비를 맞은 뒤 돌 틈사이가 벌어져버렸다. 조영호기자 youcho@hk.co.kr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디자인 서울'도 미테랑 그랑 프로제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관련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디자인 서울'은 오 전 시장이 2006년 취임과 동시에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설치하면서 '창의적인 디자인을 통한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자는 취지'로 발족됐다. 거리의 간판을 통일하고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하는 것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설과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에 이르는 광범위한 사업이었다.
'디자인 서울'은 서울시에 '도시 디자인'의 개념을 끌어 들였다는 점에서 평가 받을 만하다. 동시에 기업 이미지를 통합하는 CI(Corporate Identity)처럼 서울 색채와 서울 서체 개발·보급을 통해 서울시의 고유 이미지 제고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소기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전시행정에 그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체계적인 준비 없이 도시를 치장하고 보여주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이경훈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는 "입체적인 3차원 공간의 도시 문제를 평면적인 2차원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하다"면서 "거리는 깨끗해졌을지 몰라도, 시민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국내 최초의 근대 체육 시설인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4,300억원의 세금을 쏟은 'DDP'는 정작 그 안에 담을 콘텐츠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5,900억원이 투자된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박원순 시장 출범과 함께 표류하는 실정이고, 광장의 의미를 살리지 못한 광화문광장은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는 비난을 받았다. 서울시 신청사 신관 역시 서울시의 역사와 시민들의 의견이 고려되지 않은 디자인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건축전문지 <공간지>의 한은주 편집장은, 최근의 디자인 흐름은 문화인류학적 관점의 에스노그라피(ethnography·문화기술지)적 리서치가 중요하다고 했다. 사회적 분위기, 라이프스타일, 사용자 경험 등을 조사·연구해 제품을 개발하는 방식이다. 디자인은 일상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한 편집장은 이런 맥락에서 "서울시민의 추억과 경험, 서울시의 문화와 역사가 고려되지 않은 도시 디자인이 어떻게 서울시민의 삶을 이해하고 변화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서울시 수장이 바뀌면서 '디자인 서울'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박원순 시장은 취임 후 6개월간 정책에 대한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정책회'를 가졌다. 이를 바탕으로 제안된 내용은 현재 각 부서에서 검토 중이다. '디자인 서울'을 개선·유지하기로 한 박원순 호의 '디자인 서울' 청사진은 10월경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내년 7월 준공되는 DDP를 총괄하는 서울시 디자인정책과 송정재 과장은 DDP에서는 크게 두 가지가 바뀐다고 했다. "일방적인 디자인 전시가 아닌,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는 성격의 전시로 전환되며, 주변에 있는 패션타운 지원 프로그램이 더해진다."
앞으로 '디자인 서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전문가들에게 묻자 "도시 디자인은 개개의 건축물이 아닌, 도시적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도시에 색을 입히는 시각 디자인뿐 아니라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고려하는 총체적인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도시 디자인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건표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장(전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은 "환경을 위한 디자인, 생활 속에 스며드는 디자인을 통해 시민들이 디자인에 동참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이를 통해 "공공 디자인을 즐기는 사람들의 수준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훈 교수는 현재 서울시와 시민은 도시적 삶과 전원적 삶을 모두 원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도시 디자인에 앞서 도시와 친환경에 대한 재정의를 먼저 제안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도시는 미국 뉴욕이다. 뉴욕시민의 72%가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탄소 배출을 줄인다. 우리는 도시에 녹지공간을 만드는 것이 친환경이라고 생각하지만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친환경"이라고 역설했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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