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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럼증을 느끼면 빈혈일 것이라고 단정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어지럼증이 실제로 빈혈로 판명되는 경우는 5%에 불과하다. 어지럼증은 흔하기는 하지만 절대로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는 증상이다. 다른 심각한 질환의 초기증상이 어지럼증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가 모자라 생기는 빈혈의 경우도 대개 두통, 소화불량, 생리량 변화 등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똑같이 어지럽다고 표현하더라도 어지럼증에는 ‘현기증’과 ‘현훈’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잘 구분해 보면 어지럼증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현기증(dizziness)은 갑자기 앉았다 일어나거나 갑자기 움직일 때 잠깐씩 생기는 느낌이다. 피곤하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뇌에 혈류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몸의 감각을 통합하는 기능이 일시적으로 저하되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 그림·박상철
- 현기증은 빈혈, 기립성 저혈압, 부정맥, 협심증, 탈수 또는 출혈로 인한 저혈압 등으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뇌에 혈액 공급이 줄어들어서 나타난다. 고혈압이나 뇌동맥경화, 뇌졸중 등 뇌의 기능 이상을 초래하는 질환과도 관계된다. 아울러 흡연이나 커피 및 청량음료 속에 들어 있는 카페인의 과다섭취, 과도한 스트레스, 긴장, 불안도 현기증을 유발할 수 있다. 환자들은 머릿속이 텅 비어서 휑한 느낌, 공중에 떠다니는 듯한 느낌, 멀미하는 느낌 등으로 증세를 호소한다.
현훈(vertigo)은 자기 주위의 물체가 빙빙 돌아가는 느낌이다. 몸의 균형을 담당하는 귓속의 말초전정기관 또는 이와 관련된 중추신경계의 이상 때문에 나타난다. 일상생활에서 고개와 몸을 돌리는 동작을 반복해도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뇌가 전정기관과 전정신경을 통해서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 중 어느 한 부분에라도 문제가 생기면 현훈을 느끼게 된다.
현훈 중에서도 중추신경계의 이상 때문에 생기는 중추성 현훈은 적절한 치료를 못 하게 될 경우 심각한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중추성 현훈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뇌졸중(중풍)이다. 현훈이 잘 유발되는 곳은 뇌간과 소뇌부위에 집중돼 있다. 뇌간은 대뇌에서 내려오는 신경섬유들이 모이는 곳이다. 뇌간 뇌졸중의 경우 현훈이 갑자기 나타나면서 발음이 명확하지 않은 구음 장애, 사물이 겹쳐 보이는 복시, 근육 간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동작이 부자연스러운 운동실조증, 안면마비 혹은 사지마비 등의 증상이 다양하게 동반될 수 있다.
뇌의 혈류에 장애가 일어나 생기는 일과성 뇌허혈로 인한 증상이면 항응고제 및 혈전용해제 등을 사용하여 뇌경색의 진행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소뇌출혈로 인한 증상인 경우 증상의 경중 및 경과를 관찰한 후 약물치료를 하거나 외과적으로 출혈을 제거한다.
뇌의 중추신경이 아닌 감각기관과 신경의 이상에서 오는 말초성 현훈도 이상이 생기는 부위가 다양하다. 귀 안에서 자세를 감지하는 세반고리관에 문제가 생겨서 머리를 움직이는 순간 갑작스럽게 현훈이 발생할 수 있다. 보통 1분 정도 경과한 뒤에 증상이 사라지곤 한다. 자세를 감지하는 데 필요한 이석이라는 작은 돌이 원래 위치를 벗어나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것이므로 체위를 변환시켜 이석을 원위치시키면 치유된다.
전정신경염은 균형감각을 담당하는 말초신경인 귓속의 전정신경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다. 주로 바이러스에 의한 염증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 외에도 메니에르증후군의 경우에는 귀울림, 청력감소, 두통, 현훈 등의 증상이 일정 기간을 두고 반복되는 양상을 보인다. 원인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나트륨 섭취와 관련이 있으므로 저염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머리의 외상이나 약물 등에 의해서도 현훈이 생길 수 있다.
중추성 현훈과는 달리 말초성 현훈은 증상이 심하기는 하지만 메니에르증후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연히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재발을 잘 한다는 것이 문제다. 대체로 안정을 취하고 약물치료를 하고 전정기능 운동요법을 꾸준히 시행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균형감각장애로 나타나는 어지럼증은 균형감각의 장애로 인해 누워 있거나 앉아 있을 때는 아무 증상이 없다가 서거나 걸을 때 평형을 유지하지 못해서 발생한다. 뇌에 생긴 물혹, 말초신경의 장애, 뇌경색, 자율 신경장애 등이 원인이므로 전문의의 진단이 필요하다.
박준동 주간조선 기자 jdpark@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