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가이드 ▒

세계를 이끄는 베스트 브랜드들

천하한량 2007. 6. 2. 19:05


 

 

H.J.하인즈는 186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州) 피츠버그에서 창업주인 헨리 존 하인즈가 조그마한 식료품 상점을 차린 것이 그 기원이다. 독일에서 이민 온 가정에서 태어나 채소를 경작하는 데 흥미를 가졌던 하인즈는 자신이 설립한 회사가 성공함으로써 훗날 ‘피클킹'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46년 네덜란드의 한 식품 가공 회사의 인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해외투자를 시작해, 1963년에는 세계적인 참치 회사인 스타키스트를, 1965년에는 미국 제1의 감자 가공 회사인 오레아이다를 인수합병, 현재 연간 매출액 90억 달러에 이르는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작년 한 해 동안 <포춘>지(誌) 선정 미국 소비자만족지수(ACSI) 2위, <뉴스위크>지(誌) 선정 브랜드 가치 세계 42위, <비즈니스 위크>지(誌) 선정 식료품 부문 브랜드 가치 세계 1위로 선정되는 등 우수한 품질과 투명한 기업 경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이루어 왔다.
‘57 Varieties'라 불리는 하인즈의 8개 핵심 사업군은 케첩, 참치, 냉동식품, 체중조절식품, 간편식품, 외식식품, 유아용식품, 애완용 동물음식으로, 이 중에서도 하인즈 케첩은 미국 내 50% 이상을, 세계 케첩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명성이 높다. 국내에도 입점되어 있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T.G.I.프라이데이와 미국에서 가장 큰 콘 시럽과 전분 생산업체인 허빙거는 하인즈의 주요 계열사 중의 하나이다.
 


프록터 앤드 갬블이 정식 명칭인 피앤지는 미국 부(富)의 상징이자 미국인들의 자존심에 다름 아니다. 피앤지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미국 가정이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회사의 규모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피앤지는 1837년 영국의 양초 제조업자였던 윌리엄 프록터와 아일랜드의 비누 제조업자였던 제임스 갬블이 오하이오 주(州) 신시내티에서 서로의 업체를 통합하면서 탄생했다. 남북전쟁 동안 북군에 비누와 양초를 공급하였고 전후에는 일반인들에게까지 판매하게 된다. 초기 제품은 1879년에 출시된 아이보리 비누와 1911년에 출시된 크리스코 쇼트닝이다. 하지만 피앤지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것은 1946년 출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세계 최초의 합성 세제인 ‘타이드'와, 그로부터 3년 후인 1949년 출시된 세계 최초의 액체 합성 세제인 ‘조이'이다. 타이드와 조이가 보급되면서 미국인들은 일상의 편리함과 함께 남는 시간을 여가 활동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던 것.
현재 비누, 세제, 청정제는 물론, 다양한 청소 용품, 치약, 방취제, 샴푸, 화장지 등을 포함한 개인 용품, 쇼트닝, 케이크 믹스, 커피 등을 비롯한 식품, 그리고 셀룰로오스 펄프, 화학제품 등과 같은 잡화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2005년 1월에는 면도기로 유명한 질레트를 인수, 현재 40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존슨앤드존슨을 피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뉴스위크>지(誌) 선정 브랜드 가치 세계 9위, <비즈니스 위크>지(誌) 선정 유아용품 부문 브랜드 가치 1위를 차지한 존슨앤드존슨은 뜻밖에도 외과용 방부 드레싱을 생산하는 의료업체에서 출발했다.
1885년, 영국의 저명한 외과 의사인 조세프 리스터가 최초로 공기를 통해 감염되는 세균의 정체를 밝혀내고, 리스터의 주장을 지지하던 미국의 로버트 W. 존슨이 1886년, 그의 두 형제와 함께 뉴저지 주(州)의 뉴브런즈윅에 존슨앤드존슨을 설립한 것이 그 시초이다. 초기에는 외과용 방부 드레싱을 전문으로 생산하였는데, 이는 ‘외과용 드레싱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이름'이라는 회사의 슬로건을 제창하는 바탕이 되었다.

존슨앤드존슨은 계속해서 의사, 환자, 병원을 위한 혁신적인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매진, 1894년에는 ‘심슨 산모용품 세트'를 발매하였다. 이 가운데는 세계 최초의 유아용 파우더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제품이 바로 존슨앤드존슨을 오늘날 세계 유아용품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한 배경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20년에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밴드의 시초인 ‘밴드 에이드 접착 붕대'를 개발했다. 1959년에는 타이레놀로 유명한 ‘맥닐제약'을 인수, 1961년에는 20세기 최고의 약리학자인 벨기에의 폴 얀센이 이끄는 ‘얀센제약'을 인수하여 보건 및 의료용품 기업으로서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1932년, 창업자의 장남인 로버트 우드 존슨이 사장에 취임했으며, 소비자, 직원, 지역사회, 주주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자는 데 기본을 둔 ‘우리의 신조'를 작성하였는데, 이 신조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현대의 모범적인 기업 윤리로 각광받고 있다.
 


34년의 역사를 가진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가 지금까지 판매해 온 커피를 컵 수로 계산하면, 지구를 2바퀴 반을 돌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1초당 1병이 팔린다는 코카콜라를 능가할 수는 없지만, 코카콜라가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는 놀라운 수치일 수밖에 없다.

1971년 제럴드 볼드윈과 고든 보커, 지브 시글이 공동 설립한 스타벅스는 창립 20년 만인 1992년에는 기업을 공개하여 나스닥에 상장되었는데, 단시간 안에 가장 빠른 주가 성장을 보인 기업으로도 알려져 있다. 해발 1,500m에서 재배되는 최고급 아라비카산 원두만을 사용하는 커피와 광고 대신 판촉을 위한 제휴 시스템을 구축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1998년 <포춘>지(誌)가 선정한 세계 100대 최고의 직장 중에 1위를 차지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정직원 외에 파트타임 근무자를 포함한 직원들에게 ‘빈스톡'이라는 스톡옵션을 비롯한 양질의 복지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며, 직원을 ‘종업원'이라는 단어 대신에 ‘파트너'로 부르는 등 윤리 경영의 본보기로 손꼽힌다.

스타벅스의 기본 이념은 기업의 이윤을 지역 사회로 환원하는 것. 즉, 지역 사회와 환경을 적극적으로 돕는 것을 기업 윤리의 중요한 덕목으로 실천하고 있는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하워드 슐츠 회장이 전 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설립한 스타벅스 재단이나, 빈곤한 미취학 아동에게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인 점프스타트(Jumpstart) 등은 대표적인 예이다. 환경을 위한 구매 정책 역시 스타벅스의 투명한 기업 경영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마트, 홈플러스 등 국내 순수 브랜드에 밀려 ‘쇼핑하기 번거로운' 창고형 마켓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본국인 미국에서는‘Everyday Low Price'라는 슬로건으로 인해 물가상승률이 억제될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 매주 1억 4천여 명이 월마트에서 쇼핑을 하며, 월마트의 전 세계 하루 매출액이 15억 달러, 한화로 약 1조 8천 4백억 원에 이른다는 놀라운 통계 결과가 있다.
1962년 샘 월튼이 아칸소 주(州)에서 제1호점을 연 것을 시작으로, 현재 전 세계 5,160여 개의 점포에서 1천5백만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2003년과 2004년 연속으로 <포춘>지(誌)에 의해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한 월마트는 낮은 가격, 지속적인 매장관리, 친절한 직원이라는 3가지 마케팅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는 할인매장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지향하는 모든 기업의 경영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속적인 비용 관리, 투명한 기업문화, 납품업체와의 협력, 첨단 기술의 활용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우수한 품질의 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월마트가 이토록 강한 이유는 싼 가격 때문이 아니라, 고객제일주의를 지향하는 철저한 서비스 덕분. 이는 창립자인 샘 월튼의 제1규칙인 ‘소비자는 항상 옳다'에도 잘 나타나 있는데, 매장을 쇼핑하는 고객에 대한 적극적인 응대로 큰 호평을 얻었다. 또한 월마트는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 활동으로도 이름이 높은데, 매년 32억 달러 이상이 사회봉사 활동에 사용되고 있으며, 오지의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월마트 재단'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가장 빠른 검색 엔진으로 각광받으며 지난 한 해 동안 가장 높은 광고 수익을 올렸던 검색엔진의 기린아 구글(google)을 제치고 야후가 인터넷 검색 부문 브랜드 선호도 1위를 차지했다. 여기에는 다른 검색 엔진들에 비해 ‘비즈니스 종사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사이트'라는 야후의 강점이 작용한 듯하다.
야후는 1994년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의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가 개발한 검색 엔진으로, 각 나라별로 해당 언어에 맞는 검색 엔진을 추가한 세계 최초의 포털 사이트로 명성이 높다. 특색 있는 광고와 일일 100만 페이지뷰를 자랑하며, 전 세계 1억 6천만 사용자들이 야후 검색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는 통계 결과가 있다. 한국에서는 1997년 9월부터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디렉터리 검색을 전문으로 하지만, 동시에 검색 엔진도 제공하며 유즈넷(use net)과 이메일 주소도 검색할 수 있다. 적은 데이터베이스(DB)로 양질의 검색 결과를 제공하는 검색 엔진으로 꼽힌다. 전 세계 월드와이드웹 서버가 분야·장르별로 메뉴화되어 있어 원하는 분야를 검색하는 데 편리한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야후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인터넷 서핑 도중 야후 사이트의 주요 서비스를 클릭 한 번으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야후 툴바 서비스. 이 서비스는 주요 서비스 메뉴가 담긴 툴바를 인터넷 브라우저에 설치하면 되는데, 편집기능을 사용할 경우 개인별 취향에 따라서 필요한 서비스를 추가·삭제하거나 순서를 변경할 수도 있다.
 


유럽인 가운데 60% 이상이 핀란드의 휴대폰 브랜드 노키아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유럽 외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는 모토롤라가 대세이다. 모토롤라의 베스트 셀링 모델인 ‘스타택'의 경우 미국 내 휴대폰 사용 인구 중 200명당 1명이 사용한다는 통계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1928년 폴 V. 갤빈이 시카고에서 ‘갤빈매뉴팩처링'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모토롤라는 처음에는 카오디오만을 전문적으로 생산하였다. 1930년대에 카오디오의 브랜드명을 ‘모토롤라'로 하여 판매를 시작한 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텔레비전세트 제조업체로 성장하였고, 1947년에는 카오디오의 브랜드명을 회사명으로 바꾸었다. 1950년대 후반에는 반도체 분야에도 진출하였다. 1959년 갤빈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로버트 W. 갤빈이 회장이 된 후부터는 전자기술 쪽에 초점을 두고 제품을 생산하여 국제시장으로 사업영역을 확장시켜 나갔다. 1980년대에 들어 휴대용 전화기를 생산하였고, 1996년에는 포켓사이즈 전화기인 스타택을 개발하여 휴대용 전화기의 혁신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현재 통신기, 반도체, 소비자 제품, 정부용 제품, 자동차용 부품의 5개 사업부제를 채택하여 생산하고 있는데, 역시 통신기 사업부가 가장 크며 일반용 통신기 분야는 미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미국 시장 내 최대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1903년 헨리 포드와 그 밖의 11명이 공동출자하여 미시간 주(州) 디트로이트에 설립한 포드 자동차는 세계 최초의 양산 자동차 T형 포드를 생산한 세계 자동차 시장의 역사이다. 1924년에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헨리 포드의 강한 개성 탓에 말년에는 경영 파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20년대 말에는 경쟁사인 제너럴모터스(GM)에 수위를 빼앗기고, 노동조합운동에 반대함으로써 경영 악화의 주범으로 몰렸던 것.
하지만 그가 자동차 조립 라인 방식에 의한 양산체제인 포드 시스템을 확립하고, 그 밖에 수많은 기술상의 새로운 토대를 제시했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1945년 사장으로 취임한 헨리 포드의 손자 포드 2세는 1979년까지 활약하면서 적극적인 경영전략을 펼쳐 사세를 만회하였는데, 당시 마쯔다와 BMW의 랜드로버를 인수하였다.
현재 포드, 마쯔다, 랜드로버 외에도 링컨, 애스턴 마틴, 재규어, 머큐리, 볼보 등 지명도 높은 8개 자동차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2003년에는 포드자동차 창립 100주년과 3억 번째 자동차 생산이라는 자동차 업계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세계 최초로 기업의 ‘독과점'이라는 문제를 야기시킨 보잉은 해와 달, 별과 구름을 제외한 ‘하늘에 떠 있는 모든 것'의 또 다른 이름으로 인식될 만큼 항공기 부문을 장악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워싱턴에서 임야 매매로 상당한 재산을 모은 W. E. 보잉이 1916년 퍼시픽 항공제품사를 설립한 것이 그 시초로, 1917년 보잉항공기로 회사 명칭을 바꾸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을 위한 훈련기 생산을 하며 주목받기 시작해, 제2차 세계대전 중 활약한 대형폭격기 B-17 및 B-29의 생산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항공기 제조회사가 되었다. 전후에는 B-47 및 B-52로 세계 최초의 본격적 제트폭격기 개발을 하였으며, 특히 민간용 대형 제트수송기 분야에 진출하였다. 1934년 대공황 이후 반독점법이 항공기의 제작과 운영을 같은 회사가 영위하는 것을 금지시키자 항공운송 부문은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즈로, 미국 동부의 제작 부문은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스로, 미국 서부의 제작 부문은 보잉 에어플레인 컴퍼니로 분할되었다.

 

세계적인 스타를 내세운 마케팅 전략과 조금이라도 더 싸게 파는 저가 정책 등 코카콜라를 앞지르려는 펩시의 도전이 거세지만, 원조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눈을 깜빡하는 1초 사이에 1병꼴로 팔린다는 이 저력의 음료는 전 세계 60억 인구에게 모두 통하는 유일한 단어가 될 것이다.
코카콜라는 1886년 애틀랜타의 약제사인 J. S. 펨버턴이 코카의 잎, 콜라의 열매 등을 주원료로 하는 음료를 만들어 ‘코카콜라'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한 것이 그 출발이다. 그 후 약제사인 캔들러가 제조, 판매권을 매입하여 1919년 현재의 회사를 설립하고 청량음료로서 판매를 개시했다. 현재는 코카콜라 외에 환타, 스프라이트 등의 청량·과즙음료를 제조하여 세계 각국에 판매하고 있다.

특히, 코카콜라는 미국에서 최대의 셰어(Share)를 자랑하며 국외에서도 아메리카니즘의 대명사로 쓰일 만큼 보급되어 있다.
코카콜라는 본사에서 제조법이 비밀에 붙여진 원액만을 제조하여 국내 및 해외의 특정회사에게만 공급하는 프랜차이즈 방식을 채용하고 있는데, 특정회사에서는 원액에 물, 탄산, 설탕 등의 첨가물을 배합하여 병 또는 캔에 넣고 직매 방식으로 판매한다.

 

필립스는 1891년 네덜란드의 제라르드 필립스가 설립한 백열전구 제조업체가 그 시초로, 1900년대 초반에는 유럽 최대의 램프 제조업체로 급부상했다. 바로 이때를 즈음해서 X-ray 방사선, 무선 신호 수신 등과 같은 영역의 특허권을 활용하여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였다. 하지만 필립스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것은 세계 최대 라디오 및 라디오 튜브 생산에 성공한 1930년. 이어 1946년에는 텔레비전 신호 시험방송을 시작, 3년 후에 일반 대중에게 텔레비전을 공식 소개했다. 필립스 하면 떠오르는 세계 최초의 전기면도기는 1939년에 출시된 제품. 1963년에는 세계 최초로 콤팩트 오디오 카세트를 생산했는데, 테이프 기록에 관한 불변의 국제 표준도 이 당시에 수립된 것. 필립스의 흥미진진한 신제품과 아이디어의 행렬은 1970년대에도 계속되어 조명 기기 부문에서는 에너지 절약형 램프를 개발했다. 1972년에는 훗날 음반 및 영화 기업으로 성공을 거둔 폴리그램을 설립하였으며, 1980년대에는 세계 최초로 콤팩트디스크(CD)를 출시하여 주목받았다.

수치상으로 볼 때, 필립스는 연간 24억 개의 백열등과 3천만 대의 브라운관을 생산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7대의 TV 수신기 중의 1대가 필립스 브라운관이 탑재되어 있다. 최근에는 헬스케어, 라이프스타일, 테크놀로지 등 3개 분야로 사업 분야를 확장하며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