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Oriental painting)의 작품들을 논할때
'블랙홀'같은 같은 작품이 두 작품 있습니다
남종화(南宗畵)의 경우,
원나라의 황공망이 그린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가 그 중 하나이고
풍속화 경우에는
장택단의 바로 이 그림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가 그 주인공입니다
두 작품이 워낚 출중하고 탁월한 작품인지라
뒤에 나오는 작품들은 모두가 이 작품들의 '배리에이션'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
후배 작가들의 팔자이자 운명이었지만
그 틀을 뛰어넘을 수 있는 동기를 유발시켜주는 하나의 자극제가 되기도 하여
명말 청초의 팔대선인이라던가 석도, 서위나 최근에는 이가염같은
위대한 화가들이 나올 수 있는 토대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장택단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에서 '청명'은 24절기중에 청멸절을 의미하기도 하고
태평성세(太平盛世)를 의미한다고도 합니다
요즘은 그림속에 보이는 나무들이 청명절이 있는 봄의 나무들이 아니고
가을 느낌이 난다고 하면서
청명방(淸明坊)이라는 동네 이름에서 따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상하'(上河)는 당시 송나라의 수도였던 개봉(開封)을 끼고 흐르는 변하를 말하며
양자강 유역과 황하 유역을 연결시켜주던 대운하의 북쪽지점을 말합니다
이 그림은 가로 5미터 28센티, 세로 25센티의 긴 그림으로
송나라 때의 장택단(張擇端 11세기 말 -12세기 초)이라는 사람이 그린 것입니다
장택단은 당시 송나라 서민 생활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통해
북송 수도 변경의 평화로운 시기의 번화한 모습을 그립니다
그림에는 다양한 표정을 지닌 700여명의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나오며
100여 채의 집, 34개의 점포, 48개의 마차, 배, 가마,
나귀, 말, 소, 낙타 등의 84마리의 가축, 190그루의 나무,
100여자의 낙관과 6개의 도장 등이 찍혀 있습니다
그림은 크게 초반, 중반, 후반 등등으로 나눠 살펴볼 수가 있는데
초반부는 개봉시 교외의 풍경입니다
중간부분에는 일명 무지개다리(虹橋)라고 불리우는 다리가 나오며
백성들의 삶의 현장들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후반부분에서는 점포들이 늘어서 있는 성(城)의 중심을 나타냈습니다
아래의 사진들은 지금 남아있는 원본 사진과
그 원본을 바탕으로 해서
컴퓨터로 처음 그렸을 당시의 색깔을 넣어본 그림의 사진입니다.
이 '청명상하도'를 제일 처음에 소장한 사람은
아티스트 황제인 송휘종이었습니다.
장택단이라는 화가가 머리속에 온통 '아트'만 가득했던 황제를 만났다는 것이
어떻게보면 큰 행운이었던거죠
그렇지만 백성들은 이 아티스트 황제 때문에 별의 별 고생을 다하게 되는데
'수호지'를 보면 당시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휘종은 이 그림에 '청명상하도'라는 제목을 써넣습니다.
이후 이 그림은 송황실에서 소장하고 있던
다른 보물들과 함께 금나라에 빼앗겨 버리고
그후 여기저기 떠돌게 됩니다
명나라때에는 유명한 간신이었던 엄숭(嚴嵩)의 수중에 들어가고
엄숭이 탄핵을 받아 가산이 몰수될때 명황실로 압수되게 됩니다.
명에 이은 청나라황실에서는 이 그림을 자금성의 영춘각에 걸어두었는데
1860년의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침입과
1900년의 의화단 난리때도 연합군에게 빼았기지 않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습니다
만약 그때 빼았겼더라면
지금 이 그림을 접할려면 고개지의 '여사잠도'처럼
런던의 대영박물관으로 가야 할 뻔 했습니다.
마지막 황제 부의는 만주로 갈때
수많은 문화재를 같이 가지고 갔는데
이때 이 그림도 같이 따라가게 됩니다
그뒤로 1946년 신중국 성립이후에 인민해방군이 접수하여
북경의 고궁박물관으로 보내져서 지금 자리에 위치하게 됩니다
오랜 동안의 방랑을 거쳐 '청명상하도'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거죠
지금 북경의 고궁박물관은 이 그림에 대해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특별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그림은 http://www.800joy.com/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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