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송 강릉도 안렴 김선생 시 서(送江陵道按廉金先生詩序)
천지가 생긴 이래로 청명(淸明)한 기운과 탁란(濁亂)한 기운이 서로 그 사이에 녹았다 자라났다 하므로, 비록 호걸의 선비라도 확고하여 변하지 않는 자가 매우 적다. 이러므로 다행히 청명한 기운과 더불어 서로 태평한 세상을 만나게 되면, 나서는 성현이 되고 죽어서는 명신(明神)이 되며 풍성(風聲)이 시대와 부합하여 그 유택이 그지없다. 그러나 불행히 탁란한 기운과 더불어 서로 쇠하여 비색한 말세에 부딪치면 움직일수록 화가 따라서 얻는 것이 잃는 것을 당하지 못하며, 그저 생겨났다 그저 죽게 되나니, 또한 너무도 슬픈 일이 아니냐. 나는 이것을 생각한 적이 대개 오래였는데 나와 뜻을 같이한 자는 두어 사람에 불과하니 영가(永嘉 안동) 김씨의 형제가 그중에 하나인데 백씨의 자는 경지(敬之)요, 제씨의 자는 중현(仲賢)이다.
총명하여 놀라운 재주가 있는 것은 두 분이 동일하나 제씨는 역적 신돈(辛旽)의 발호하는 날을 당하여 능히 그 영특하고 예리한 기운을 억제하지 못하고, 이따금 사용하여 분연히 맨손으로 맹수(猛獸)를 치려 들고, 빈주먹으로 날랜 칼날을 제어하려 하다가 마침내 그 화를 입어 그 목숨을 떨어뜨렸고, 경지는 조용히 들어앉아서 물(物)에 거슬리지 않고, 깊이 공자의 유교에 맛을 들여 그 강령과 조목이 다 《대학(大學)》의 한 책에 있다 하고, 아침저녁으로 정말하게 체를 받아 사변(事變)에 수응하는 것도 한결같이 이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이른바 ‘스스로 만족하다.[自慊]’는 것에 있어서도 이미 여한이 없으니, 내게 있는 기운을 배양하여 저 기운에 녹아나지 않게 된 까닭을 대개 알 수 있다.
지금같은 경화(更化)에 미쳐서는 조정이 엄숙하고 화평하여 이 나라의 물은 다 무럭무럭 생기가 있게 되자, 경지는 으뜸으로 묘당(廟堂)의 공선(公選)에 응하여 강릉(江陵)의 안렴을 맡아서 한 도의 명령을 전제하게 되었으니, 선비의 더할 수 없는 영광이다. 강릉도는 백성이 순후하고, 일이 간편하며 기절하고 굉장한 경치가 천하의 으뜸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안렴하는 자가 얻기를 원하고 즐거이 취임하는 곳이다. 그런데 경지 자신은 보기를 평소같이 하여 근심도 기쁨도 안색에 나타내지 아니하니, 자못 이른바 확고하여 변하지 않는 자가 아니랴. 조정의 사대부로서 그 떠남에 앞서 노래한 이들도 반드시 경지의 존재가 이러한 줄은 모두 모를 것이다. 그러므로 그 아는 바를 서술하고 거듭 고하는 것이다. 주상께서 바야흐로 학을 흥기하여 교화를 앞세우고 형명(刑名)을 뒤로 하지만 그러나 유술(儒術)의 공효는 나타나지 않은 적이 오랜지라, 세상이 오히려 오활하다고 헐뜯고만 있는 현실이다. 선생이 이미 《대학》에 밝다는 칭도를 받았고 성균 교관(成均敎官)을 거쳐서 안렴사가 된 것도 선생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더욱 힘쓸지어다. 나는 장차 눈을 씻고 학문의 실효가 있기를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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