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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문(賜祭文)

천하한량 2010. 1. 7. 01:36

사제문(賜祭文)

 

 

 

()한 특진보국숭록대부(特進輔國崇祿大夫) 한산백(韓山伯) 이색(李穡)에게 교시(敎示)하다.

 


왕은 이르노라.
군 도(君道)는 반드시 노성(老成)한 이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고, 인정은 친구보다 더 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고금(古今)이 마찬가지 이치이거늘, 어찌 끝내 혹시라도 변함이 있겠는가. 오직 경()은 기품(氣稟)이 맑고 밝으며 경술(經術)이 해박하고 고아하여, 진신(縉紳)들의 사표(師表)가 되고 국가(國家)의 시귀(蓍龜)가 되었다. 내가 지난날에 경과 같은 반열이 되어 종유(從遊)를 오래 함으로써 성의(誠意)가 서로 신실하였고, 절차탁마의 도움으로 인해 은의(恩義)가 더욱 두터워졌으므로, 휴척(休戚)을 우리 서로 같이하여 평탄하거나 험난함으로 인하여 서로 변치 않기를 기약했었다. 그러다가 중간에 많은 변고를 만나서 서로 헤어지게 되었는데, 일찍이 서로 헤어진 지가 그 얼마나 되었던가. 그래도 그리워하는 마음이 항상 간절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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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국(開國)함에 미쳐서는 정사를 함께 하고자 하여, 이에 작읍(爵邑)을 봉해 주어 조반(朝班)의 수장으로 삼았으니, 친구의 정 때문만이 아니라, 오히려 노성한 이의 덕을 힘입어 가만히 앉아서 인심을 복종시켜 아름다운 풍속을 만들게 하고, 또한 그 훌륭한 계책을 듣고자 함이었다. 경이 이달 초하룻날에 와서 여강(驪江)에 가겠다고 청하였으나, 나는 마침 일을 보느라 친히 만나 보지 못했는데, 잠시 동안 서로 헤어지는 것일 뿐이요, 의당 얼마 안 가서 다시 오리라고 생각했더니, 부음(訃音)이 갑자기 들려올 줄을 어찌 기약했으랴. 지난날의 일들을 추억해 보니, 더욱 내 마음이 느꺼워진다. 하늘이 원로(元老)를 기어코 남겨 두지 않아서 나를 도와줄 이가 없게 되었으니, 나랏일에 몸 상한 슬픔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겠는가. 영령(英靈)이 만일 있다면 어찌 다 알지 못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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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신(內臣) 중직대부(中直大夫) 첨내시부사(僉內侍府事) 김원룡(金原龍)에게 명하여 술을 내려 보내서 빈차(殯次)에 치전(致奠)하게 하노라. , 수명(壽命)의 길고 짧은 것은 진실로 천명(天命)에 달렸음을 의심하지 않거니와, 애영(哀榮)에 관한 예는 의당 방경(邦經)에 따라서 갖추 거행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교시하노니, 잘 알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