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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ll Stop the Rain ..♪.. (1) C.C.R

천하한량 2007. 7. 20. 19:15
Who'll Stop the Rain
 
누가 이 비를 멎게 할 수 있을지...
 
  - Sung by C.C.R 
 
Long as I remember
The rain's been comin' down.
Clouds of mystery pourin'
Confusion on the ground.
Good men through the ages,
Tryin' to find the sun;
 
And I wonder,
Still I wonder,
Who'll stop the rain.

I went down Virginia,
Seekin' shelter from the storm.
Caught up in the fable,
I watched the tower grow.
Five year plans and New deals,
Wrapped in golden chains.
 
And I wonder,
Still I wonder
Who'll stop the rain.
 
~ ~ ~ ~ ~
 
Heard the singers playin',
How we cheered for more.
The crowd had rushed together,
Tryin' to keep warm.
Still the rain kept pourin',
Fallin' on my ears.

And I wonder,
Still I wonder
Who'll stop the rain
 
~ ~ ~ ~ ~
 
 
내 기억을 더듬어 보건대
끊임없이 줄기차게 비가 내렸어
불확실성의 구름은
대지 위에 혼돈을 드리우고
옛날 옛적부터 어느 시대나
선자(善者)들은 밝은 태양을 찾으려 하지
 
그런데 난 궁금해
아직도 궁금증을 풀 수가 없어
도대체 누가 이 비를 멎게 할 수 있을지를..
 
난 버지니아로 가서
폭풍우로부터 숨을 곳을 찾았지
그럴듯한 이야기(유혹)에 빠져서
(바벨)탑이 쌓아 올려지는 것도 목격했어
5개년 계획과 뉴딜 정책은
반짝이는 황금줄로 포장되어 있었지
 
그런데 난 궁금해
아직도 궁금증을 풀 수가 없어
도대체 누가 이 비를 멎게 할 수 있을지를..
 
~ ~ ~ ~ ~
 
가수들이 노래하는 걸 들었어
앵콜해달라고 얼마나 갈채를 보냈는지 몰라
청중들은 서로 같이 모여들었지
조금이라도 서로 따뜻함을 유지하려고 말야
그래도 여전히 비(전쟁)퍼붓는 소리는
내 귓가를 때리고 있네
 
그런데 난 궁금해
아직도 궁금증을 풀 수가 없어
도대체 누가 이 비를 멎게 할 수 있을지를..
 
~ ~ ~ ~ ~
 
 
 NOTES... 
 
 
 
::::  Who'll Stop the Rain  ::::
 
   "누가 이 비를 멈추워 줄 것인가"? 로 번역되는 제목의 이 곡은 C.C.R의 리드싱어 죤 포거티의 노래로 1970년대 초반 "Hey Tonight", "Have ever seen the Rain", "Proud Mary" 와 함께 유행했던 곡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문장 그대로만 해석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었던 이 곡은 1970년 1월에 발표되었는데, 당시 미국이 개입한 베트남전이 실속 없이 이어지고,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제비뽑기식 징병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가서 아까운 목숨을 잃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미국 청년들에게 공포와 불안을 몰고왔고 이로인해 그들 사이에 반전의 분위기가 팽배해져 미국 내에서는 '반전 운동'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포크'와 '락'이라는 음악 장르를 이용해 많은 음악인들은 저항의 메시지를 담아 노래했고,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곡이 바로 이 곡 "Who'll Stop the Rain" 이다.
   가사 내용 중, 정신 없이 쏟아져 내리는 총알은 퍼붓는 비로 표현했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나날을, 황금빛 태양으로 표현했으며, 과연 누가 이 퍼붓는 비를 멈추게 할 것인가 알고 싶다. 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전쟁 반대'를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비'라는 어휘는 거역할 수 없는 어떤 사회적인 힘, 즉, 세상의 혼란과 정책의 사기를 상징하고 있다. 이 노래가 발표된 1970년, 그 무렵 미국사회의 혼란은 전쟁이라는 것이었고 구체적으로 월남전이었다. 다시 말해 당시 미국의 세계헌병 자임과 오만으로 인한 월남전으로 징집에 대한 미국 젊은이들의 거부, 지식인들의 평화와 낭만의 구가, 히피적인 삶에 대한 추구 등, 현실을 박탈 및 규제하고 통제하는 힘(비)에 대한 도전이며 저항이었다. 이와 같은 시기에 도발적으로 일어난 스트리킹(벌거 벗고 달리기)도 기성세대들을 향한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C.C.R의 골든 레퍼터리는 댄스음악이 아니라 반전(反轉)가요였다. 이러한 반전과 평화에 대한 염원에 죤 바에즈나 밥 딜런 같은 가수들도 참여했고 노래와 예술로 체제유지와 기존사회의 유지에 대한 도전을 표현했던 것이다. 그룹의 리더인 John Fogerty 는 그의 또다른 곡인 "Fortunate Son" 처럼 이 곡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저항을 담은 곡이라고 직접 말했다.
   1978년 영국 '프리 시네마'운동의 기수였던 카렐 라이즈 감독은 베트남에서 캘리포니아로 마약을 밀반입했던 사실에 대한 베트남 참전 미군 노병(Nick Nolte 주연)의 쓰라린 고백을 소재로 다룬 월남전 영화(모션 픽쳐스 사 제작), 로버트 스톤의 다큐멘터리, "개 같은 군인"(Dog Soldiers)을 영화화했는데, 이 영화에 "Who'll Stop the Rain" 을 영화의 타이틀과 아이템으로 사용하였다. 이 영화의 처음 타이틀은 "개 같은 군인"(Dog Soldiers)으로 붙여졌으나, 영화 제작자가 이 노래의 사용권을 얻게 됨에 따라 후에 영화의 타이틀을 "Who'll Stop The Rain" 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이 곡은 "Travelin' Band" 라는 싱글(위 자켓)의 B-면에 수록되어 발표되었는데 이 싱글은 미국챠트 2위에 머무른 C.C.R 의 여러 싱글 중 하나로 1970년 2월 7일부터 9주간 챠트 2위에 머물렀다. 사실 유감스럽게도 C.C.R의 곡들은 미국챠트에서 한번도 1위에 오른 곡이 없었다.
   또한 이 곡은 C.C.R 의 "Have You Ever Seen the Rain?"과 같은 비를 소재로 한 노래 중의 하나인데, 세계적인 음악잡지인 'Rolling Stone' 지와의 인터뷰에서 " 'Who'll Stop The Rain' 이 상징적 차원 이외에 어떤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라는 기자의 질문에 John Fogerty 는 "물론이지요, 내가 이 노래를 쓸 때 난 Washington 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내가 이 곡의 원판을 집에 가지고 와 연주했을 때가 기억나네요. 그 당시 내 아들 Josh는 네 살이었는데 연주를 다 듣고 나더니 아들은 '누가 비를 멈출 것인가?' 라는 노래 제목에 대해 '아빠가 비를 멈추면 되겠네.' 라고 대답했고 이에 내 아내와 나는 서로를 마주보며 '그래, 완전히 할 수는 없지만...' 라고 말했지요." 라고 말했다.
   가사 중에서 "I went down Virginia, seekin' shelter from the storm" 이라는 구절은 "Bob Dylan" 이 1975년에 발표한 노래 "Shelter From The Storm" 을 만드는데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하였고, Bruce Springsteen 은 2003년 그의 여름 순회 공연 시에 비가 올 때마다 이 노래를 시작으로 공연했다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가사의 의미와는 달리 낭만에 젖어서 부르는 노래처럼 방송이 되곤 하는데, 우리의 가요 중 배경이 비슷한 곡을 찾는다면 한대수의 "물좀 주소"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아무도 원치 않았던 전쟁에 개입되어, 베트남으로, 걸프지역으로, 이라크로 우리의 귀한 아들들을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로 보내야만 하는 약소국가의 설움을 느끼며.....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아무 죄 없는, 전쟁의 희생자가 생기지 않길 절실하게 기원하며...  이 노래를 들어본다.
 
*"Who'll Stop the Rain"과 불교 비하 번안곡
   1970년대를 지나온 사람들에게 C.C.R(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의 노래는 매우 친근하다. 레드제플린, 딥퍼플과 같은 위대한 그룹들이 많았지만 어린 학생들이 듣기에는 부담스러웠는데 C.C.R의 노래는 어린 학생들이 듣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런 친근함 때문인지 C.C.R의 노래는 국내 가수들이 많이 번안해 불렀다. 'Proud Mary'를 번안한 조영남씨의 '물레방아 인생'은 대표적인 번안곡이었고 'Who'll Stop the Rain'은 특이하게도 불교를 비하하는 가사를 담아 당시 어린 학생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 불려지게 되었는데 가사 내용은 아래와 같다.        중들이 모여 사는, 호젓한 절간에,
                    개고기 올려놓고 염불을 외겠지.
                    염불이 끝나면 개고기 먹겠지.
                    두드리는 목탁 빛나는 대머리... 음... 삼삼해.
   이런 특정 종교 비하 가사가 퍼진 이유는 재미로 만들어진건지 아니면 나쁜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Who'll Stop the Rain'은 원곡에 뒤지지 않은 인기를 탄 번안곡 덕분에 1970년대의 추억과 함께 하는 노래가 되었다.
 
*C.C.R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그룹명의 유래
   C.C.R 은 '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의 줄임말로,1967년 이 그룹이 그들의 밴드 이름을 'The Blue Velvets'에서 'Creedence Clearwater Revival'로 바꾸게 되는데, 우선 Creedence라는 말은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지만, 전하는 바에 의하면, Tom Fogerty의 친구의 친구인, 'Credence Nuball'에서 따왔다라는 설도 있지만, 이들의 새로운 세 단어로 된 이름은 각각의 유래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Creedence 는 그들 자신들을 믿는다는 의미로, 신뢰. 신임. 신조 등의 의미를 가진 "credence" 라는 단어에서 비롯되었는데, 신조라는 뜻의 크리드(Creed)와 신용을 뜻하는 크리던스(Credence)를 혼잡한 조어로 '그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리키며,
두 번째, Clearwater 는 처음에 맥주광고의 이름에서 따왔으나, 공해방지 TV 광고에 의해 갑자기 확산된 환경운동과 더불어 더욱 빠르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포거티의 설명에 따르면 '햇빛이 항상 빛나는 깊고 진실하며 순수한 결정체'를 상징한다고 한다.
세 번째, Revival 은 누구나 다 알다시피 '재생'의 의미이지만, 이 재생이란 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들 내에서의 재기, 부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들 밴드의 활동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바램에서 비롯되었던 것인데 이 때가 그들에게 있어서는 바로 이것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그들은 프로였기에 그들은 San Francisco 로 향했고 1968년 당시 유명 뮤지션들의 공연장이었던 'FilImore West' 와 'Avalon Ballroom' 에서 공연할 수도 있었다.
   아무튼, 이 세 단어를 합치면 '반드시 순수한 결정체를 부활시켜 내겠다는 확신'의 의미가 되기도 하고, '맑은 물을 선조로 부터 다시 흐르게 하자.' '오염된 물을 정화해서 재공급한다.'는 의미로 '오염된 세상을 정화하고 싶다.' 이다. 다시 말하면, 당시 60년대 후반의 팝계에 신선함을 불어넣어 주겠다. 라는 취지로 그룹명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  C.C.R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
 
   C.C.R(Creedence Clearwater Revival) 은 락음악이 다양한 스타일로 분화되던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R&B와 Country에 기반을 둔 복고적인 사운드로 큰 인기를 얻은 밴드이다.
   C.C.R의 음악에 있어서 거의 모든 역할을 담당하던 John Fogerty(보컬, 기타)와 그의 형 Thomas Fogerty(기타)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태생으로 John의 학창시절 친구들인 Stuart Cook(베이스), Douglas Ray Clifford(드럼)와 함께 1959년부터 'The Blue Velvets'라는 밴드이름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하였다.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활동을 계속하던 이들은 1964년 샌프란시스코의 Fantasy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고 밴드이름을 The Golliwogs로 바꾸어 몇 장의 싱글을 발표했으나 비틀즈가 미국 전역을 휩쓸 무렵인지라 그리 신통치는 못했다.
   그 후 1967년 캘리포니아주(州) 엘 세리토에서 존 포거티(John Fogerty:1945∼), 톰 포거티(Tom Fogerty:1941∼1990), 스투 쿡(Stu Cook:1945∼), 더그 클리퍼드(Doug Clifford:1945∼) 4인조는 밴드 이름을 'Creedence Clearwater Revival'로 바꾸고 1968년 셀프타이틀로 첫 앨범을 발표하면서부터 상업적인 성공을 하기 시작했다.
   첫 골드를 기록한 이 앨범에서는 Dale Hawkins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Susie Q'(예전에 코미디언 이주일이 엽기적인 춤을 출때 항상 나왔던 음악)와 Screaming Jay Hawkins의 'I Put A Spell on You', 두 개의 50년대 커버곡이 인기를 누렸다. 'Susie Q'는 싱글차트 11위까지 올라갔다.
   C.C.R이 본격적으로 전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 밴드가 된 것은 1969년 2월 두 번째 앨범 [Bayou Country] 이후 그해 연속적으로 앨범을 발표하면서 부터이다. 남부의 로큰롤과 블루스의 영감을 받은 2집앨범 [Bayou Country]에서 싱글차트 2위곡인 'Proud Mary'와 'Born on The Bayou'가 인기를 끌었고 같은 해 8월 발표한 3집 [Green River]에서 'Bad Moon Rising', 'Green River'가 미국차트 2위에 올라갔다. 프라우드 메리 같은 곡은 엘비스 프레슬리를 위시한 여러가수가 리메이크를 해서 누구의 노래가 원곡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정도 이다. 또 그해 11월 4집 [Willly & The Poor Boys]에서는 'Down on The Corner', 'Fortunate Son'를 대히트 시켰다.
   1969년 발표된 [Bad Moon Rising], 1970년 작품 [Who’ll Stop the Rain]과 같은 히트곡은 베트남전쟁과 민권운동을 간접적으로 환기시켰고, 1969년의 [Fortunate Son]은 부와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분노를 다뤘다.
 
 
:::::  추억의 C.C.R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
 
   지금 40~50 대인 사람이라면 대부분 경험했겠지만 팝송이 마구 유입되던 1970년대 초반 서울에는 씨씨알(CCR) 노래 열풍이 일었다. 길거리 다방이나 트랜지스터는 온통 이 그룹의 노래들로 뒤덮였다. 당시 누군가가 “중랑교를 걷기 전에 CCR의 노래가 길거리에 들리고 있었는데, 다리를 건너갔더니 거기에서도 CCR의 노래가 퍼져나오더라”며 혀를 내두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야유회, 고고장 등지에서 젊은이들은 '로다이', '헤이 투나잇', '모리나' 등 흥겨운 CCR의 레퍼터리들에 율동을 맡겨버렸으며, 그열기는 1970년대 말까지 상당 기간 지속되었다. 심지어 CCR의 최대 히트 송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 같은 곡은 외설적인 우리말로 가사가 바뀌어 (요즘 말로 노래 가사 바꿔부르기, 즉 노가바인 셈이다) 유행되기도 했다. 비단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CCR은 당시 일세를 풍미하고 있던 고고 음악의 대명사였다.
   이 때문인지 그들 노래를 즐겨 들었던 우리 팝송 팬들은 CCR의 노래를 고고 음악, 이를테면 별다른 알맹이 없는, 따라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없는 댄스음악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고고장에서나 써 먹을 메뉴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크게 다르다. CCR의 경쾌한 곡들은 상당수 정치 사회적 메시지로 가득차 있다. 영어라는 '장애물'을 갖고 있지 않은 본토 미국인들은 CCR 노래의 이런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고 또한 그들 노래가 빅 히트한 터라 지금도 그들이 의도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기억해 보건대 비는 줄기차게 내렸어. 미스터리의 구름은 대지 위에 혼란을 퍼부었지. 어느 시대나 선한 사람들은 태양을 찾으려 하지. 하지만 난 의문이야. 누가 비를 멎게 할는지. 난 버지니아로 가서 폭풍을 피해줄 은신처를 찾았지. 꾸며낸 이야기에 빠져 탑이 자라는 것을 보았지. 5년의 계획과 새 정책은 황금의 체인으로 둘러싸였지. 하지만 난 의문이야. 누가 비를 멈추게 할는지.' '누가 비를 멈추게 할는지(Who`ll Stop the Rain)'
   여기서 '비'라는 어휘는 세상의 혼란과 정책의 사기를 상징하고 있다. 이 노래가 발표된 1970년, 그 무렵 미국사회의 혼란은 전쟁이라는 것이었고 구체적으로 월남전이었다. 그러니까 CCR의 골든 레퍼터리는 댄스음악이 아니라 반전(反轉)가요였다. 그래서 영국 '프리 시네마'운동의 기수였던 카렐 라이즈 감독은 베트남에서 캘리포니아로 마약을 밀반입했던 사실에 대한 참전 미군의 쓰라린 고백을 소재로 다룬 월남전 영화(로버트 스톤의 다큐멘터리 '개같은 군인들'을 오리지널로 1978년에 영화화했다)에 이 노래의 제목과 아이템을 빌리기도 했다.
   그룹의 리더 존 포거티(John Forgerty)는 CCR의 중추이자 전부였다. 작사, 작곡, 편곡은 말할 나위도 없고 그룹의 목소리, 정신, 그리고 손과 발이었으며 그룹의 운영까지 총괄했다. <롤링 스톤>지의 한 기자는 이들의 앨범 <호숫가의 시골(Bayou Country)>이 발표된 후 “음반을 만들면서 포거티는 음악과 관련된 모든 것을 혼자서 했을 뿐 아니라 레코딩을 마치고 나서 스튜디오의 청소까지 맡아 했다”며 그의 독점(?)을 단적으로 표현했다.
   캘리포니아주의 엘 세리터 교외에서 성장한 그는 친형 탐 포거티(리듬기타), 중학교 동창인 도우그 클리포트(드럼), 스투 쿡(피아노)과 1959년 '블루 벨베츠'라는 이름의 밴드를 조직해 음악활동을 개시했다. 나중에는 매니저의 뜻에 따라 비틀즈식으로 <골리웍스>로 개명, 활동을 계속했으나 성과는 전무였다.
   무명 그룹으로 완전히 밑바닥을 맴돌았지만 그래도 성공에의 집념은 버리지 않고 존 포거티가 1967년 6월 육군에서 제대하자 6개월간 피나는 연습을 거친 뒤 공동으로 2천5백 달러의 자본을 투자, 앨범 제작에 임했다. 이는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배수지진이었다. 때마침 팬터지 레코드사가 설립되어 출반이 성사되었고, 이들은 그룹명도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edence Clearwater Revival)로 바꾸어 전열을 가다듬었다(CCR은 약칭이다). 크리던스는 신조라는 뜻의 크리드(Creed)와 신용을 뜻하는 크리던스(Credence)를 혼잡한 조어로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리키며, 클리어워터는 포거티의 설명에 따르면 '햇빛이 항상 빛나는 깊고 진실하며 순수한 결정체'를 상징한다고 한다. 리바이벌은 복원, 부활의 의미이므로 이 세 단어를 합치면 '반드시 순수한 결정체를 부활시켜 내겠다는 확신'의 의미가 나온다.
   이들이 언급하고 있는 '순수한 결정체'란 음악적으로는 미국 대중음악인 록 뮤직의 뿌리로 얘기되는 흑인 블루스였다. 존 포거티의 우상은 시카고 블루스의 양대 거목인 머디 워터스와 하울링 울프였고 처크 베리, 보 디들리, 리틀 리차드, 엘비스 프레슬리, 칼 퍼킨스 등 초기 록큰롤 기수들로부터 음악적 영감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컨츄리 색채가 강한 초기 록큰롤인 '로커빌리'에 시카고 블루스를 드라마틱 혼합, 미국 남부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독특한 사운드를 창조해냈다. 그는 이것을 흙내음이 짙은 토속적인 음악이라 하여 스왐프 뮤직(Swamp Music)이라 일컬었다.
   그가 우울한 음조의 블루스에 심취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어렸을적 포거티는 부모가 싸움질만 계속하는 극히 왜곡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그나마 아홉 살 때 아버지는 가출해버려 영영 돌아오질 않았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난 항상 창피했다. 친구를 집에 초대하기 싫었다. 내 방은 지하실이었고 게다가 시멘트 바닥, 시멘트 벽이었다. 음악만 붙잡고 살 수밖에 없었다.”
'포르터빌(Porterville)'이란 노래에도 그때의 고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들이 찾아와서는 아버지를 언젠가 일꾼으로 부리겠다고 데려가버렸지. 그러나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빚을 갚아야 했던 건 나였어. 동네 사람들은 내가 아버지와 근친이기 때문에 나는 죄로 둘려싸여 있다고들 했지.'
   환경은 그로 하여금 하층민이며 노동자라는 '계급 의식'에 눈뜨게 만들었다. '노동자(The Working Man)'라는 곡세는 그룹이 유명해지기 전 밤무대를 전전하며 고생하던 때가 처절하게 그려져 있다.
   '난 일요일에 태어났어. 목요일쯤에 난 직업을 가졌지. 금요일에는 나를 데려가지마. 왜냐하면 봉급받는 날이니까. 토요일 밤에는 난 죽어버리고 싶어. 일요일이 내 머리에 떠오르기 전에.'
   이렇기에 1968년까지만 해도 하룻밤 무대 개런티가 30달러였던 것이 히트곡이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한 그 이듬해 출연료가 무려 1백 배나 폭등하는 '신분 상승'과 포옹했지만, CCR은 사치를 격리한 채 수입을 공동 저축하며 청빈을 유지했다. 포거티는 “난 항상 하층 계급의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본다”며 "만약 편히 앉아 그 돈을 생각하게 되면 아마도 뿌리에 대한 노래는 결코 쓰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한편 그들의 인기 비상이 얼마난 대단했던가를 보기로 하자. 1969년부터 스타급으로 치고 올라선 이들은 1970년 지구촌의 어느 슈퍼스타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인기를 과시했다. 그 해 일 년간 무려 '다운 온 더 코너(Down on the Corner)', '순회하는 밴드(Travelin` Band)' 등 골드 싱글이 4곡이나 됐고, 앨범은 <코스모의 공장(Cosmo`s Factory)>, <푸른 강(Green River)> 등 발표한 6장 전부 골드로 기록되었다(골드는 싱글의 경우 백만 장, 앨범은 50만 장 이상 나갔을 때 인정된다). 4곡의 골드 싱글 및 6장의 골드 음반은 한 아티스트가 일 년간 가장 많이 내놓은 골드 디스크로 이 기록은 팝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발표된 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에 죄다 정상에 한발짝 못미친 2위에 머물고 말아 어찌보면 '불운한'(?) 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부와 명예는 의식이 동반되지 않을 경우 사람을 급속히 타락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그룹의 왕자로 등극, 많은 돈을 챙길 수 있는 위치로 부상했음에도 CCR이 노동계급 의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런 점에서 각별하다.
   포거티의 말대로 '낮은 데로 임한' 사람에게 포착된 세상이 어찌 향기로울 수 있으랴. 그들의 노래에는 분노와 비탄이 묻어있고 세상의 어지러움에 용해되길 사절함으로써 잉태된 떠돌이꾼 정서가 숨쉬고 있다.
   '난 허리케인이 부는 소리를 듣는다. 종말이 곧 닥치고 있음을 안다. 난 강물이 범람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격노와 파멸의 목소리를 듣는다. 오늘밤 나돌아다니지 말라. 네 목숨을 앗아갈 수 있지. 사악한 달이 뜨고 있어. 네 물건을 모두 모아두도록 하라구. 죽을 준비를 하도록 하라구.' '사악한 달이 뜨네(Bad Moon Rising)'
   '창문에 촛불을 밝혀놓는다. 왜냐하면 떠나야 한다고 느끼고 있으니까. 비록 내가 가지만 곧 나는 집에 돌아올 거야. 내가 빛을 볼 수 있는 한은. 가방을 싸고 떠나가보세. 난 잠시 방랑길을 밟아야 하는 몸이니까. 내가 사라져버려도 내 걱정은 말아주게. 내가 빛을 볼 수 있는 한은 말야.' '빛을 볼 수 있는 한(Long as I can see the Light)'
   당시 CCR의 출신 지역인 웨스트코스트 지역의 록 그룹들은 - 제퍼슨 에어플레인과 그레이트풀 데드, 컨츄리 조 앤 더 피시 등이 손꼽힌다 - 노래를 통해 혁명의 기치를 드높이고 있었다. <타임>지는 1969년 6월 기사에서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은 이런 그룹들과 달리 혁명을 논하는데 흥미가 없다. 네 명의 단정한 모발과 심플한 복장을 한 이 밴드는 사회변혁보다는 그들의 뿌리나 사람들 간의 문제에 관한 노래를 선호하고 있다”고 그들은 정치적인 데는 거의 관심이 없는 그룹으로 보도했다. 물론 이들은 혁명을 외치지는 않았으며, 특히 그 해만 해도 CCR의 노래에 사회적 메시지가 묻어나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무렵 <타임>지가 얘기하는 '사람들 간의 문제'란 바로 전쟁이 아니었던가. 월남전의 회오리가 깊어져 가자 포거티는 젊은이들, 자신들처럼 '못가진 계급 출신'의 자식들에게 불어닥친 공통 감정, 즉 징병의 공포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사회, 정치적 비평이 노래에 세차게 밀어닥쳤다. 존 포거티는 목청을 높인다.
   '밴드가 장군 만세!를 연주할 때 대포는 당신 쪽을 겨누고 있지. 어떤 친구들은 애국적 시선을 이어받고 전쟁에 내보내지지. 당신이 얼마나 바쳐야 하냐고 물으면 그 대답은 오로지 더! 더! 더!야. 난 아냐, 난 아냐, 난 군대의 자식이 아냐, 난 운좋은 녀석이 아냐.' '운좋은 녀석(Fortunate Son)'
   '어젯밤 난 불길이 시골길로 퍼져가는 광경을 보았어. 아침에 남겨져서 잿더미가 가라앉는 걸 지켜본 사람은 거의 없었지. 누가 화형식을 하는 건가? 왜 화형식을?' '초상(Effigy)'
   이 노래 역시 월남전의 폐해를 기술함으로써 전쟁에 저항하는 반전 가요다. 제비뽑기식으로 징병되어 타국만리로 실려가 총부리를 들이대야 하는 젊은이들의 고통은 CCR만큼 진득하게 반영시킨 록 그룹은 없었다. 존 포거티는 음반 청취자들에게 베트남전을 현장 중계해주기도 했다.
   '악몽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현실이었어. 그들은 나더러 느릿느릿 걷지 말라고 했지. 악마가 뒤�m아 온다는 거야. 정글을 뚫고 달려라. 정글을 뚫고 달려라! 돌아보면 안돼. 덜커덩 소리를 들었어. 내 이름 부르는 소릴 들었지. 2백만 자루의 총이 장전되고 사탄이 울부짖으며 총부리를 들고 겨냥하고 있지.' '정글을 뚫고 달려라(Run through the Jungle)' 아마 <타임>지가 1년 뒤인 1970년에 이 그룹 기사를 취급했다면 논조는 많이 달라졌으리라...
   그러나 단단한 팀웍을 자랑하던 CCR은 1971년 탐 포거티가 탈퇴하면서 균열의 조짐이 나타났다. 네 살이나 아래인 동생 존의 카리스마적인 통치와 우월성이 배태한 형제간 불화가 주원인이었다. 실력은 인정한다 치더라도 '형님 먼저'의 기본 예절을 발휘 못한 동생에게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정신이 번쩍든 존 포거티는 앨범 <마디 그라(Mardi Gras)>를 만들 때부터 그간의 독재를 청산하고 다른 멤버들도 작곡과 노래에 참여시키는 등 '민주화 조치'를 단행하지만,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였다. 3인조로 유럽 순회 공연길에 오르고 '스위트 하이치하이커'같은 히트곡을 내지만 그룹은 1972년 10월 해체되고 말았다.
   포거티는 해산 후 1인 밴드인 '블루 리지 레인저스'(자신이 북치고 장구치고 다 했는데, 그룹이 존재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자기이름을 쓰지 않았다)로, 1975년부터는 본인 이름으로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CCR시절부터 누적되어온 팬터지 레코드사와의 해적판 및 로열티 배분 문제 등으로 불협화음을 빚게 되면서 음악 활동에 회의를 느꼈던지 1976년부터는 일체의 음악 작업을 중단한 채 오레곤주의 농장에서 은둔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1985년에 거의 10년이라는 기나긴 침묵을 깨고 음반 <중견수(Center-field)>를 발표, 화려한 재기에 성공했다. 여기서 존 포거티는 싱글 '올드맨이 나타났네(The old Man down the Road)'를 크게 히트시켜 재삼 진가를 확인시켰고, 올드 팬에게는 CCR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앨범을 제작할 때까지도 팬터지 레코드사 사장에 대한 미움이 가시질 않아 수록곡 '잰즈는 춤출 수 없어(Zanz Kant Danz)'를 통해 밴스 사장을 질타해마지 않았다.
   '잰즈는 춤출 수 없어. 그러나 그는 네 돈을 훔칠 거야. 그를 주시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는 너를 강탈해 눈멀게 할 거야.l'
   이 곡의 원제는 '밴스는 춤출 수 없어(Vance can`t Dance)'였으나 명예��손의 소지가 강해 타이틀을 바꾸어야 했다. 존 포거티는 이듬해 다시 <좀비족의 눈(Eye of Zombie)>이라는 음반을 발표하여 원기와 옛 명성을 완전히 회복했다.
   그는 히트곡을 터뜨려 저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쓰라린 과거의 극복에도 성공하는 겹경사를 누린다. 솔로 활동 이후 15년간 팬터지 레코드사에 대한 증오로 단 한 차례도 CCR 노래를 연주하지 않았으나 1987년 메릴랜드주 랜도버에서 거행된 파월장병들을 위한 '웰컴 홈' 공연에서 금기를 깨고 옛 노래를 불렀다. 그는 이 자리에서 “로열티 문제로 인한 레코드사와의 구원(舊怨)을 극복할 때가 되었다”고 밝히면서 청중들에게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월남전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적극적으로 노력해줄 것을 제언했다.
   투명하고 경쾌한 리듬과 현실사회에 대한 곧은 정서의 표출로 월남참전용사들을 포함한 만인의 사랑을 받았던 CCR과 그 대변자 존 포거티. 현실 반영에 가슴을 닫고 있는 요즘의 팝 풍토를 보면서 우리는 더욱 그와 그의 그룹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 From Izm.co.kr ]

    ::::  C.C.R's Billboard Top 40 Singles  ::::

Single

Peak

Top 40 Debut

Weeks

 Suzie Q (Part one)

11

9/28/1968

9

 Proud Mary

2

2/08/1969

12

 Bad Moon Rising

2

5/17/1969

12

 Green River

2

8/09/1969

11

 Commotion

30

8/09/1969

7

 Down on The Corner

3

11/08/1969

13

 Fortunate Son

14

11/08/1969

13

 Travelin' Band

2

2/07/1970

9

 Who'll Stop The Rain

2/07/1970

9

 Up Around The Bend

4

5/02/1970

10

 Lookin' Out My Backdoor

2

8/15/1970

12

 Have You Ever Seen The Rain

8

2/06/1971

9

 Sweet Hitch Hiker

6

17/24/1971

8

 Someday Never Comes

25

5/20/1972

5

~~~~~~~~~~~~~~~~~~~~~~~~~~~~~~~~~~~~~~~~~~~~~~~~~~~~
 
*Long as : as long as 에서 as 가 생략된 어구. … 인 [하는] 한, …이라면 [인 이상].
                … 이므로, …인 이상 (은) (since).
   - As long as the earth remains, day and night will never cease.
       지구가 존속하는 한 낮과 밤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⑷
   - As long as you feel that way about it, I cant agree with you.
       그 점에 대해서 당신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나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through the ages : 옛날 옛적부터   
*tower grow : 탑이 자라나다. 즉, 그럴 듯한 이야기에 빠져
                      불가능한, 허황된 꿈이 이루어지는걸 목격했다는 의미.
*Five year plans and New deals : 1970년대 초 당시의 미국과 전세계에 일고 있었던
                     사회주의 정책을 언급하고 있다. 당시 소련의 Stalin은 5개년 계획(the five
                     year plans)을 만들어 시행했고 미국의 F D Roosevelt 대통령은 뉴딜정책
                     (the new deals)을 시행했는데 본 가사에서는 이 두 가지 정책을 빗대어
                     얘기하고 있고다.
*golden chains : 서민은 외면하고 돈버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정책을 빗대어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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