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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Fields ..♪.. (8) Brothers Four

천하한량 2007. 7. 29. 00:29
Green Fields
 
푸른 초원
 
  - Sung by The Brothers Four 
 
Once there were green fields,
kissed by the sun
Once there were valleys
where rivers used to run
Once there were blue skies
with white clouds high above
Once they were part
of an everlasting love
We were the lovers
who strolled
through green fields

Green fields are gone now,
parched by the sun
Gone from the valleys
where rivers used to run
Gone with the cold wind
that swept into my heart
Gone with the lovers
who let their dreams depart
Where are the green fields
that we used to roam?

I'll never know
what made you run away
How can I keep searching
when dark clouds hide the day
I only know
there's nothing here for me
Nothing
in this wide world,
left for me to see.

But I'll keep on waiting
till you return
I'll keep on waiting
until the day you learn
You can't be happy
while your heart's on the roam
You can't be happy
until you bring it home
Home to the green fields,
and me
once again.
 
 
한 때, 햇살이 쏟아지던
푸르른 초원이 있었지
한 때, 시냇물이 흐르곤 했던
골짜기들이 있었네
한 때, 하얀 구름들이 하늘 높이
떠다니곤 하던 푸른 하늘이 있었어
한 때, 그들은 영원할 것 같았던
서로 사랑하던 연인이었지
우린 그 푸른 초원을
거닐며 사랑을 속삭였던
연인들이었어
 
그 푸르렀던 초원은 햇빛에 시들어
지금은 사라져 버리고 없네
한 때 시냇물이 흐르곤 했던
골짜기에서 사라져 버렸어
내 마음 속에서 휘몰아치던
차가운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린거야
자신들의 꿈을 버려 버린
연인들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만거야
언제나 우리가 거닐곤 했던
그 푸른 초원은 어디로 사라진건가
 
무엇이 그대를 떠나게 했는지를
난 영원히 알지 못할거야
어두운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는데
내 어떻게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사실은
지금 내 곁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지
이 넓은 세상에서
내가 볼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일뿐야
 
하지만 난 언제까지나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거야
당신이 내 사랑을 알게 되는 날까지
언제까지나 기다릴거야
당신의 마음이 방황의 길을 걷고 있는 한
당신은 행복해질 수 없어
당신의 마음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
당신은 행복해질 수가 없는거야
저 푸른 초원이 있는 고향으로
그리고 내가 기다리고 있는 이곳으로
다시 한번..
 
 
 NOTES... 
 
 
 
::::  Green Fields  ::::
 
   포크 그룹인 이지 라이더스(Easy Riders)의 멤버 테리 길키슨(Terry Gilkyson)·리처드 데어(Richard Dehr)·프랭크 밀러(Frank Miller) 등 3명이 1956년에 합작한 노래이다. 그러나 당시는 주목을 끌지 못하다가 1960년에 Brothers Four에 의해서 대 히트했다.
   1959년, Mort Lewis는 당시 워싱턴 대학의 학생들이었던 '브라더스 포'를 발견하고 이들을 CBS 레코드에 소개를 한다. 이들은 곧바로 뉴욕으로 날라가 CBS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사인을 하게 되는데, 바로 이 때 그들의 최초의 역사적인 히트 싱글곡인 "Greenfields" 가 7월 28일 뉴욕에서 녹음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데뷔 싱글로 1960년 초에 챠트 2위까지 올랐고 그 후로도 20주 동안이나 챠트에 머무르면서 히트하여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게 되었다. 1960년에 들어서 "Green Fields"는 레코드 챠트에서 탑 세일을 기록하였고, 그들은 그들의 최초 앨범인 "The Brothers Four"를 발매한다. 그 후 5월 22일에는 유명한 'Ed Sullivan Sow'에서 "Greenfields"를 부르고 5월 24일에는 또다시 TV show "Sing Along with Mitch"에 출연하여 "Greenfields"를 불렀다. 이런 식으로 그들의 행진은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 곡은 특히 애수가 감도는 아름다운 발라드이며, 킹스턴 트리오의 히트곡 <Tom Dooley>와 함께 1960년대의 새로운 포크 송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잊을 수 없는 곡이다. 이 곡은 빌리 본 악단, 로저 윌리엄스의 피아노 연주곡 등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  The Brothers Four  ::::
 
   세계일주 컨서트, 수백만장의 레코드 판매, TV방송국 출연, 백악관에서의 공연... -- 이러한 모든 것들은 1950년대 후반 4명의 워싱턴 대학 동창생들의 야망찬 꿈의 실현이었고 그 후 짧은 시간 안에 "The Brothers Four" 는 전세계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음악이 주는 기쁨을 들려준 내용을 기록한 책자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1960년 이후 "The Brothers Four"는 수천개교의 대학에서 연주하였고, 미국의 역대 4명의 대통령을 위해서 백악관에서 공연하였으며, 또한 수없이 많은 커뮤너티 컨서트에 출연하였고, 여러 교향악단과 재즈 스타들과도 협연하였으며 세계를 향한 미국의 음악대사 자격으로서의 수십개 나라로 순회공연을 하였다.
   "The Brothers Four"의 음악은 미국의 음악이다"  
   그들의 노래와 이야기는 거대한 미국의 전통적인 포크 뮤직 유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그룹은 '포크송의 부흥(Folk Revival)' 으로 알려진 음악 운동에 있어서 개척자였다. 그리고 그 당시의 그룹들 중 몇 개의 그룹들은 오늘날까지도 활동하고 있다. "The Brothers Four"는 세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그리고 가장 인기있었던 그룹들 중 하나였다. 그들의 모든 어쿠스틱 음악 연주는 기타, 반조, 만돌린 그리고 직립형 베이스 등으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물론 그들 4명의 목소리의 환상적인 조화는 빼놓을 수 없는 트레이드 마크이다.  그들의 음악이 애팔라치안 포크 발라드 음악을 충실히 적용한 음악이었든지 아니면 오늘날 싱어송라이터들의 오리지널 작품이었든지간에 그들의 음악은 항상 부드럽고 전문적이고 그리고 즉석에서 부를 수 있는 그런 음악이었다. "The Brothers Four" 는 시대를 초월한 미국의 음악이었고 지금도 전세계로 수출이 되어오고 있다.
   두왑(연주에 맞추어 코러스가 뒤얽히는 음악)과 비틀즈 음악 사이의 변화의 기간에 새로운 음악의 시대가 조용히 미국의 음악계에 나타났다. 1950년대 후반,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던 포크 음악 시대의 재도래가 화려한 홍보 없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새로운 음악의 운동은 좌익 방랑시인들 또는 저항가수들의 음악이 아니라 자신들의 청중들에게 오직 한가지 즉, '즐거움'만을 제공해주려 하는 활기차고 말쑥한 대학생들 그룹의 음악이었다.
   이 음악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는 한 그룹이 있었는데 그 그룹이 바로 "The Brothers Four" 였다. 이 파이감마델타 우애회(Fraternity: 보통 2자 이상의 그리스어의 알파벳을 그 회의 이름으로 하는 남자 대학생의 단체) 그룹이 대학축제 및 대학가요제 등에서 노래하고 연주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그들은 나중에 40년이라는 세월동안 50장 이상의 앨범을 발표하며 건장하게 세계를 돌아다니며 순회공연을 할 줄은 몰랐었을 것이다.
   그들의 이력은 아주 순수하게 시작이 된다. Bob Flick (acoustic bass), John Paine (guitar), Mike Kirkland (guitar & banjo) 그리고 Dick Foley (guitar) 등 이 네 사람은 1956년 와싱턴 대학에서 만난다. 그들이 소유한 풍부한 음악 지식과 뛰어난 현악기의 합주 실력으로 "The Brothers Four" 는 다양한 캠퍼스 행사에 자주 초청이 되었다. 그러던 1958년 어느날, 당시 시애틀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라이브 뮤직 클럽인 'Colony Club' 으로부터 부름을 받는데 그 클럽은 이들에게 와서 오디션을 받아 보라고 요구한다. 네 명의 애띤 얼굴의 청년들은 악기를 손에 들고 일찍 장소에 나타난다. 그런데 그 순간 그들은 곧 이 부름이 다른 경쟁 우애회에 의한 장난이었음을 알 게 된다. "물론, 그 클럽의 리더는 우리의 사정을 모르고 있었지요," 라고 Flick 은 회상한다, "그러나, 마치 영화에서처럼, 그는 '너희들이 여기에 왔으니까 노래 두 곡을 불러봐'라고 말했지요."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했고 놀랍게도 그 클럽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고용이 되었다.
   1958년 한 해동안 내내 'The Brothers Four' 는 'Colony Club'에서 일했고 그들의 쇼는 히트를 쳤는데 특히 그 당시의 "Contrived" 레코드에 식상해 있어서 그들의 어쿠스틱하고 현악기로만 연주되는 사운드와 소박한 하모니를 환영했던 대학생들에게 커다란 인기기 있었다.
   1959년 "The Brothers Four" 는 San Francisco 로 향하는데 그곳은 정말로 우연하게 연주하는 그런 곳이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인기를 뒷받침해주는 자신들의 우애 관계가 십분 사용되기를 바라면서 그들의 시선을 샌프란시스코 최고 클럽인 'the Hungry i'와 'the Purple onion' 등에 둔다. 그들은 곧바로 'the Hungry i' 클럽에서 연주를 시작했고 그리고 이어서 바로 'Columbia Records'사와 계약을 이루게 된다. 그 다음 해에 이들은 그들 최초의 앨범 <The Brothers Four>를 녹음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뉴욕으로 날아가게 된다. 1960년 "The Brothers Four"는 싱글 "Greenfields" 를 녹음하게 되는데 이 곡은 그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곡들 중 하나가 되었다.
 ☜ The Brothers Four
 - Mark Pearson, John Paine, Bob Flick, Terry Lauber
 
   나중에, "The Brothers Four" 가 녹음과 세계 순회공연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동안, 콜롬비아 레코드 제작자들은 그들의 큰 자산인 이 정력적인 그룹을 더욱 히트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John Wayne'의 영화 'The Alamo'가 나왔을 때 콜롬비아는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이 때 'The Green Leaves of Summer'를 녹음해보라고 제안했다," 라고 Flick 은 말한다. 이렇게 해서 이 곡은 이 그룹의 최대 히트곡들 중 하나가 된다.
   비록 이후 20년 동안의 음악의 흐름이 완전히 변화하게 되지만, 'The Brothers Four'는 한 두 개인 멤버의 변동은 있었지만 결코 침체의 시기는 겪지 않았다. 1969년 후반, 'Kirkland'가 그룹을 떠나고 대신 'Mark Pearson'이 그룹에 들어오게 된다. (마크 자신은 잠시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 자신의 솔로 활동을 위하여 그룹을 떠나는데 이 기간동안에는, 나중에 Kingston Trio 멤버로 유명한 'Bob Haworth'로 대체된다.)
   지난 4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The Brothers Four'는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꾸준히 늘어나는 충실한 팬들을 확보해 왔다. 특히, 그들은 일본에서는 최고 인기그룹으로서의 자리를 유지하면서 매년 순회공연을 한다. 그리고 1996년에는 중국에서의 순회공연을 대성황리에 마무리하였다. 현재 1990년 그룹을 떠난 'Foley'를 대신해 들어온 'Terry Lauber'를 포함한 이 그룹은 지금도 전 세계 여러나라에서의 공연이 예약되어 있다.
 
                             ** 2000년 워싱턴에서의 공연 실황 **
 
::::  The Brothers Four 한국공연  ::::
 
   1960년대 '포크송의 부흥(Folk revival)'에 앞장선 그룹으로 1,000여회에 이르는 콘서트 횟수와 미국 역대 대통령 4명을 위한 백악관 콘서트, 수백만장의 음반판매량 등을 자랑하는 남성 4인조 포크밴드인 이들은 국내에서도 1970년대 ‘Greenfields’ ‘Try to Remember’ ‘Seven Daffodils’ ‘Green Leaves of Summer’ ‘Yellow Bird’ 등의 대표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인기 포크가수 양희은이 ‘Seven Daffodils’를 번안한 ‘일곱송이 수선화’를 불러 더욱 널리 알려졌다. 데뷔한 지 48년(2003년 현재)이 되는 이들은 1969년도 첫 번째 내한공연에 이어 1984년도에도 한국을 다녀간적이 있고 2004년 1월 3~4일 세 번째로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내한공연을 가졌는데 어쿠스틱 악기 연주를 바탕으로 듣기 편한 감미로운 하모니를 연주하여 중년층 팬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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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d to : (과거의 규칙적인 습관 또는 상태를 의미) ~하곤 했다. 언제나했다,
                …하는 보통이었다, …하는 버릇[습관]이었다. 이전에는 …이었다
   - It used to be believed that the sun moved round the earth.
       옛날에는 태양지구다고 믿고 있었다.
   - He came earlier than he used (to). 그는 여느 보다 일찍 왔다.
   - There used to be a golden pond.  옛날에 황금 연못이 있었다.
*are gone : be 완료(상태에 중점을 두는 표현),  ~ 이 이미 사라져 버리고 지금은 없다.
   - She is gone. 그녀는 이미 내 곁을 떠나버리고 지금은 없다.
*parch : <햇볕 을> 바짝 르게 하다with》;<사람을> 타게 하다(⇒ parched)
               
볶다, 굽다(roast), 태우다(scorch), 바짝 마르다, 타다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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