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바라보며 핀 꽃 해바라기
가을이면 가슴에 슬픔으로 피는 내 누이 닮은 꽃,
하늘만 바라보다 하늘로 가버린 꽃
큰 오빠인 나는 타관 객지 돈 벌러 떠나오고
4동생 키우며 혼자 살림 맡아 했던 내 누이
배고파 투정하다 잠든 동생들 돌보며 정신잃은 엄마 죽음을 넘나들기 수 년....
그 슬픔 다 걷어 혼자 이슬처럼 20살 나이에 숨져간
아, 내 누이야!
동생들 잠든 사이 늦 가을 찬 서리 밤길 걸어
내가 도시로 무작정 돈 벌러 떠나오던 날
시오리 정거장 따라오며 울음 삼키며 하던 말...
"오빠! 저 별들이 모두 떨어져 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치?
엄마 미음 해 드리고,막내도 쌀밥 한 번 실컷 먹여주는데" 하며 웃었지...?
그 쓸쓸했던 미소위로 흐르는 눈물을 몰래 삼키는 걸 보았었다
못난 오빠 걱정없이 가라고 일부러 우스개 소리도 했지만
혼자 남는 것이 얼마나 떨리고 슬펐던가를 내가 왜 몰랐겠니
바람에 꽃 지듯
부모 없이
오빠도 없이
어린 동생들 다 남겨두고 혼자 먼 저승길 어떻게 떠나갔니
이 불쌍한 것아...
꽃 한송이 못받고
베옷 한벌 못 입고
동네 머슴 지게타고 갔다는 말 나중에야 듣고서야..
아 .....!
이 짐승들아, 라고 난 온 동네를 통곡으로 휘저으며
오빠는 서러운 세상 무심한 하늘을 원망했었다
누이가 큰 병 들어 서울에 올라 왔던 날
그때 차거운 밤 하늘아래 돈 없고 아는 이 없이
병원마다 찾아다니며 내 누이 살려달라고 업고 뛰어다닐 때
누이는 오히려 두고온 동생 걱정, 엄마 걱정 돈 없는
오빠 걱정을 더 많이 했었다
"오빠가 기도해줘, 기도하면 다 고칠텐데 왜 이 고생을 해?"
안 아픈척 했지만 누이가 얼마나 절망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알고있었다
결국 병을 고치지 못하고 다시 시골에 내려가서
요양을 시작 했지만 그 당시에 당뇨병을 고칠 약이 없어 그렇게 떠난 것이다
휴일마다 부랴 부랴 시골로 누이 보러 가면
그 고통스런 병과 싸우면서도 맑은 해바라기 꽃처럼 배시시 웃으며
옷깃 여미고 반가워하던 누이! 사 들고간 과자 하나라도 뺏길까바...
다른 동생들은 아무도 방에 못 들어오게 했었다
정을 떼려고 그런다며 어른들은 말을했지만
많이 사가지도 못했던 단팥 빵, 손에 꼭 쥔 미루꾸 몇 개...
철없는 동생들이 앞 다투어 나에게 일러바치며 누나가 아프더니 이상하게 변하고
너무 속을 썩인다고 했다
그래, 다 알고 말고...
오빠앞에 서러움 다 토해내고 싶었던 것을..
어린 동생들 차라리 없었더라면 하고 울부짖던 누이 마음을
내 어찌 몰랐으랴
슬픈 꽃
너무 힘겨워 하얀 별을 바라보다가
이 땅에 아픔을 다 모아가려고 별처럼 떨어져 피어난 꽃
오라비 보고 싶어 해마다 찾아와 가슴에 서럽게 피는 꽃
아, 그리움으로 만 쑥쑥자라서 핀 예쁜 꽃
내 누이 닮은 꽃
누이야! 그 때 7살짜리였던 여섯 째 막내 녀석 어엿한 목사되더니
천사처럼 고운 색시얻어 부산에서 어머니 잘 모시고 산다
꿈결같은 아늑한 세월속에 이렇게 살아계심이
모두 너의 보살핌이 아니고 무엇이랴
또 9살짜리였던 다섯째도 포항으로 시집가서 잘 산다
먼 포항까지 시집가느라 아무도 못가고 오빠가 혼자 달랑 따라가서
혼인예식 치르고 왔었다
혼인 마치고 돌아올 때 그리 서럽게 울던 녀석이
벌써 아들녀석을 둘이나 두더니만 큰 조카 녀석이 지난 여름에 장가를 갔단다
혼자서도 그리 잘 살아준 게 너무 고맙고 기특해서
얼마전 들렸다가 어깨를 도닥거려 줬다
큰 오빠 왔다고 횟집에 갔는데 네 이야기가 나와서
우린 목메여 비싼 회를 먹지도 못하고 눈물만 삼켰어..
12살짜리였던 넷째는 인천으로 시집가서 딸 둘 낳고 잘 사는데
큰 애가 지난 봄 대학에 들어갔다
14살짜리였던 셋째도 마포에서 작으마한 교회, 예쁜교회의 목사가되어
사랑이 아주 많다는 소문난 목사가 되었다
너하고는 제일 많이 싸웠던 셋째 녀석이었는데 네가 하늘에 가고
그 녀석이 둘째가 되어 고스란히 네 짐을 지었고
사내녀석이라 밥하고 빨래하느라 유난히 더 고생을 했었다..
모두들 잘 커서 행복하게 사는데 왜 너만 없는거니
너 만 어디 가고 우리만 남았느냐?
얼마나 멀리 갔길래
왜 이리도 못 보는게냐?
내 누이야
얼마 전, 수 십년 만에 고향에 가 봤더니
세월은 너의 흔적조차 사라져 너의 묘를 찾기가 힘들었다
한 맺힌 고향의 설음, 다시 찾지않으리라 떠나온 그 곳
싸리나무 바구니에 가득 담아와 풀죽 쑤던 이름 모를 들풀도 푸르게 돋았더라
고통처럼 치솟던 코스모스 덩쿨은 너의 하얀 미소처럼
두손 들어 우리를 반겨주었는 데
오빠!! 하고 부르는 듯 너의 서러운 손짖 같았다
아, 누이야..
얼마나 고독하고 쓸쓸하게 오랜 세월을 혼자 기다리며 살았니..
누이야!
큰 오빠는 지금까지 불쌍한 너를 가슴에 품고 평생 살았다
이제 우리 다시 만나는 날 이토록 아프게 살지말자!
다시는 헤여지지 말자
이렇게 슬프게도 살지말고, 별이 되지도 말자
서러운 꽃으로도 피어나지도 말자
가을이면...
왜 누이 생각이 이리 나는지..
얼마나 보고 싶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