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7년 6월 선조 30년 정유년 (충무공 이순신 53세)

천하한량 2007. 5. 5. 19:08

 

 

 

 

 

15일[갑술/7월28일] 맑다. 오늘은 보름인데, 군중에 있어 어머니 영전에 잔을 올리어 곡하지 못하니 그리운 마음을 어이 다 말하랴! 원수의 종사관 황여일이 군관을 보내어, "원수가 신성으로 가려고 한다"고 전한다. 나도 뒤를 따라 가서 큰 냇가에 이르러 혹시 다른 계획이 있을까 염려되어 냇가에 앉은 채로 정상명을 보내어 병이라고 아뢰게 하고서 그대로 돌아왔다.
6월16일[을해/7월29일] 맑다. 아들 열과 이원룡을 불러 책을 만들어 변씨 족보를 쓰게 했다. 이희남이 편지를 보냈는데, "병마사가 보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아들 열은 정상명과 함께 큰 내로 가서 전마를 씻고 왔다. 변광조가 와서 봤다.
6월17일[병자/7월30일] 흐리되 비는 아니오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원수(권율)에게로 가니, 원균의 정직하지 못한 것을 많이 말했다. 또 비변사에서 내려 온 공문을 보이는데, 원균의 장계에 "수군과 육군이 함께 나가서 먼저 안골포의 적을 무찌른 연후에 수군이 부산 등지로 진군하겠다"고 하니, 안골포의 적을 먼저 칠 수 없겠는가 하였다. 또 원수의 장계에는 "통제사 원균이 전진하려고는 아니하고, 오직 안골포만 먼저 쳐야 한다"고 하여, 수군의 여러 장수들이 대개 딴 마음을 품고 있을 뿐더러 원균은 안으로 들어가 나가지 않으니, 절대로 여러 장수들과 대책을 합의하지 못할 것이라 일을 망쳐버릴 것이 뻔하다는 것이었다. 원수에게 이희남과 변존서,윤선각 등에게 공문을 띠워 독촉하여 오게 했다. 올 때에 종사관 황여일을 만나 한 시간이 넘게 이야기하다가 임시로 사는 집으로 돌아와 이희남의 종을 의령산성으로 보내고, 청도에는 파발로 공문을 보냈다.
6월18일[정축/7월31일] 흐리되 비는 아니오다. 종사관 황여일이 종을 보내어 문안했다. 명나라 사람 섭성이 초계에서 와서 말하기를, "명나라 사람 주언룡이 일찌기 일본에 사로 잡혔다가 이번에야 비로소 나왔는데, 적병 십만 명이 벌써 대마도(沙自麻)에 이르렀을 것이며, 소서행장은 의령을 거쳐 곧장 전라도를 침범할 것이요, 가등청정은 경주,대구 등지로 옮기어 안동으로 갈 것이다"고 했다. 저물 무렵 원수가 "사천에 갈 일이 있다"고 알려 왔다. 그래서 사복 정상명을 보내어 물어보게 하였더니, "수군에 관한 일 때문에 간다"고 하였다.
6월19일[무인/8월1일] 새벽에 원수가 진으로 가니, 원수와 종사관 황여일이 공무를 보고 있었다. 원수는 원균에 관한 일을 내게 말하는데, 통제사(원균)의 하는 일이 말이 아니다. "안골포와 가덕도의 적을 모조리 무찌른 뒤에 수군이 나아가 토벌해야 한다고 한다. 이게 무슨 무슨 뜻이겠소, 질질 끌고 나아가지 않으려는 뜻이다. 그래서 내가 사천으로 가서 독촉하겠다"고 했다. 나는 조정에서 내려온 유지를 보니, "안골포의 적은 가벼이 들어가 칠 것이 못된다"고 하였다. 오정 때에 우수영 관리 변덕기,변덕장과 늙어 제대한 변경완과 나이 열 여덟인 변경남이 와서 봤다. 진사 이신길의 아들인 진사 이일장도 왔다.
6월20일[기묘/8월2일] 종일 비오다. 서철,윤감,문익신,문보,변유 등이 와서 봤다.
6월21일[경진/8월3일] 비가 오락가락하다. 영덕현령 배진경이 와서 보고, 좌도의 일을 많이 전했다. 종사관 황여일이 문안을 보냈다. 저녁에 변존서,윤선각이 들어와서 밤까지 이야기했다.
6월22일[신사/8월4일] 비가 오락가락하다. 아침에 초계군수가 연포국(무,두부,다시마,고기를 맑은 장국에 끓인 국)을 마련하여 와서 권하기는 했지만, 오만한 빛이 많이 있었다. 저녁 나절에 의희남이 들어왔다. 이선손이 와서 봤다.
6월23일[임오/8월5일] 비오다. 아침에 불화살[火箭]을 다시 다듬었다. 저녁 나절에 우병마사(김응서)에게 편지를 보내고, 겸하여 크고 작은 환도(環刀)를 보냈다. 나굉의 아들 나재흥이 그 아버지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봤다. 또 쪼들리는 데도 노자까지 보내어 주니 미안스럽다.
6월24일[계미/8월6일] 새벽에 안개가 사방에 자욱했다. 무밭을 갈고 씨부침하는 일의 감독관으로 이원룡,이희남,정상명,문임수 등을 정하여 보냈다. 생원 안극가가 와서 보고 시국 이야기를 했다. 합천군수가 조언형을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6월25일[갑신/8월7일] 맑다. 다시 무씨를 부침하도록 명령했다. 종사관 황여일이 와서 보고 군사를 토론했다. 저녁에 종 경이 한산도에서 돌아왔다. 보성군수 안홍국이 적탄에 맞아 죽었다고 들었다. 놀라워 슬픔을 이길 수가 없다. 한 놈의 적도 잡지 못하고 먼저 두 장수를 잃었으니 통탄할 일이다. 원수가 오늘 내일 진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6월26일[을유/8월8일] 맑다. 중군장 이덕필과 변홍달,심준 등이 와서 봤다. 아산 종 평세가 들어와서 어머니 영연이 평안하고, 집집이 위 아래 사람들이 다 평안하다고 하며, 장사날은 7월 27일이나 8월 4일 중에서 잡는다고 한다. 그리운 생각에 슬픈 정회를 어찌다 말하랴! 우병마사(김응서)가 체찰사(이원익)에게, "아산의 이방과 청주의 이희남이 복병하기 싫어서 원수(권율)의 진영 곁으로 피해 있다"고 말하여, 체찰사가 원수에게 공문을 보내니 원수는 무척 성내어 공문을 다시 작성하여 보냈다.
6월27일[병술/8월9일] 맑다. 어응린,박진삼이 와서 봤다. 이희남과 이방이 체찰사의 행차가 도착하는 곳으로 갔다.
6월28일[정해/8월10일] 맑다. 황해도 백천에 사는 별장 조신옥,홍대방이 와서 봤다. 초계 아전의 편지에, "원수가 내일 남원으로 간다"고 하였다.
6월29일[무자/8월11일] 맑다. 이희남,이방 등이 돌아왔다. 중군장 이덕필이 와서 유격 심유경을 잡아가는데, 총병관 양원이 삼가에 이르러 꽁꽁 묶어 보내더라고 전했다.
6월30일[기축/8월12일] 맑다. 흥양의 신여량,신제운 등이 와서 봤다.

1) 초서본 일기에는 '限'이 아니고 '恨'으로 되어 있기에 이에 따라 새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