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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세계 불황 때 부동산 거품 꺼지자 은행 부실로 휘청

천하한량 2012. 6. 11. 01:25

은행권 부실로 휘청거려온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4위 경제대국 스페인이 9일(현지시간) 결국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했다. 그간 구제금융을 받은 유로존 국가로는 가장 경제규모가 크다.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을 합친 규모(6%)의 2배로, 유로존 전체 경제의 12%를 차지한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정부는 그간 자국 은행의 자본을 확충하는 데 외부 도움은 필요 없다며 구제금융 가능성을 일축해왔다. 스페인의 배짱에 속이 탄 유럽연합과 미국 등은 스페인발 유로존 위기를 우려하며 구제금융 수용을 압박해왔다. 일각에서는 스페인이 한 달여간 줄다리기로 구제금융에서 유리한 조건을 끌어낸 것으로 평가한다. 이전 구제금융 국가들과 달리 긴축재정 조건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호이 총리는 유럽연합의 최고 1000억유로(약 143조원)에 달하는 스페인 지원이 '구제금융'이 아닌 '금융지원'이라고 10일 자평했다.

스 페인 위기의 큰 뿌리는 9년간 계속된 부동산 불패신화에 있다. 유로화 도입으로 은행금리가 14%에서 4%대로 급락하고, 1998년 중도우파 정부가 부동산 개발촉진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부동산 거품이 시작됐다. 북유럽 은퇴자들이 발렌시아 등 볕 좋은 지중해 해안도시 주택을 매입하면서 투자열기는 고조됐다. 바르셀로나 에사데 경제학교의 로버트 토나벨 교수는 "지중해 해안 아파트 한 채를 12만유로에 구입하면 다음날 18만유로, 한 달 뒤에는 30만유로로 뛰어올랐다"고 가디언 기고문에서 지적했다. 집값은 1998~2006년에만 150% 폭등했다.

부 동산 가격 오름세가 이어지자 은행들은 부동산 관련 대출과 투자로 흥청거렸다. 정치권은 감독 소홀로 '카하'(caja)로 불리는 저축은행들이 과도한 부동산 관련 대출로 파산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스페인 싱크탱크 대안재단의 정치학자 훌리오 엠비드는 "많은 저축은행 고위직에 금융계 경력이 없는 지방 정치인들이 임명됐기 때문"이라고 CNN에 9일 말했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는 부동산 가격상승으로 세수가 늘자 감독을 게을리했다. 국회의원들까지 주택투기에 나서면서 최고 20채를 보유한 이도 나왔다.

거품은 2007년부터 꺼지기 시작해 이듬해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세계 경제불황을 기점으로 바닥을 드러냈다. 네 명 중 한 명이 실업자인 경기침체 속에 주택담보대출 대출금을 갚지 못해 은행에 집을 차압당하는 이들이 늘었다. 집값은 최고점에서 30~50% 하락했다. 부동산 광풍 탓에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40.5%(2011년 기준)에 달했다. 스페인 전역의 미분양 아파트는 100만여채, 중단된 주택개발은 수백건에 이른다.

은 행들은 토지가격 하락과 악성 채권 증가로 부실화 직격탄을 맞았다. 전체 자산규모가 3조유로 규모인 스페인 은행의 정확한 부실규모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번 구제금융 신청의사에서 드러났듯이 스페인 정부의 재원만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하다. 한때 스페인 금융계는 보수적인 경영원칙으로 유동성 위기에 가장 튼튼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부동산 광풍에 은행까지 휩쓸리면서 결국 국가경제 약화로 이어졌다. 앞서 지난달 말 스페인 정부는 4위 은행 방키아를 국유화하고 스페인 역사상 최대 규모인 190억유로(약 28조원)의 구제금융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스페인은 이번 구제금융으로 일단 은행 유동성 위기는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이번 구제금융 규모가 "스페인의 은행시스템이 필요로 하는 수요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 지만 금융위기를 우려한 예금주들이 돈을 계속 빼내는 '조용한 뱅크런'과 이에 따른 금융위기 재연을 막기 위해서는 스페인 정부가 대중의 신뢰를 얻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빚어진 스페인 지방정부들의 채무위기도 스페인 재정위기의 또 다른 뇌관이다. 경제위기를 뿌리 뽑으려면 청년층 2명 중 1명이 실업상태에 놓인 경제는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