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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훈 '대학 가서 미팅 할래, 공장 가서 미싱 할래'

천하한량 2008. 3. 20. 00:27
서울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이 기말고사 감독을 하러 3학년 교실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걸려 있는 급훈(級訓)이 '엄마 친구의 딸을 이기자'였다. 다른 반은 어떤가 했더니 2학년 어느 교실 급훈은 '대학 가서 미팅 할래, 공장 가서 미싱 할래'다. 그저 장난으로 걸어놓은 게 아니라 담임·부장·교감·교장 결재를 받은 정식 급훈들이었다. 그는 더불어 살기를 가르쳐야 할 학교에 이 무슨 섬뜩한 급훈이냐고 어이없어했다.

▶요즘 고교 급훈 중엔 대학입시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지하철 2호선을 타자.' 지하철 2호선에 있는 주요 대학들에 들어가도록 열심히 공부하라는 얘기다. 여고엔 '30분 더 공부하면 내 남편 직업이 바뀐다' '열심히 공부하면 신랑 얼굴이 바뀐다'도 있다. 담임선생님 사진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고 써놓기도 한다. 선생님이 지켜보고 있으니 졸지 말라는 뜻이다.
▶어제 조선일보 독자면에 장난 같은 급훈들을 개탄하는 교육평론가 기고가 실렸다. 그는 'YES 대학으로 가자'는 급훈을 예로 들었다. 신촌에 있는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에 들어가자는 뜻이라고 한다. 그는 '급훈이 사소한 것 같지만 교육적 덕목을 규정하는 중요한 철학적 문제'라며 '제대로 된 교사라면 이런 급훈이 교실에 걸리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러다 보니 '아름다운 급훈' 공모(公募)도 생겨났다. 작년 전남교육청의 '참신한 급훈 경진대회'에 응모한 406개 급훈 가운데 최우수작은 '자신감으로 말하고 열정으로 실천하자'(순천고)였다. 입상작 중엔 '1%를 나누면 공동체가 보인다'(해남고)가 돋보인다. 적은 것이라도 나누고 베풀어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가꿔보자는 이런 급훈이야말로 정말 아름다운 급훈이다.

▶진심과 선의가 담긴 급훈은 실제로 아이들 생각과 생활을 바꿔놓기도 한다. 전주 서천초등학교 6학년 6반 급훈은 '사랑을 실천하는 6반'이다. 아이들은 지난해 폐지를 모아 팔고 용돈도 보탠 돈 9만6070원을 올해 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이웃사랑 성금으로 냈다. 33명 모두가 '사랑 실천'이라는 급훈 아래 폐지를 모으면서 사랑을 전하는 천사가 된 것이다. 급훈은 1년 간 담임선생님이 학급을 이끄는 철학이자, 아이들이 쳐다보고 가는 마음의 지표다. 너무 딱딱하고 근엄해서도 곤란하겠지만, 장난스럽게 그저 '좋은 대학 가려면 공부 열심히 하라'는 식이어서야 무슨 교훈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