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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공짜 아파트`까지 등장…

천하한량 2011. 8. 13. 00:24

스페인 마드리드 시내에서 40분 거리에 위치한 '세세냐'.

'미래 스페인의 맨해튼'으로 불리던 세세냐는 스페인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신도시 개발 지역이다.

공사 현장을 오고 가는 트럭들로 한창 붐벼야 될 이 곳은 지금 유령도시로 변했다. 흉물스런 철골 구조물만이 홀로 세세냐를 지키고 있다. 한 때 2만여가구가 들어서고 금융기관과 첨단IT기업들이 들어올 예정이었지만 7000가구 건설을 끝낸 후 공사가 중단됐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부동산 시장이 붕괴하자 건설사들은 모두 이곳을 떠났다.

지방 건설사는 더 심각하다. 스페인 중부 지방 소도시 카스테욘에서는 '공짜아파트'도 등장했다. 미분양을 털어내기 위한 건설사의 눈물겨운 제살깎아 먹기 전략이다.이 집에서 살고 싶은 이유를 미리 개설된 페이스북에 올리면 심사를 통해 10명에게 1년간 무료 임대를 해준다. 그 후 유료로 연장을 신청해도 되고 8년이상 임대하면 집값의 60%를 깎아준다.

부동산 경기는 스페인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저축은행들의 무분별한 대출로 부동산 경기를 인위적으로 부양한 것이 결국 스페인 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했다. '카하'(CAJA)로 불리는 저축은행들은 대형 은행들이 엄격한 대출 기준을 적용하는 틈을 타 적극적으로 대출에 나선 결과 2008년 이후 민간 부채 부실의 진원지가 됐다. 한 때 유럽지역 신규 주택의 30%가 스페인에 집중될 정도로 호황을 맞기도 했지만 현재 스페인 집값은 2007년 고점 대비 거의 반토막 난 상태다. 군소 저축은행들은 버블 붕괴의 직격탄을 맞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그러나 부동산시장 붕괴의 원인 제공자인 스페인 저축은행들은 위기를 나몰라라 하고 있다. 더군다나 정부도 저축은행에 손대기가 쉽지 않다. 협동조합의 형태로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저축은행을 건드리면 다음 선거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이 고용하는 인원 자체가 전체 은행산업의 50%를 넘는다. 저축은행 감독기관도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이다. 그러다보니 공무원과 자연스럽게 유착관계가 발생해 경영투명성도 부족하다.

스페인 정부는 2009년 6월에 은행구조조정기금(FROB)으로 990억 유로를 조성해 앞으로 저축은행의 3분의 1 이상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5월 카톨릭계 저축은행 카하수르를 5억유로를 투입해 전격적으로 국유화했다. 저축은행의 압력에 정부가 굴복한 것이다.

부동산발(發) 저축은행 부실화로 시작된 스페인 경제 위기는 포퓰리즘 정책 남발로 국가 재정이 악화되는 '이중고'를 겪으면서 극도로 악화됐다.

불과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스페인은 연평균 3%가 넘는 경제성장을 하면서 다른 저성장 유럽 국가들의 부러움을 샀다.'유럽의 우등생' 으로 통하던 스페인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총선 직전 발생한 알카에다의 마드리드 열차 폭탄테러 사건으로 191명이 목숨을 잃자 이라크전에 반대하던 사회당이 어부지리로 정권을 잡았다.

사회당 정부는 정권을 잡자마자 정부 조직 규모를 늘리는 데 주력했다. 새롭게 정권을 잡은 야당이 그렇듯 정권 유지를 위해 '세(勢) 불리기'에 나선 것이다. 북유럽식 복지 시스템을 흉내내며 국민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 정책도 내놨다. 그러나 국민 부담분이 높은 스웨덴 모델과는 달리 고복지-저부담의 정책을 계속 추진한 결과 정부 재정은 계속 악화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스페인 정부는 출산수당 제도를 폐지하고 연금지급액을 동결시켰다. 공무원 임금을 5% 깎고 올해부터 4년동안 500억 유로 규모의 복지 예산을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청년 실업률이 무려 43%(전체 실업률은 21%)나 되는 최악의 고용 상황에서 복지없이 국민들이 마땅히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복지 수당이 깎여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들은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분노한 사람들(The indignant)'이라 불리는 20만명의 시위대는 지난 6월 정치인들과 은행가들의 부패로 금융위기가 초래됐고 이로 인해 긴축정책이 도입됐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우리는 정치인이나 은행가들의 소유물이 아니다"면서 "긴축 조치와 예산 삭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외쳤다.

경제 전망마저 밝지 않다. 스페인은행은 최근 올해 2분기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성장률(추정치)이 1분기 대비 0.2% 증가하는데 그쳤다고 밝혔다. 스페인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1.3%로 잡았으나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0.7%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집권 사회당은 조기 총선을 결정했다. 내년 열릴 예정이었던 총선은 올해 11월 20일 앞당겨 치러진다. 지난 5월 지방선거 참패로 긴축정책 실시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레임덕도 매우 심화됐다. 국제신용평가사들도 매서운 눈으로 스페인을 지켜보고 있다. 무디스는 최근 스페인 정부가 긴축정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면서 국가 신용등급 하향 경고를 내렸다.

스페인 위기가 현실화 되면 그 파장은 다른 유로존 국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2010년 기준으로 스페인은 유로존(유로화 사용국) 국내총생산(GDP) 의 11.7%를 차지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4번째 규모다. 현재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그리스(2.6%)와 아일랜드(1.8%), 포르투갈(1.8%) 등 세 나라의 경제규모를 다 합쳐봐야 겨우 스페인의 절반을 넘긴다. 전세계가 스페인의 긴축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다.

[정동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