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육신이개 ▒

송서수찬강중영친귀대구(送徐修撰剛中榮親歸大丘) -백옥헌(白鈺軒) 이개(李塏)-

천하한량 2007. 4. 2. 15:23
   
 
望雲飛傳急  망운비전급
仙桂媚堂萱  선계미당훤
爵上南山壽  작상남산수
尊涵北闕恩  존함북궐은
美談歸父老  미담귀부로
佳氣藹鄕村  가기애향촌
孝理仍文敎  효리잉문교
邦家重本源  방가중본원

 
고향 바라보며 달리는 전달이 급하니
과거의 급제 어머님을 기쁘게 하리라
잔으로 남산의 수를 올리는데
술병에는 임금의 은혜가 가득하도다
아름다운 이야기 부로들에게 돌리고
아름다운 기운 향촌에 자욱하리라
효도로 다스리고 문교도 겸했으니
나라에서 근본을 중히 여기는 까닭이도다

                                              -대구로 귀성하는 수찬 서강중을 보내며-

 

 

 

 

백옥헌(白鈺軒) 이개 (李 塏) (태종(太宗) 17년 1417 - 세조(世祖) 2년 1456)

자(字)는 청보(淸甫) 백고(佰高) 호(號)는 백옥헌(白鈺軒)이며 본관(本貫)은 한산(韓山) 이며 이색(李穡)의 증손(曾孫) 사육신(死六臣)의 한사람이다.


세종(世宗) 18년 문과(文科)에 급제 세종 23년 저작랑(著作郞)으로 『명황계감(明皇戒鑑)』의 편찬에 차여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창제(創制)에도 참여했다.


세종 29년에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한 뒤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세조 2년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다. 이해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등과 함께 단종(端宗)의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발각(發覺)되어 혹독(酷毒)한 고문(拷問) 끝에 죽었다.


본래(本來)에는 세조(世祖)와도 친교(親交)가 있어 진상(眞相)을 밝히도록 강요 당했으나 굽히지 않고 처형(處刑) 당했다.

 

시문(詩文)이 청색하고 하고 글씨를 잘 썼다.

 

대구의 낙빈서원(洛濱書院), 과천(果川)의 민절서원(愍節書院), 의성(義城)의 충렬사(忠烈祠) 영월(寧越)의 창절사(彰節祠) 연산의 둔암서원(遯巖書院), 홍천(洪川)의 노운서원(魯雲書院), 한산(韓山)의 문헌서원(文獻書院)에 동학사(東鶴寺) 숙모전 영조(英祖) 34년 이조판서(吏曹判署)에 추증(追增) 시호(諡號)는 의열(義烈) 이었으나 뒤에 충각(忠簡)으로 개시(改諡)하다.