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놈이 창피하대, 내가 영어 못해서 … [중앙일보]
미국
중국인 가족의 씁쓸한 아메리칸 드림
중국인 가족의 씁쓸한 아메리칸 드림
소설은 미국 유학생 부부인 난우와 핑핑이 천안문 사태 직후 미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3년간 헤어져 있던 아들을 미국으로 데려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난우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학원을 그만두고 야간 경비원 등 갖가지 험한 일을 하게 된다. 뭐든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저축을 위해 극도의 내핍 생활을 하는 부부의 유일한 희망은 아들 타오타오의 교육이다. 난우에게는 결혼하기 전에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고 결혼 후에도 그 여자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을 부인 핑핑도 잘 알고 있어서 부부 사이는 자주 삐걱거린다. 하지만 둘 다 중국에서 어렵게 데려온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 자신들의 삶을 희생한다. 보스톤 지역에서 뉴욕으로 가서 브루클린에서 조그만 레스토랑을 열고 다시 아틀란타 교외의 쇼핑 몰 한구석에 중국식당을 가지게 되는 과정은 아메리칸 드림이 어떻게 실현되어 가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두꺼운 장편소설은 어떤 면에서 중국인 이민자들의 정착 교본처럼 읽힐 수도 있을 정도로 생활의 세목들을 자상하게 적어놓고 있다. 미숙한 영어 때문에 생기는 일들은 처음에는 코믹하지만 나중에는 가슴을 짓누른다. 그것이 결국 중국문화와 미국문화의 비교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난우가 보기에 미국인들은 근면하지만 돈의 노예이자 교양 없는 속물들이다. 하지만 중국에선 날마다 누군가와 싸워야 살아남을 수 있고 뇌물 없이는 되는 일이 없는데다 정부는 국민들을 어린아이 취급하면서 복종만 강요한다. 난우는 자신의 아들이 그런 폭력적 환경을 견디며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여기다 불쑥 커버린 아들 타오타오는 부모들의 어설픈 영어를 창피해한다. 십대 아이들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언행일 수도 있는 일이 이민자 부모들에겐 날카로운 아픔이 된다. 자신들의 삶을 희생해가면서 키운 아들이 미국인처럼 행동하면서 부모와 거리를 두려고 할 때, 부부는 위기에 도달한다. 부부 싸움 끝에 핑핑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전화를 집어드는데 누르는 번호가 911인 것은 우스우면서도 슬픈 장면이다. 하진의 전작들이 미국 독자들이 원하는 중국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자신이 미국에 와서 경험한 것을 적은 자전에 가깝다. 미국 숭배와 영어 배우기 열풍에 대한 적절한 비판으로 읽힐 수도 있는 이 소설은 미국 이민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흥미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영준<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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