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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 흥미없고 상실감 느끼는 당신은 우울증?

천하한량 2011. 5. 28. 04:35

 

한국인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일본 20명, 미국 10명보다 많은 한국인의 자살은 암, 뇌졸중, 심장병, 당뇨병에 이어 사망 원인 5위에 올라 있다. 자살률은 10대가 10만명당 4명, 20대 14명, 30대 17명, 60대 47명, 70대 74명, 80세 이상 113명으로 나이가 많을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자살 이유를 보면 우울증이 가장 많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 3명 중 1명꼴로 자주 죽음이나 자살을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자살로 결론난 고(故) 송지선 아나운서도 "가슴이 쩡 깨질 것 같은 우울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을 담은 글을 남겼다. 지난해에는 초전도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L교수가 "큰 논문을 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힘이 든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특히 과도한 사생활 노출, 악성 댓글, 불안한 미래 등으로 우울증을 앓는 연예인들은 잊을 만하면 목숨을 던지곤 한다.

최근 들어 의료계는 우울증을 고혈압, 당뇨, 관절염, 요통 등과 같은 만성질환 장애보다 더 큰 질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시형 박사(정신과 전문의)는 "현대인의 우울증은 뇌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신경을 약화시키는 잘못된 생활습관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삶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울증을 예방하는 지름길은 세로토닌이 왕성하게 분비되는 아침에 햇살을 받으며 자주 걷고 낮에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밤에는 일찍 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뇌가 맑아야 우울증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우울증 발병률 남성 10%, 여성 20~25% = 국내 우울증 환자는 2005년 360만명에서 최근 500만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은 팍팍하고 고달픈 삶 때문에 나타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혼, 실직을 비롯해 불편한 인간관계, 알코올 중독, 중증질환 등이 있을 때 우울증이 잘 발생한다. 미국과 유럽 사람들은 우울증이 유전적이거나 뇌의 신경전달물질 결핍과 같은 생물학적인 이유가 많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활고와 상실감, 사랑의 결핍 등이 주된 원인이다.

우울증을 앓게 되면 먼저 즐겁고 흥미를 끄는 일이 없어지고 이유 없이 슬퍼져서 울곤 한다. 식욕과 체중에도 변화가 있어 살이 찌거나 빠진다. 희망이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불면증 또는 수면과다로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두통과 소화불량 증세가 나타난다.

우울증은 생물학적 혹은 유전적, 환경적, 심리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다. 우울증 발병률은 여성의 경우 평균 10~25%, 남성은 5~12%로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매우 취약하다.

유전학적으로 보면 가족 중 우울증 환자가 있는 경우 2~10배 정도 발병 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거나 성장과정에서 부모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도 우울증이 쉽게 촉발된다. 남에게 의존적이고 열등감이 강한 사람, 지나치게 양심적인 사람에게도 우울증이 많이 발생한다.

◆ 여성이 우울증 걸리면 자살 가능성 높아 = 여성은 남성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두 배 정도 높다.

조숙행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과 교수는 "우울증 발생 빈도는 성별에 따라 달라 9~13세쯤 차이를 보이기 시작해 사춘기 이후부터 중년기까지 여성이 남성에 비해 높은 발생 빈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여성들이 월경 전, 임신 중, 출산 후, 폐경기 등과 같은 특정한 시기 동안의 생식호르몬 변화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자녀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면서 오는 스트레스도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산후 우울증은 출산 후 4주에서 6주 사이에 급격한 호르몬 변화, 출산과 관련된 스트레스, 양육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많이 발생한다. 우울한 기분, 심한 불안감, 불면, 과도한 체중 변화, 의욕 저하, 집중력 저하 또는 자책감을 경험한다. 심하면 자살이나 죽음에 대한 생각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기능 저하를 초래한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과 교수는 "산후 우울증은 우울증을 앓는 주부뿐만 아니라 종일 함께 생활하는 아이 성장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 시기에는 우울증에 대한 가족 구성원의 교육과 환자에 대한 가족의 관심과 지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40대 여성의 우울증은 성장한 자녀와 멀어지고 과중한 회사 일로 바쁜 남편에게서 소외된 상실감 때문에 발병한다. 이 때문에 중년여성의 우울증을 '빈 둥지 증후군'이라고 한다. 전업주부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중년여성의 우울증은 부부가 함께 영화를 보거나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

폐경이 나타나는 50대 전후의 여성들은 갱년기 우울증을 앓을 수 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홍조증상, 식은땀, 불면증이 나타나면서 작은 일에도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감정조절 능력이 떨어져 우울증이 심해진다.

◆ 뇌 신경전달물질 고장이 우울증 불러 =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뇌는 특정 신경전달물질의 과소 또는 과다 현상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유희범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우울증은 기분을 조절하는 대뇌 속의 신경전달물질(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 등)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뇌는 용량이 1200~1500㎖이고 약 1000억개의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신경세포는 수천, 수만 개의 다른 신경세포들과 신호와 정보를 주고받는다. 뇌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아드레날린을 포함해 40여 종에 달한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기본은 쾌감과 불쾌감인데 쾌감은 도파민, 불쾌감은 노르아드레날린의 작용으로 일어난다. 세로토닌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들 세 가지가 고루 섞이면 '이상적인 심리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잠이 덜깨 몽롱하지만 정신이 맑아지고 활력이 넘치는 것은 세로토닌 때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활동하면 세로토닌이 활성화돼 두뇌 회전이 빨라지고 낮 시간대의 업무 효율도 크게 오른다. 밤이 되면 우리 뇌는 세로토닌 대신에 멜라토닌을 분비한다. 밤에 숙면을 취하려면 멜라토닌 호르몬이 분비돼야 한다. 다시 아침이 되면 멜라토닌은 분비를 멈추고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의 분비는 햇빛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멜라토닌이 분비되지 않는 시간대까지 늦잠을 자면 실제로는 반쯤 깨어 있어 수면의 질이 떨어진다. 또 잠자리에서 일어나도 계속 잠에 취해 있어 몸이 무겁고 머리도 맑지 않다. 이런 점에서 우울증을 앓지 않으려면 낮에는 햇볕을 자주 쬐고 밤에는 일찍 푹 자야 한다.

◆ 우울증 치료는 어떻게 할까 = 우리는 일반적으로 신체적인 질병에 관심을 갖지만 정신적, 심리적인 증상에 대해 무관심하다. 환자 자신도 우울증을 마음의 병이라고 치부하고 방치하는 경향이 많다.

전문의들은 "몸은 마음에 영향을 주고 마음은 몸에 영향을 준다"며 "몸과 마음을 별개로 보지 말고 적극 치료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의학 박사 양회정 맑은머리 맑은몸 한의원 원장은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적당히 햇볕을 쬐라"고 조언한다.

양 원장은 "운동은 몸의 순환을 좋게 하고 햇볕을 쬐면 몸에 비타민D가 생성돼 뼈조직이 튼튼해지고 낮에 억제된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밤에 왕성하게 분비돼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설명했다.

평소 우울한 기분이 들면 가족이나 친구, 동료 등 많은 사람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가능하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도록 하고, 과도한 음주나 흡연은 삼가야 한다.

김대진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교수는 "솔직한 감정표현과 스트레스 해소, 즐거운 생각, 단체활동 참여가 바람직하다"며 "우울증과 알코올의존증을 동시에 갖고 있을 경우 자살률은 60~70%로 올라간다"고 경고했다.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되면 병원을 찾아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치료는 약물 처방이 원칙이다.

유희범 교수는 "대뇌에서 활동하는 신경전달물질 기능이 정상화되도록 도와주는 약물 투입을 통해 완치가 가능하다"며 "특히 최근에 시판되고 있는 항우울제들은 부작용이나 중독성이 거의 없어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MK 상담의로 활동하고 있는 성북아이정신과의원 김미경 전문의는 "우울증은 무엇보다도 초기 증상 때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약물치료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병원을 찾아 정신과 전문의와 충분히 대화하고 믿음을 갖고 치료에 적극 임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