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 33센티, 가로 6미터37센티...권으로 된 옆으로 긴 그림이죠
쭉 다 펼쳐서 이으면 그 길이가 12미터에 이르는 대작입니다
황공망(1269-1358)
강소성 상숙출신으로 원나라 4대화가중 한사람입니다.
호는 대치(大痴=큰 바보)...
조선의 추사 김정희는 자신의 제자 허련의 호를 '소치'라고 지어주면서
황공망에 대한 흠모를 과시했고
이 가르침을 받은
이후 허氏집안은 청대 초기의 정통파 황공망풍을 열심히 계승,발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황공망은 나이 80에 절강성,항주 북쪽에 위치한 부춘산에 은거하면서
피마준화법[그림이 길게 찢어지는 마껍질 같다는동양화에서 굴곡등을 가벼운 필치로
입체감있게 주름을 그리는 화법]으로 富春山일대의 가을 풍광을 묘사했습니다
위 그림에서 맨위 토막은 전체를 조망한 그림입니다 (이럴 경우 그 길이가 12미터)
즉, 아래 3개의 토막을 다 연결한 경우, 이런 전체 그림이 되는거죠
이 그림의 팔자가 참 기구합니다
명나라때 미술품 수집가인 오氏라는 사람이 수중에 넣게되는데
이 그림을 자식보듯 한 오氏...
그림 뒤편에 자기 맘을 직접 써 넣었습니다
"난 밥먹을때나 잠잘때도 항상 이 그림을 곁에 두고 생활하고 있으며..."
그런 오氏가 죽으면서 이 그림도 저 세상으로 가져가야 된다고
두루마리로 있던 이 그림을 활활타고 있던 화로속으로 직접 던져버립니다.
그때 돌아서는 오氏에 동작에 맞춰서
옆에 있던 조카가 잽싸게 이 그림을 다른 두루마리로 바꾸는 바람에
이 그림이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물론 오氏는 다른 두루마리 그림이 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흐믓하게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일단 불에 들어간 그림...
불에 접한 부분이 타버려서 그림이 두쪽으로 갈라지게 되었고
끝에 한부분이 떨어져 나갔게 되었습니다
그 끝에 있던 부분이 지금 절강성 박물관에 있는 바로 이 그림입니다
그림 대부분이 남아 있던 다른 쪽 그림은
황공망을 존경했던 후배 동기창이가 없어진 그림을 그려넣고
해서 잘 간직하다가...
청나라때 미술품 컬렉터 황제 강희제 수중에 들어가게 되고
쭉 자금성안에 있다가
중.일전쟁때 전란을 피해 모든 수장품을 남경으로 옮기게 되는데
이때 장개석이가 이 그림을 대만으로 도망갈때 가지고 가서
지금 대만,고궁 박물관에 국보중에 국보로 보관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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