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금융불안 뇌관' 다중채무자] '대출 덫' 주범은
소득증명 없이 대출 가능
실직이나 생활비 부족 때
카드 여러 개로 결제 반복
신용 하락하고 이자율 폭등
결국 사전채무조정자 전락
"카드 돌려막기가 나쁘다고 알아도 막상 결제일이 닥치면 결국 하게 되더라고요." 신용회복위원회 사전채무조정(프리워크아웃) 신청자 가운데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카드로 대출을 시작했고, 빚이 눈덩이처럼 불었다고 털어놨다.
김정은(가명·40)씨는 3개월이라는 짧은 실직기간을 두 번 거치는 동안 생활비에 쓰려고 받은 카드대출로 빚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김씨가 카드 현금서비스를 받기 시작한 때는 지난해 초 라이브 카페 가수를 그만두고 3개월 동안 수입이 없을 때였다. 3월에 텔레마케터로 취직할 때까지 3개월 동안 한달 간격으로 4장의 카드로 360만원의 현금서비스를 받았다. 일을 시작하면 쉽게 갚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200만원이 채 안 되는 월급에서 빚을 갚을 여유가 좀처럼 생기지 않아 카드 돌려막기는 계속 됐다. 김씨는 11월에 저축은행에서 25%의 높은 이자율로 400만원을 대출받아 카드빚을 갚았다.
하지만 올해 1월 회사를 그만두고 보험설계사가 될 때까지 다시 3개월 동안 수입이 없는 상태가 반복되자 350만원을 더 빌렸고 카드빚은 1200만원으로 불어났다. 현금서비스 한도는 바닥났고, 150만원과 200만원을 오가는 월급으로 빚을 갚을 길은 요원했다. 김씨를 상담했던 신복위의 이창인 수석심사역은 "보험설계사는 월급의 30%가 영업비용으로 들어가서, 1000만원을 넘어가면 소득으로 갚기는 어렵다"며 김씨를 사전채무조정자로 등록시켰다.
신용카드의 문제점 중 하나는 카드 보유자가 쉽게 소비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보험설계사 송미연(가명·38)씨는 21살에 회사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마이너스 통장과 신용카드를 쓰기 시작했다. 송씨는 "'질러' 정신으로 살았다"며 "카드로 계산하니까 물건값을 따져보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송씨는 남편이 대기업에 다니면서 연봉 5000만원을 받지만, 7600만원을 빚진 과중채무자다. 송씨는 2년 전부터 카드 4개로 돌려막기를 시작했다. 소비는 무계획적으로 해도 카드 결제일은 월초와 중간, 월말로 나눠 대금 납부가 밀리지 않도록 '계획적'으로 돌렸다. 송씨는 카드 만기일의 압박 때문에 대부업체에서 빌려 아직 갚지 못한 1000만원이 더 있다. 송씨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란 7살짜리 아이가 "엄마 돈 없어? 그럼 카드 내"라고 말할 때 섬뜩함을 느낀다.
카드가 대출의 시발점이 되는 이유는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이기도 하다. 카드 대금을 갚을 돈이 없는 상황에서 카드를 사용하면 사실상 대출을 한 것이지만, 다른 대출처럼 상환 능력을 파악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이렇게 '빌린' 돈을 현금서비스나 리볼빙(결제대금의 일부만 갚고 나머지는 다음달로 연기하는 것)으로 돌려막기를 하면 다음 결제일에 이자가 포함된 원금에 다시 이자가 붙는 복리 효과가 발생한다. 게다가 카드대출을 여러 차례 받으면 신용등급이 점점 내려가 가장 낮게는 7%대에서 시작한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리볼빙 이자율이 나중에는 30%에 육박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카드 소지자가 적용받는 이자율이 이처럼 높지만, 대출받는 당사자들은 자신이 어느 정도의 이자율을 적용받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전채무조정을 신청한 정수호(가명·34)씨는 리볼빙을 하면서 "카드사 상담원이 최소결제서비스라는 말만 하고 이자가 얼마나 되는지 이야기를 안 하니까 이자율을 몰랐다"며 "나중에 알고보니 이자율이 28.5%나 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출을 어느 정도씩 갚아나가도 이렇게 이자율이 높으니 갚아야 할 돈이 줄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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