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창업자 15%·NASA직원 32%가 동문
글로벌기업들, 최고 연봉 내세우며 졸업생 쓸어가
입력 : 2007.04.13 13:27 / 수정 : 2007.04.14 07:36
- 일러스트=김의균 기자egkim@chosun.com
- “런던, 뉴욕, 상하이, 두바이, 홍콩, 도쿄.”
‘달리는 코끼리’ 인도 경제의 엔진 보급기지 IIT(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인도공과대학). IIT 7개 캠퍼스 가운데 한 곳인 IIT마드라스의 중앙 도서관. 건물 한쪽 벽엔 6개 글로벌 도시의 시간을 알려주는 벽시계가 붙어 있다. 정작 ‘인도의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는 없다. 시중에서 몇 만원이면 살 수 있는 평범한 벽시계. 이 벽시계를 걸어 글로벌 시각에 시선을 맞추는 ‘생각의 방식’이 IIT의 경쟁력이다. 열람실에서 공부 중인 닐라드리(Niladri·기계공학 3년)는 “논문 등을 준비하다 인터넷으로 해외의 교수나 선후배들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 항상 쳐다보게 된다”고 말했다.
1인당 국민소득 700달러의 빈국(貧國) 인도. 이 인도가 부활하고 있고, 부활의 인도가 내세우는 최고의 브랜드가 IIT다.
개교 56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IIT를 두고 개발도상국 중 가장 성공적인 고등교육기관이라 평가한다. 해외 교수와 학생이 부족하고, 인문·사회과학 학과가 없어 세계 대학의 랭킹은 떨어지지만, IIT가 빨아들여 배출하는 인재의 품질은 누구도 의심치 않는다.
IIT신화는 21세기 벽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현실화됐다. 닷컴 물결 속에서 실리콘밸리의 창업자 가운데 15%가 IIT동문(IITian)이었다. 게다가 미국 기업 IBM 엔지니어의 28%, 미항공우주국(NASA) 직원의 32%, 미국 의사의 12%가 바로 IIT 동문들이다. 주(駐)인도 미국대사를 역임한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교수가 “IIT설립이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인도의 식민지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탄식한 것이 납득이 된다.
세계 비즈니스의 정상은 IIT사람들로 넘친다. 영국 통신업체인 보다폰의 최고경영자(CEO) 아룬 사린, 미국 휴대폰 업체 모토롤라 파드마스리 와리어 CTO(최고기술책임자), 갈색 왜성(矮星)을 발견한 천체학자 슈리니바스 쿨카르니, 선마이크로 시스템즈의 공동 창업자 비노드 코슬라, 인포시스의 CEO 난단 닐레카니 등. 포천(Fortune)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중 IIT출신의 중역이 없는 기업은 거의 없을 정도다.
IIT의 성공신화는 몇몇 졸업생들의 얘기가 아니다. 취업 시즌의 캠퍼스는 IIT졸업생을 서로 데려가려는 글로벌 기업들로 분주하다. 매년 300여 개 기업들이 인재 채용을 위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고, 이 중 70여 개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리만브러더스, 블룸버그, 맥킨지 등 세계 초일류 기업들이다.
IIT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공부하기 좋은 시설 등 하드웨어 쪽에서 답을 찾는다면 미궁에 빠지고 만다. IIT 마드라스 캠퍼스는 3월 말이지만 이미 30도를 훌쩍 넘긴 날씨에 인도양에서 불어 온 습한 기운까지 겹쳐서 조금만 움직여도 연신 땀을 훔쳐내야 한다. 이곳 17개 기숙사 중 하나인 나르마다(Narmada) 기숙사에 들어서면 퀴퀴한 땀 냄새가 진동한다. 섭씨 45도가 넘어도 에어컨은커녕 천장에 매달려 ‘웽웽’ 소음을 내는 선풍기 한 대가 고작이다. 강의실 역시 아직 칠판에 분필로 적는 수준이다. 화이트 보드는 언감생심이다.
우리나라 70년대 수준의 인프라에서 어떻게 세계 최고의 실력이 만들어지는가? 비결은 사람에 있다. 11억 명의 인구(人口) 대국이지만 오직 실력으로 승부하는 최고 난이도의 시험을 통해 최정예를 고르고, 이들을 다시 무한경쟁으로 밀어 넣는다.
지난달 27일부터 3박4일 간 IIT마드라스의 귀빈(VIP) 숙소인 ‘보스-아인슈타인 게스트 하우스’에서 머물며 IIT의 경쟁력을 탐구했다.
- ①전기공학과 비핀(Vipin)이 기숙사 방에서 전공 서적을 펼쳐놓고 모터 장치(오른쪽)를 실험하고 있다 ②자정이 넘어서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IIT 기숙사. ③IIT마드라스의 중앙도서관. 전문서적 20여만권과 전세계 학술잡지 1200종을 구비하고 있다. ④1주일에 한두번은 연구실에서 밤을 보내는 경영대학장 가네쉬 교수가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있다. /첸나이=이인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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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T(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인도공과대학) 경쟁력의 비결은 뭘까. IIT 경쟁력의 비밀은 ‘가장 우수한 인재를 모아 최고 교육의 장(場)을 만들어 주는’ 너무도 단순한 원칙에 있었다. 여기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르치는 교수들의 열정이 어우러져 금상첨화(錦上添花)를 이뤘다. 평범해 보이지만, 이것이 최고의 모범 답안인 것이다.
분필가루 날리는 교실…에어컨 없는 기숙사
교수는 침낭 깔고 연구, 학생은 45℃에도 공부
입학제한 없어 치열… 인도판 ‘개천에서 용난다’◆ 최고 인재들이 모여 만드는 시너지
“충격이라기보다 멋진 경험(wonderful experience)이죠”, “우리는 아직 학문의 세계에선 원자재(raw material)에 불과하다는 걸 IIT에서 깨닫죠.”
지난 28일 IIT마드라스 중앙도서관에서 만난 기계공학과 3학년 모한(Mohan·21)의 얘기다. IIT는 인도 최고 수재들의 집합체다. IT도시 벵갈루루 출신인 그 역시 IIT 입학시험인 JEE(Joint Entrance Examination)에서 전국 96등을 차지한 수재다. 하지만 그의 지금 성적은 학과에서 중상위권. 그래도 그는 MIT, 스탠퍼드, 버클리 등 미국 최고 대학으로 유학을 떠날 충분한 성적이 된다.
IIT가 왜 강하냐는 질문에 그는 “IIT에 온 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뛰어난 친구들로부터 진짜 많은 것을 배웠다”며 “델리 출신의 수브라만야(Subramanya·21)란 친구는 각종 뉴스에서부터 역사, 지리, 정치 등 모르는 게 없는 만물박사인데 주변에 이런 친구를 많이 보면서 자극을 받는다”고 말했다.
아이디찬디(Idichandy) 학생처장은 “미국은 3억 명의 인구 가운데 우수한 인재가 20여 개 대학으로 나눠 가지만, 인도는 11억 명의 인구 가운데 우수한 인재가 IIT 한 곳으로 모인다”면서 “이들은 기숙사 생활을 통해 함께 공부하고 밥 먹고, 자고, 얘기하면서 성장한다”고 말했다. ‘IIT사람들(IITian)’은 이를 ‘협력적 경쟁(Coopetition)’이라고 불렀다.
구자라트 출신으로 기계공학과 1학년인 로히트 샤르마(17)는 얼굴의 절반을 가릴 듯한 안경이 인상적이다. 그의 기숙사 방 책꽂이에는 전공 서적 사이사이에 금융 관련 서적이 많이 꽂혀 있었다. 그는 MIT나 하버드의 MBA과정(경영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의 꿈은 세계적인 다국적 금융기업의 기업인이 되는 것이다. “경영학을 공부하려는데 왜 IIT에 왔느냐”는 질문에 그는 “IIT는 인도 영재들 모두의 꿈이며, 지금은 테크노 매니저 시대이기 때문에 IIT가 나중에 경영자가 되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공계 기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선진국들은 어쩌면 이곳 IIT에서 해법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IIT는 입학 자체가 영광이다. 인도 사회에서의 성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입학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도 IT산업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인포시스의 나라얀 무르티 회장이 미국 CBS방송에 출연, “IIT에서 전산학을 전공하려면 전국 200등 안에 들어야 하는데 내 아들은 성적이 안 돼 미국의 아이비리그인 코넬대학에 보냈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IIT에 들어가기 위해 웬만한 대도시에선 5~6년씩 JEE에 매달린다. 인도에도 우리나라의 수험생들처럼 “하루 4시간 이상 자면 IIT는 꿈도 못 꾼다”는 얘기가 나돈다.
이런 우수 인재가 모이니 매사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IIT 경쟁력의 핵심은 최고 인재를 한 곳에 모아놓았고, 입학에서 졸업까지 적용되는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州)의 벽지 다티오 출신인 전기공학과 마노즈 발와니(Balwani·22)의 얘기다. 그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란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에서 인턴을 선발할 때나 동아리 활동, 스포츠 활동, 페스티벌 등 모든 것이 경쟁”이라며 “대학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갔을 때 우릴 기다릴 냉혹한 경쟁 시스템을 한발 앞서 배우고 준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IIT”라고 말했다.
시험기간 기숙사마다 새벽 2시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IIT 경영학 박사과정의 경우, 첫 시험 경영수학 평균 성적이 100점 만점에 8점이다. IIT경영학부 박사과정의 유일한 한국 학생인 김형득(37)씨는 “수재들에게 앞으로 올라야 할 산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주며 자만심을 갖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교육과정(커리큘럼)은 엄격하게 관리되는 한편으로 끊임없이 혁신을 요구받는다. 아난트 총장은 “매년 100개 정도의 신규 과정을 만들고, 기존 강의도 400개 정도는 업데이트한다”고 했다.
IIT에서의 경쟁은 동료와의 경쟁을 뛰어 넘어 세계 최고를 향한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1985년생으로 졸업을 앞둔 재료공학과 4학년 디판카르 팔(Pal)의 입학 성적은 전국 2430등. 졸업학점은 8.52(10점 만점)로, 성적만 놓고 보면 IIT의 열등생쯤으로 보이지만 그는 미국의 칼텍(캘리포니아공대) 등 5개 대학에서 장학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았다.
그는 대학 2학년 때 5편, 3학년 때 2편 등 7편의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실었다. 특히 2005년 여름엔 박사들도 힘들다는 ‘미국 물리학회(American Institute of Physics)지’에 논문을 게재했다. 그는 IIT식 교육의 표본이다. IIT는 학교 수업 못잖게 대외 논문 활동을 격려하고 지원한다. 팔은 논문을 쓰면서 IIT 지도 교수들은 물론 독일 하이델베르크 EMBL(유럽 분자생물학 연구소)의 마이클 크놉(Knop) 교수, 인도 대표 기업 계열의 타타 연구소 사티암 박사 등과 수시로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논문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탄생한 ‘메이드 인 IIT’ 인재들에 대한 국제적 평가는 찬사에 가깝다. IIT의 VIP용 숙소에서 만난 일본 규슈(九州)대학 아카이와 야시히코(赤岩芳彦) 교수(지능시스템학과)는 “휴대폰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건으로 방문했는데 IIT학생들은 영어는 물론 수학에 있어 기초가 매우 탄탄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중국 대학과도 일을 해봤지만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넷 브라우저 프로그램인 ‘넷스케이프’를 만든 짐 클라크는 “기업의 성공 확률은 고용할 수 있는 IIT출신의 수와 정비례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우리보다 45학점이나 많은 졸업 학점(165학점)을 4년 동안 이수하지 못해 졸업을 못 하면 6년까지 다닐 수 있다. 그래도 안 되면 제적이다. 10점 만점에 4점이 넘어야 졸업이 가능하다. 여기에 들지 못하는 경우는 한 학년 500여 명 중 15명 안팎이다.
하지만 IIT의 냉혹한 경쟁 시스템은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무한한 기회도 제공한다. 신분의 벽도 뛰어넘을 수 있다. 람 바부(Babu·22). 그의 신분은 최하층 천민인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이지만 그는 JEE에서 전국 158위를 했고, 졸업을 앞둔 지금 최고 기업으로 꼽히는 화력발전공사에 합격했다. 그의 최종 꿈은 공무원. 행정고시(IAS)에 합격해 고향인 안드라 프라데시의 주지사가 되는 것이다.
◆ 1주일치 봉급을 연봉으로 받고 귀국
경영학과 건물 1층의 왼쪽은 가네쉬(Ganesh) 경영대학장의 연구실. 워낙 학생들을 괴롭혀 ‘독종’으로 불리는 그의 방 캐비닛을 열면 책 대신 이불이 쏟아진다. 연구실에서 자전거로 10분 거리인 학교 내 관사에 살지만 1주일에 한두 번은 연구실에서 밤을 보낸다. 자정까지 찾아오는 학생들을 일일이 맞으며 ‘인도의 혼’을 강조하는 토론도 마다하지 않는다.
IIT학생들은 요즘 IT업체보다는 컨설팅업체와 금융업체를 선호한다. 따라서 그의 수업은 IIT공대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가네쉬 교수가 가르치는 ‘조직적 사고(system’s thinking)’ 과목 시간. 맨발로 다니는 그는 인도의 고전(古典)인 ‘마하바라타’를 인용하며 “인도인들은 흔히 카스트 제도의 기반이 되는 ‘카르바(karma·業)’를 운명론으로 생각하는데, 어떤 운명도 자신의 자유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며 인도의 혼을 부르짖는다.
교수들의 70% 이상은 학교 내 관사에서 생활한다. 따라서 자정이 지나도 불이 켜진 연구실을 쉽게 본다. 그런 연구실엔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지난 3월 29일 밤 10시. 경영대학 3층의 싸이(Say) 교수 연구실. 4명의 학생들이 찾았다. 학생들은 타타컨설팅의 미국 지사(뉴욕)에서 7년간 근무한 싸이 교수로부터 다양한 경험담을 듣는 걸 좋아했다. 한 학생은 “논문에 대한 질문도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편하게 얘기하며 책에서 배우지 못하는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IIT에서 박사를 한 싸이 교수의 미국 시절 연봉은 25만 달러(약 2억 3000만원). 지금 연봉은 25만 루피(약 550만원). 미국 시절의 1주일 치 봉급 남짓할 뿐이다. 미국에서 수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치고 2년 전 돌아왔다.
1975년생 햇병아리 컴퓨터공학과 교수 아누라그 미탈(Mittal). 그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JEE 전국 35등으로 IIT델리에 입학, 졸업학점 9.65(10점 만점)로 수석 졸업, 미국 코넬대에서 2년 만에 석사,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3년 만에 박사를 받았다. 미국 뉴저지주의 지멘스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작년 초 귀국했다. 컴퓨터 사이언스 블록 3층. 5평 남짓한 방에서 그는 동영상관련 신기술 서적을 컴퓨터로 보며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미국의 순수학문 연구소에서 연봉 10만 달러(약 9300만원)의 제의를 받았다. 아마 기업 연구소로 갔다면 100만 달러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연봉은 36만 루피(약 780만원). 그는 “지금은 인터넷 시대이니 인도에서 공부해도 저널 같은 자료를 보는 데 문제가 없다”면서 “인도엔 더 밝은 미래가 있고, 내가 기여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IIT엔 외국인 교수가 한 명도 없다. 그렇지만 굳이 면면을 보면 외국인 교수가 필요 없을 정도다. 예를 들어 건축공학과 교수 40여 명 중 30명이 해외유학파다. 구조물 엔지니어링 분야의 경우 MIT 출신이 3명, 뉴질랜드와 미국 카네기멜론대·나고야대 출신이 각 1명씩 있다. IIT마드라스의 경우 교수 90%가 해외 유학파다. 일본에서 3년간 연구원으로 일하다 귀국한 건축공학과 사티쉬 쿠말(Kumar·40) 교수는 “IIT는 세계 각국, 각 분야에서 맹활약하던 인재들이 돌아와 연구하니 강해진다”고 말했다.
교수진의 수준은 어떻게 유지될까. 교수 채용부터 엄청나게 까다롭다. 아난트 총장은 “1년에 1000여 명의 지원을 받아 이 중 500여 명을 인터뷰해 30명을 뽑는다”고 말했다. IIT는 천재 교수가 천재 학생을 가르치는 시스템이다.
- IIT마드라스의 록밴드인‘IITM’부원들이 기숙사에서 악기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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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0개 과정 새로 만들고
기존 강의도 업데이트
인텔·HP 등과 산학협동 프로젝트하며
현장감 익혀
연구 펀드 ‘가뭄’-
외국인 학생 없어 글로벌화 미흡
◆ 실용성과 창의성
IIT 마드라스엔 ‘창의적 사고(creative thinking)’란 수업이 있다. 석·박사 과정들은 누구나 들어야 한다. 첫 수업은 아난트 총장의 몫. 100여 명의 수강생을 상대로 그는 “사탕을 일곱 살짜리 꼬마에게 물려 준 뒤 그 사탕이 다 녹을 때까지 아이가 지겨워하지 않는 수준에서 당신이 쓰려는 논문의 내용을 얘기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화학이든 경영학이든 뭐가 궁금하고 그 궁금한 것을 어떻게 풀어갈지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논리의 창의성’이 없으면 아예 도전하지 말라는 것이다.
IIT는 기초를 강조하는 대학이다. 하지만 산학협동 역시 만만찮다. 컨설팅 프로젝트 488개, 기업 후원 프로젝트 98개 등 모두 586개의 산학협동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 중 20%가 인텔, HP, 하니웰과 같은 외국 기업이다. 총 금액으로는 6억 루피(약 1400만 달러) 수준이다. 웬만한 기초기술은 인도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 등에서 지원한다.
IIT마드라스 전자공학과 공학동 1층의 ‘통신과 컴퓨터 네트워크 그룹’(TeNet) 연구실. 말이 연구실이지 벤처 인큐베이터 건물이다. 청바지 차림의 연구원들이 분주히 오가고, 4개의 대형 연구실 중 하나는 문이 꼭 잠겨 있다. 현금자동출납기(ATM), 영상전화시스템, 텔레컨퍼런스 시스템, 원격진료시스템 등 15개의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서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준준왈라 교수는 “시중에서 80만 루피(약 1750만원)인 현금출납기를 우리는 지문인식 기능까지 갖춰 10분의 1 수준인 7만 5000루피(약 164만원)에 내놓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나란드란(Narandran) 산학협력(IC&SR) 처장은 “한 달에 나흘은 학생들이 산업현장에 가서 경험을 쌓는 것을 장려한다.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금요일마다 산업현장에 찾아가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IIT는 인도 1위의 오토바이 업체인 바자지(Bajaj) 등 27개 기업과 산학협동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있다. 산학협동은 번거로운 절차 대신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기업에서 문제 발생 -> 해당기업이 IIT마드라스 홈페이지 검색 -> Nano문제라면 나노 박사를 찾는다 -> 이메일을 보내 협조 요청하고 약속 -> 의견 맞으면 기업과 해당 교수와 MOU 체결 -> 교수는 대학본부에 통보?대학에서는 변호사 보내 협력 지원 후 정식 계약체결 -> 비용은 대학 계좌로 입금.
산학협동으로 들어오는 돈의 60% 정도가 교수 몫이다. IIT공대 교수들의 평균 연봉은 40만 루피(약 875만원) 수준. 하지만 산학협동으로 연간 2000만 루피(약 4억 30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교수도 있다. ‘산학협력이 순수학문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얘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란드란 처장은 “뭐든지 지나치면 안 되는 법”이라며 “순수학문에만 너무 매달려도 문제는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 IIT의 한계와 문제점
올해로 56살인 IIT 역시 장년으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동안은 IT붐에다 우수 인재를 공급하는 것으로만 문제 해결이 됐다면 이제는 세계 대학 사회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경쟁력도 만들어 내야 한다.
우선 연구개발 펀드가 절실하다. IIT마드라스의 연구개발 펀드는 6억 루피(약 131억원). 하버드대의 220억 달러(약 20조원)와는 비교도 안 된다.
그리고 구성원의 글로벌화가 부족하다. IIT엔 외국인 학부생이 단 한 명도 없다. JEE 시험을 누구나 통과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 때문이다. 외국인 교수 역시 정식으로 고용한 사람은 없다. 아이디찬디 학생처장은 “미국은 전 세계 우수 인재를 받아들여 엄청난 연구자금을 지원하고, 세계 최고의 교수들도 몰리는 선(善)순환 구조”라면서 “IIT는 우수 학부생이 있다는 장점으로 버틴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난트 총장은 “우수 인재들이 최고의 발견을 하는 준비는 인도에서 하고 정작 그 발견은 미국에서 하는 형국”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작년 영국의 ‘더 타임스(The Times)’가 발표한 세계 대학 평가 순위에서 IIT는 57위에 그쳤다. 63위를 차지한 서울대와 큰 차이가 없는 평가 결과였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는 “연구발표실적(research output)이 적고, 인문·사회과학 학과가 없으며, 해외 교수와 학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 IIT 마드라스 아난트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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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스스로 결정하게 하세요
오늘의 IIT 만든건 자율성 보장"
IIT 특별법 따라 학생·교수선발 등 정부는 간섭 못해“대학 스스로 최고의 학생과 교수를 뽑아, 초일류의 교과 과정(커리큘럼)을 만드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원칙입니다.”
IIT마드라스 아난트(Ananth) 총장은 IIT 경쟁력의 핵심은 자율성이라고 했다. IIT는 ‘독립 후 인도가 만든 최고의 법’이라 불리는 IIT특별법을 통해 학생선발, 교수 임용, 커리큘럼 설정 등에 있어 자율권을 보장 받는다. 그러나 최근 인도에선 IIT가 엘리트 편향 교육기관이란 비판 속에 하층 계급 학생들의 입학 할당 비율을 넓히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이어 두 번째 조선일보 인터뷰에 응한 아난트 총장은 “지금도 IIT의 자율권을 훼손시키려는 각종 청탁이나 무형의 압력이 들어오지만 난 IIT법에 따라 ‘아니다(no)’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일부 정치인들이 IIT의 상징성을 활용해 ‘내가 한 건 했다’는 식으로 홍보하기 위해 소외계층 할당제 확대 등을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며, “나도 교육 기회에 있어 평등이란 점은 전적으로 동의하고 존중하지만 경쟁이란 원칙은 지켜야 하며, 진짜 서민이 아닌 사람들이 서민인 양 특혜를 받으려는 것은 제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IIT 교육의 목표에 대해, “리더십을 가르쳐야 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자질을 가르쳐야 한다. 또 성적이 좋은 학생으로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학습능력이 뛰어난(teachable) 인재로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은 자신이 앞으로 뭘 할지 결정하기엔 아직 너무 어리다”며 “대학(university)은 말 그대로 두루 쓰이게 될 지식(universal knowledge), 10년 뒤에도 도움이 될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구체적인 예로, IIT졸업생들은 경영을 전공하지 않아도 컨설턴트로 맹활약하며, 소프트웨어를 전공하지 않아도 3~4개월 만에 훌륭한 IT전문가의 반열에 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좋은 교육이란 새로운 것에 늘 도전하는 교수, 스승의 지식을 무시하려는 학생, 여기에 새로운 시스템을 끊임없이 제공하려는 학교 행정이 만날 때 이뤄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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