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진 갸초
1935년 7월 6일 ~는 지금의 14대 달라이 라마이다.
달라이 라마는 1935년 7월 6일 농부 집안에서 라모 돈드럽(티베트어: Lha-mo Don-'grub)으로 태어났다. 두 살에 달라이 라마의 현신으로 발견되어 제춘 잠펠 가왕 놉상 예셰 텐진 갸초라는 법명을 받고 1940년 14대 달라이 라마로 공식 취임했다.
1959년 인도로 망명하여 티베트 망명 정부를 세웠다.
달라이 라마(영어: Dalai Lama,ta-la’i bla-ma)
1391년부터 전세된 티베트 불교 겔룩파(황모파)에 속하는 환생하는 라마(스승, 큰스님) 이다.
지금의 달라이 라마는 텐진 갸초이다. 티베트의 다른 모든 불교 종파는 달라이 라마를 전 티베트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다. 판첸 라마는 종교적으로 달라이라마에 다음 가는 지위에 있다. 겔룩파의 공식적인 지도자는 Ganden Tripa(겔룩파의 창시자 총카파가 세운 첫 번째 사원 간덴사의 주지)이다. 달라이 라마는 겔룩파가 티베트를 장악한 이래(17세기 중엽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1959년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하기까지) 티베트의 통치자이자 국가 원수였다.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는 몽골의 알탄 칸이 3대 달라이 라마 소남 갸초에게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그 이래로 그 법통을 잇는 모든 화신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몽골어 ‘다라이’는 ‘바다’를 뜻하며, 티베트어 ‘라마’는 산스크리트어의 ‘구루’에 해당하는 말로 ‘영적인 스승’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가 자비의 보살인 관세음보살(티베트어: Chenrezig)의 화신이라고 믿으며, 달라이 라마가 죽은 뒤에 차기의 달라이 라마가 다시 환생하였다고 믿는다. 하지만 지금의 달라이 라마는 자신이 깨달은 자라는 것을 천명하지 않고 있다.
지금의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탄압을 피해 망명하였다. 그 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불교의 가르침을 알리면서 또한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정부에서는 티베트 민족주의의 상징이자 그 자신이 민족주의자인 14대 달라이라마에 대한 티베트인들의 존경행위를 박해하고 있다. 티베트 불교는 대승불교에 속하며, 밀교에 속한다
대한민국과의 관계
달라이라마의 방한은 2000년 달라이라마방한준비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본격적으로 추진돼 왔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달라이라마의 비자를 발급하지 않아 한국방문을 취소시킨 바 있으며 당시 중국정부의 압력으로 달라이라마의 방문을 무산시킨 한국정부는 언론, 불교계, 이웃 종교기구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2004년 11월 인도를 방문해 달라이라마와 40분 가량 면담한 선천사 주지 진옥 스님은 내년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해 방한해 달라고 요청에 달라이라마는 '한국정부가 방한을 허용한다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라도 방한하겠다. 그동안 못들어간 나라가 한국밖에 없다.’며 간곡한 방한의 뜻을 밝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 자료인용
*********************
1642년 이후 티베트 원수가 된 역대의 전생활불(轉生活佛)에 대한 속칭이다. 초대 원수를 달라이라마 5세라 하고, 1세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 칭호를 붙인다. 이 칭호는 제3세로 꼽을 수 있는 소남 �p초(1543∼1588)가 몽골 토메토의 알탄 칸의 초청을 받고 1578년 칭하이[靑海] 지방에 갔을 때 받은 것이다.
그 이름의 뒷부분 '�p초'에 해당하는 몽골어가 '달라이'로서 '바다'를, '라마'는 티베트어로 '스승'을 뜻한다. 제3세는 원래 레푼 대승원(大僧院)의 관주(貫主)인 활불이었는데, 선대인 겐둔 �p초(1475?∼1542)가 겔루크파의 정치적 지도자로서 대립하는 카르마파(특히 紅帽派)와 다투었기 때문에 같은 행동이 기대되어, 스스로 몽골 부족 사이를 유세하며 신자를 얻어야 했다.
그가 죽은 뒤 새로운 활불로 알탄 칸의 증손 윤텐 �p초(1589∼1616)가 선출되자, 외국의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노골적인 위협정책이라 하여 카르마파의 증오심이 확대, 군사적인 대결만을 남겼다.
제5세 가완 로잔 �p초(1617∼1682) 때에는 몽골정권에 큰 변동이 생겨서 겔루크파는 흔들리고, 소남 라프텐을 중심으로한 정치세력은 새로 카르무크와 동맹하여, 결국 구시 칸의 군대를 티베트에 끌어들여 신샤크파 정권을 전복, 사실상 티베트의 정치 ·종교의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리하여 1642년 달라이라마 정권이 수립된 후, 데푼 활불은 티베트 국왕의 신분과 간덴 좌수(座首) 위에 올라앉는 황모파 법왕의 지위를 얻었다. 제5세의 제자이자 섭정이던 상게 �p초(1653∼1705)는 달라이라마의 국가 원수로서의 정당성을 《문수리근본의궤경(文殊利根本儀軌經)》의 예언을 인용 증언하며, 티베트는 원래 관음보살의 교화의 땅으로 정해져 있고, 달라이라마는 관음보살의 화신이라고 하면서, 그 제1세를 총카파의 제자 겐둔 두파(1391∼1472)까지 거슬러올라간다는 주장도 추가 확인하였다.
연애시인인 제6세 찬얀 �p초(1683∼1706)가 청(淸)나라의 간섭으로 폐위되어 베이징[北京]으로 연행되려 할 때, 일반 승려와 민중은 이에 저항하여 달라이라마에 대한 강렬한 신앙을 나타내 보였다. 1750년 이후 청의 지배 아래서는 달라이라마의 선출방법이 흐트러져, 제9세부터 12세까지는 어렸기 때문에 권력투쟁의 희생이 되었다.
제10세는 난을 피해서 정권을 잡고 독립과 근대화를 꾀했으나 실패하였다. 제14세는 중국군의 진주로 한때는 새 체제에 복종하였으나, 1959년 측근과 함께 인도로 탈출, 망명정권을 수립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 유익한자료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등신불을 과학적으로 규명, 그 비밀이 밝혀진다 (0) | 2008.04.05 |
---|---|
남화선사에 봉안된 혜능대사 등신불 (0) | 2008.04.05 |
티벳의 역사 연대표 (0) | 2008.03.19 |
'삼가 고인의.명복'에서 '삼가'의 뜻? (0) | 2008.03.11 |
한민족의 뿌리 (0) | 2008.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