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권도자료 ▒

경쟁체제 돌입한 태권도 시범단, 서바이벌 시작

천하한량 2009. 12. 24. 06:02

바 야흐로 세계는 시장경쟁체제다. 남보다 앞서지 못하고 특출 나지 못하면 도태되는 약육강식의 세계인 것이다. 이는 국가, 기업, 개인에 이르기까지 피할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이다. 피 말리는 경쟁 사회가 가져온 부작용도 적지 않지만, 정당한 경쟁으로 상호 발전하는 순기능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 30여년간 전 세계에 태권도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해낸 국기원 시범단. 대한민국 국가대표 시범단은 곧 국기원 시범단이라는 공식은 지금껏 굳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런 국기원 시범단의 독주체제에 제동이 걸렸다.

올해 대한태권도협회(KTA)가 국가대표 시범공연단을 창단하며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또 세계태권도연맹도 1차 시범단원모집을 끝내고, 출범을 앞두고 있다. 게다가 코리안 타이거즈와 같은 상설시범단의 성장은 무서울 정도다.

태권도 시범단이 본격적인 경쟁체제에 들어간 것이다. 이에 ‘무카스미디어’는 각 시범단의 특징과 현재 상황을 조명해 보고, 앞으로 태권도 시범단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본다.

◆ 태권도 시범의 ‘정통’ 국기원 시범단


국기원 태권도 시범단의 경희궁 시범 모습

1974년 창단한 국기원 시범단은 지금까지 태권도 시범의 정통성을 고수한다. 이는 초대 김영작 단장을 시작으로 2대 이규형 단장, 3대 이춘우 단장을 거쳐 현재 남승현 감독체제에 와서도 변함없이 지켜져 오고 있는 국기원 시범단의 자부심이다.

남승현 감독은 “최근 태권도 시범이 화려함만으로 포장하려는 경향이 많다”며 “하지만 국기원 시범단은 무도성을 갖춘 정통 시범을 보인다”고 한결 같이 밝혀왔다. 실제로 국기원 시범단의 시범은 화려함보다는 무게감 있는 시범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국기원 시범단에 대해 몇 십년째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에 대해 남승현 감독은 “국기원 시범단이 말하는 정통성은 과거 선배들이 했던 시범만을 고수한다는 뜻이 아니다”며 “지금까지 태권도 동작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많은 변화를 주었다. 한 예로 우리는 음악에 맞춰 창작품새를 한다. 이는 에어로빅 같은 태권체조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국기원 시범단의 정통성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태권도는 태권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국기원 시범단 고참 단원 중 한명은 “한국 도장의 태권도는 학교체육을 따라 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시범도 학생들의 입맛에 맞게 변하고 있다”며 “그것이 태권도 시범의 전부인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기에 정통 시범은 꼭 지켜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태권도 시범단이 많아지는 것에 형님격인 국기원 시범단은 겉으론 환영한다. 하지만 속마음은 편치 못하다. 4년째 국기원 시범단 활동을 하고 있는 홍희정(27) 단원은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하는 것은 좋은데, 과도한 경쟁으로 태권도 시범이 변질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최근 러시아에 시범을 보이러 갔는데, 러시아 태권도 시범단이 쌍절곤을 돌리며 시범을 보였다. 그들은 한국 시범단의 시범을 보고 따라 한 것이라고 했다”고 말하며 안타까워 했다.


◆ ‘태권도 공연문화를 만든다’, KTA 시범공연단


지난 5일 꿈나무대회. 대한태권도협회 시범공연단 시범 모습

지난해까지 해외 태권도 시범이 있을 때 마다 국기원에 시범단을 요청해야 했던 대한태권도협회(KTA)가 올해 시범단 창단을 공식 선언했다. 국기원과의 마찰을 무릅쓰고 독자적인 태권도 시범단을 만든 것이다. 더욱이 KTA는 시범공연단이라는 명칭을 통해 국기원 시범단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지난 5일 꿈나무 태권도대회에서 KTA 시범공연단 창단식이 있었다. 이날 KTA 시범공연단은 국내 첫 시범을 선보였다.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신선한 시도”라는 칭찬과 “가벼운 시범”이라는 혹평으로 나눠졌다. 이날 시범단은 흰 도복을 탈피해 칼라 도복을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또 흥겨운 음악에 맞춰 태권체조를 보여줬다.

KTA 시범공연단 이춘우 단장은 “기존에 보았던 시범과는 다르기 때문에 처음엔 찬반논란이 있을 것”이라며 “창단식 때 보인 시범은 아쉬움점이 많다. 바로 전날 중국에서 시범을 보이고 들어와 준비할 여유도 없이 곧바로 진행한 시범이라 실수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새로운 시도는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현재 단원들 중 상당수가 정통 시범에 익숙해 KTA가 추구하는 시범 동작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KTA가 기존 시범에 변화를 준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은 정통 태권도 시범이다”고 강조했다.

KTA 시범공연단 단원들은 새로운 태권도 시범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가 불태우고 있다. 국기원 시범단에서 KTA로 둥지를 옮긴 최정환 단원은 “창단식 때 보인 시범은 단원들 스스로도 불만족하고 있다”며 “하지만 ‘첫술에 배부르냐’는 말처럼 아직 초반이기 때문에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우리 시범단은 ‘신화(태권도 소재 퍼포먼스 공연)’와 같은 태권도 공연에 맞는 시범 연습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그동안 몸에 밴 절도 있는 동작에서 벗어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동작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글로벌 시범단 WTF... 독자 노선 코리안 타이거즈


제3회 코리아오픈 대회. 코리안 타이거즈 시범단의 시범 모습

지난 2일 세계태권도연맹(WTF) 시범단 1차합격자 명단이 발표됐다. WTF는 이후 2차 심사를 통해 5월 말경 최종 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 동안 해외에서 시범단 파견요청이 들어오면 국기원이나 대학 시범단에 의존했던 WTF가 드디어 시범단을 창단하는 것이다. 이변이 없는 한 WTF 시범단은 올해 출범한다.

WTF 시범단은 ‘글로벌’을 강조한다. WTF 한 관계자는 “외국에서 WTF 시범단 파견요청이 오면 우리 시범단과 현지 시범단을 함께 구성해 시범을 보일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그 나라 시범단의 실력을 높인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고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상설 시범단의 활약도 눈에 띤다. 특히 코리안 타이거즈 시범단의 경우 출범 초기 태권도를 망친다는 비판을 이겨내고 현재는 국, 내외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인정받고 있다. 지금의 타이거즈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쏟아지는 원정 시범 러브콜에 몸살을 앓을 정도다.

타이거즈 안학선 단장은 “타이거즈가 처음 시범에 나섰을 때 태권도 원로분들에게 많은 질타은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타 시범단들이 우리를 모델로 연구를 할 정도이다. 타이거즈는 앞으로도 대중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시범을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거즈만의 특징에 대해 안창범 코치는 “태권도를 표현하는 부분 만큼은 가장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싶다”며 “시범을 보는 사람들이 태권도의 맛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타이거즈는 7월부터 8월까지 미국 전역에 걸쳐 시범 투어를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태권도 제도권 시범단과 상설 시범단들이 경쟁하는 것은 상호 발전을 위해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지나친 서바이벌식 경쟁으로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시범단을 오랜 시간 지도했던 한 태권도학과 교수는 “외국 사람들은 태극기 달린 도복을 입고 시범에 나서면 모두 한국 국가대표 시범단으로 안다”며 “만약 우후죽순 생겨난 시범단들이 통일성 없이 ‘마이웨이’식 시범을 보이면 태권도에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태권도 전문가들은 선의의 경쟁은 좋지만 경쟁이 지나치면 태권도 시범이 이상하게 변질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이를 막기 위해서는 각 시범단들이 각자의 노선을 걷는 것이 아닌 상호 협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무카스미디어 기획특집 태권도 시범단을 진단한다 3편에서는 ‘명예만 먹고 살라고? 시범단의 열악한 처우(가제)’에 대해 조명합니다]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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