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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은행부실`수렁`…`스펙시트`가 `그렉시트`보다 먼저?

천하한량 2012. 6. 1. 02:19

4월 한달간 은행서 46조원 대탈출
국채금리도`디폴트 전조` 7% 눈앞
그리스 유럽서 수출보증 중단당해

◆ 유럽위기 확산 ◆스페인 경제가 큰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이제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정도가 아니라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받거나 유로존을 탈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스페인은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실제로 스페인 경제는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상태다.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자금이 대탈출에 나서면서 은행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 본격화된 상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달 30일 "4월 한 달간 스페인 은행권에서 315억유로(46조원)의 뭉칫돈이 순유출돼 전체 은행 잔액이 1조6250억유로로 쪼그라들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예금 인출 규모는 한층 더 확대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은행 예금뿐만 아니다. 스페인 국채에 대한 매수세가 실종되면서 국채값이 폭락(국채금리는 급등)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스페인 1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한때 6.7%까지 치솟은 뒤 6.656%에 마감했다. 지난 11월 25일 기록한 사상 최고치(6.699%)와 엇비슷한 수준에 다다른 상태다. 이 같은 추세라면 디폴트(채무상환 불능) 전조로 여겨지는 7%대 돌파는 시간문제로 여겨진다.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모두 국채금리가 7%를 넘긴 뒤 국가파산을 막기 위해 국제기구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바 있다.

스페인과 독일 국채(10년물) 가격차(스프레드)도 유로화 도입 이후 사상 최대 수준인 5.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스페인이 시장에서 돈을 빌리려면 독일보다 이자를 5.5%포인트나 더줘야 한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재정이 어려운 스페인 정부 입장에서 감당하기 힘든 금융비용이다.

이처럼 국채금리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국채 청산거래소가 스페인 국채거래에 부과하는 담보금과 증거금을 올릴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달 31일 전했다. 국채값 폭락으로 일부 시장참가자들이 결제 펑크를 낼 결제위험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포르투갈과 아일랜드도 구제금융을 받기 전 채권 거래 때 부과되는 마진콜이 인상된 바 있다.

스페인 상황이 꼬일 대로 꼬인 것은 긴축정책으로 경제가 더블딥 침체에 빠진 데다 은행권 부실이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률은 15년래 최고치인 24%를 넘어서 4명 중 1명은 실직 상태다. 청년실업률은 40%를 넘어섰다. 올 1분기까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해 더블딥 침체에 빠진 상태다. 올해 전체적으로 1.7% 마이너스 성장할 전망이다.

설상가상으로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은행권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미 스페인 3위 은행 방키아가 부동산 담보대출 부실로 국유화 결정이 내려졌다.

문제는 공적자금 투입이 방키아에 그치지 않고 다른 은행권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로 스페인 은행의 부실자산 규모가 1800억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스페인 위기탈출의 출구가 보이지 않자 스페인 유로존 탈퇴설(스펙시트ㆍSpexit=Spain+Exit)이 힘을 얻고 있다.

런던 소재 컨설팅업체 스트래티지 이코노믹스의 매튜 린 CEO는 지난달 30일 마켓워치에 낸 기명 기고를 통해 '스페인이 그리스보다 먼저 유로에서 탈퇴할 6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일단 스페인 경제 규모가 너무 커 EU가 나서 구제하기 힘들다(too big to rescue)는 점이다. 그리스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2300억유로 수준이지만 스페인은 7784억유로에 달한다. 스페인이 망가지면 EU도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결국 스페인이 자구책을 만들어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둘째, 스페인이 긴축에 대해 진절머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긴축 발표만 하고 실제 긴축은 손도 대지 못했는데도 벌써부터 긴축 반대 운동이 심각한 상황이다. 허리띠를 더 졸라매기 어렵다.

셋째, 경쟁력 있는 수출산업기반을 갖추고 있는 등 실물경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는 관광산업 외 실제로 상품을 만들어 수출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 하지만 스페인은 GDP 대비 수출 비중이 26%에 달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넷째, 정치적으로 EU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 변방인 그리스는 유로존에 잔류해야만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스페인은 굳이 정치적으로 유로존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 경제적으로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게 나은지 아니면 탈퇴하는 게 나은지 결정하면 된다.

다섯째, 스페인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남미시장 등 다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큰 시장이 있기 때문에 유로존 탈퇴 부담이 그만큼 줄어든다.

여섯째, 유로존 탈퇴에 대해 이미 상당히 많은 논의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스페인 경제에 문제를 일으킨 근본적 원인이 유로화 단일통화 시스템이라는 진단이 적지 않은 만큼 옛 스페인 화폐인 페세타로 복귀하면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많다.

스펙시트가 그렉시트보다 먼저 올 것이라는 전망 속에 세계 양대 신용보험사가 그리스 수출 보증을 전면 중단했다. 그리스 경제에 또 다른 충격이다.

프랑스 신용보험사인 율러 에르메스와 코파스가 그리스 수출에 대한 수출보증을 중단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지난달 31일 전했다. 세계 양대 보험사가 유럽국가의 수출 보증을 동시에 중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봉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